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국가안보실 김성한·이문희 대화 감청" 보도
대통령실 "미국측과 협의할 것"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각) 프놈펜 한 호텔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각) 프놈펜 한 호텔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최근 유출된 미국 국방부(펜타곤)의 기밀문건에 한국 등 동맹국을 도·감청한 정황이 담긴 것으로 확인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을 앞둔 시점이어서 외교 관계에도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8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 문건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기밀 문서다. '1급 기밀' 문서도 포함돼 있으며 문서 다수는 미국 정보기관끼리만 공유(Secret/NoForn)하라고 돼있다. 2월 말~3월 초 유출됐고 최근 사진 문서 형태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하고 있다.

유출된 문건의 전체 범위는 불분명하지만 확인된 것만 100여 쪽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WP는 자체 확인한 50여 쪽의 문서엔 국가정보국(NSA), 중앙정보국(CIA), 국방정보국(DIA), 국가정찰국(NRO) 등 거의 모든 미국 정보기관의 정보 활동이 담겼다고 밝혔다.

NYT는 지난 6일 펜타곤이 조사에 착수했다고 보도한 데 이어 추가 내용을 후속 보도하고 있다.

◆ 한국 대통령실 도·감청 정황

문건에는 미국이 한국 대통령실 외교안보 고위 관계자들을 도·감청한 정황이 담겼다. 김성한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의 대화다. 

한국(정부) 내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공여를 놓고 이뤄진 토론에 대해 적어도 2차례 이상 다루고 있다"며 "한 문서를 보면 '한국 관리들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에게 (무기 공여) 압력을 행사할까 우려했다'고 보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당시 한국 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의 논의 내용에 대해 "(해당 문건은) '한국의 국가안보보좌관(national security adviser)이 탄약을 폴란드에 판매하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보고했다"고 전했다.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 백악관에만 있는 직위이지만, 한국에서는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직위를 통상 영문으로 이같이 표현해왔다.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의 상대역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이다.

NYT는 "도청 사실이 공개된 것은 우크라이나 무기 공급을 위한 도움을 받아야 하는 한국 등 핵심 파트너와의 관계를 방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NYT는 "이 기밀 문건은 미국이 아시아의 주요 동맹국 중 하나를 염탐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신호 정보(signals intelligence·시긴트)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서 "유출된 문서들은 미국이 이미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었고 비밀 유지 능력에도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긴트는 전자장비를 통해 수집한 정보를 의미한다. 미 정부기관이 정보를 불법 도·감청했음을 시사한다.

WP도 "미국은 그의 동맹국에도 스파이짓을 했다"며 "한 문서는'신호 정보'를 인용해, 3월초 열린 한국 NSC에서는 미국의 무기 공여 요청을 놓고 고심을 거듭했다고 보고했다"고 전했다.

NYT에 따르면 이 전 비서관은 김 전 실장에게 "한국이 미국의 탄약 (지원) 요청에 응했을 때 미국이 최종 사용자(end user)가 되지 않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이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 원수들 간에 통화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서 "(전쟁 국가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 정책을 위반할 수는 없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이 정책을 바꾸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건의했다.

이 전 실장은 또 "임기훈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이 3월2일까지 최종 입장을 결정할 것을 약속했다"고 보고했다.

김 전 실장은 이 시점이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일정과 맞물린다는 점에서 "(한국) 국민들은 이 두 가지(국빈 방문과 포탄 지원)가 거래로 이뤄졌다고 생각할 것"을 우려했다. 윤 대통령의 이달 26일 미국 방문 일정은 지난 7일 발표됐다.

김 전 실장은 대신 "미국의 목표는 우크라이나에 탄약을 빨리 공급하는 것"이라며 폴란드에 155㎜ 포탄 33만 발을 수출할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문건엔 나와 있다. 폴란드를 통한 '우회 제공'을 제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전 비서관은 폴란드가 '최종 사용자'로 불리는 것에 동의하고 우크라이나로 탄약을 보내는 것은 가능할 수 있지만 "폴란드가 무엇을 할 것인지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NYT는 "이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불분명하다"면서 "한국은 외국에 판매한 무기나 무기 부품을 한국의 승인 없이 제3국에 재판매하거나 이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NYT는 이 문건 내용에 대해 "지난해 말 한국이 미국의 (탄약) 비축량을 보충하는 것을 돕기 위해 포탄을 판매하기로 동의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한국은 최종 사용자가 미군이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내부적으론 윤 대통령의 최고 보좌관들이 그것(탄약)이 우크라이나로 가게 될 것을 우려했다"고 분석했다.

◆ 대통령실, '미국과 필요한 협의"

대통령실은 미국 정보기관이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관한 한국 정부의 논의를 감청했다는 외신 보도와 관련해 "미국 측과 필요한 협의를 할 예정"이라고 9일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취재진과 만나 "해당 보도를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측에 항의 표시나 진상파악을 위한 상세한 설명을 요청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과거 전례와 다른 나라의 사례를 검토하면서 대응책을 한번 보겠다"고 답했다.

관계자는 "감청 결과로 나온 것이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대해서 한국 정부 관리들의 내부 논의에 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논의가 실제로 한국 정부에서 있었느냐"는 질문에 "이런 보도가 나오고 있지만 확정된 사안은 아니다. 우크라이나와 관련해 우리 정부의 기본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오전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회의를 열고 해당 보도 내용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관련 사안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대통령실을 향해 “항의해도 시원찮을 판에 무슨 협의를 한다는 말인가”라며 “과거 전례와 다른 나라 사례는 이미 다 알고 있지 않나”라고 비난했다.

또 “엄중한 상황임에도 ‘제기된 문제에 대해 미국 측과 필요한 협의를 할 예정이며 과거 전례와 다른 나라 사례를 검토하면서 대응책을 보겠다’고 반응했다니 한심하고 비굴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유 전의원은 “윤석열 대통령과 우리 정부는 당장 미국 정부에 강력히 항의하고, 뉴욕타임스 등이 보도한 미국 기밀문건에 대해 모든 정보를 요구해야 하며, 미국 정부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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