대법원 내부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은 한 손에는 법전을, 나머지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 이 여신상은 모든 이들이 법 앞에 평등함을 상징하고 있지만, 남성중심적 법체계는 여성들에게 공평하지만은 않다. 가정폭력 피해자에 의한 가해자 사망 사건에서 사법부가 피해 여성의 관점에서 정당방위를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법원에서 송달된 소장을  소송당사자가 과정과 판결문에 대해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우리말로 풀어쓸 필요가 있다.  ⓒ여성신문 

보통의 시민이라면 재판과 관련, 법원에 갈 일이 얼마나 있을까? 법원에서 송달된 소장을 법률전문가의 도움없이 이해하고 처리할 수 있는 개인은 얼마나 될까?

몇 해 전, 등기우편으로 피고인으로 지칭된 두툼한 소장과 함께 전자소송 안내문을 받았을 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오래전 매매한 아파트의 공유토지지분 가운데 일부에 소유자로 이름이 남아있어서였다. 대단지에 순차적으로 건설된 데다 지번변경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행정상의 누락이 있었던 까닭에 현재의 소유자들이 소유권을 넘겨달라는 내용으로 공동으로 민사 소송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피고인으로 지칭되니 놀란 마음에 소장을 읽기도 전자소송 절차와 이용방법을 알리는 안내문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았다.

소장 내용은 평소엔 거의 쓰지 않는 법률용어이고 대부분 한자말을 한글로 표기했다. 전자소송 안내문 역시 민사소송절차와 재판진행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지만 선뜻 인터넷을 켜지 못했다. 법률사무소에서 절차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야 매매 이후 남아있는 소유권을 절차대로 넘겨주겠다는 조정의견서를 직접 제출할 수 있었다.

전자소송은 디지털시대의 획기적인 대 국민 서비스다. 인터넷을 통해 24시간 이용할 수 있으니 시간절약이 되고 비용절약도 가능한 여러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문서를 전자적으로 제출’ ‘재판관계서류를 전자우편 등으로 송달’ ‘사건기록을 전자적으로 열람하고 출력’ ‘재판기일(날짜)’등의 안내문은 한자말을 그대로 옮긴 듯 어색하고 ‘수분양자(분양받은 사람)’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완료)’ ‘새 등기부 편제(꾸밈 또는 작성)’ ‘구분소유자’ ‘소수공유지분’ ‘전유부분’ ‘판결경정’ 등 소장에 나오는 용어는 매번 사전을 찾아 확인해야 했다. 부동산 분야 종사자가 아니니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공공언어는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언어를 뜻하며 좁게는 공공기관에서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공공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언어에 한정하기도 한다.

소송과 관련한 언어는 대표적인 공공언어이다. 한자나 전문용어에 토씨만 붙인 우리말이 아닌 쉽게 풀어쓴 우리말이면 좋겠다. 때로는 법적인 권리를 추구하고 처벌이나 피해구제와도 관련된 당사자가 실재한다. 따라서 소송당사자가 과정과 판결문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첫째다. 학자들은 중학생 정도의 문해력을 가진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신문기사를 쉽게 써야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공공언어도 그래야하지 않을까?

까다로운 법률용어이더라도 의무교육을 받은, 중학교 졸업 수준이라면 누구나 혼돈 없이 정확히 이해할 수 있어야 공공서비스로써 공공언어일 것이다. 필자가 전자 소송으로 간단히 처리할 수도 있었던 사건에 대해 망설이고 도움을 받았던 것은 혹시라도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 낭패를 보는 게 아닐까하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공언어는 국민의 생활 전반과 연결되어 있다. 집밖을 나서면 볼 수 있는 각종 교통표지판과 안내문, 현수막을 비롯, 정부와 지자체 등 공공기관이 배포하는 홍보물, 공문서, 대국민 담화가 모두 공공언어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영향력과 파급력이 날로 확대되고 있는 각종 대중매체, 미디어에서 사용하는 언어, 광고도 공공언어의 영역이며 각종 전자제품, 의약품의 사용설명서, 보험약관, 계약서 형식도 있다. 모두 국민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정보를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쉬운 언어와 내용이어야만 원래의 목적인 소통을 이룰 수 있다.

여성신문은 <쉬운 우리말 쓰기> 시리즈를 통해 세대간 소통의 격차를 줄이고 생활 속에서 만나는 공공언어의 실태를 확인하며 대체 가능한 아름답고 쉬운 우리말을 소개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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