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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외갓집은 경로당!”지난 여름방학에 중학교 1학년 큰 딸아이와 함께 참여한 자원봉사 프로그램의 제목이다. 4년 반 동안 노인복지관에 근무하면서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때만 되면 중학생과 고등학생들의 자원봉사활동 계획을 세우고 교육시키고 직접 봉사활동 지도를 하고 활동 확인서를 떼어주는 역할을 하다가, 이제 드디어 내 아이가 봉사활동을 할 곳을 찾아 나서게 된 것이다. 내가 복지관에서 근무라도 하고 있다면 수월하게 봉사활동을 시작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퇴직한 지 오래이니 여기 저기 알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가 봉사활동을 지도하면서도 느꼈지만 중학생은 고등학생과 달리 어려서 말귀도 잘 못 알아듣고, 솔직히 일도 그다지 잘 하는 편이 아니어서 많은 복지관에서 중학생 자원봉사자를 꺼려하는 것이 현실이다. 아는 곳에 청을 넣어서 봉사활동을 하게 할 수도 있었겠지만, 아이가 처음 경험하는 봉사활동을 이왕이면 제대로 하도록 돕고 싶었다.

그러던 중에 한 노인복지관에서 엄마와 함께 하는 중학생 자원봉사활동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해서 달려갔다. 2시간의 사전 교육을 받고 배치된 곳은 지하철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아담한 경로당이었다. 단층 건물에 널찍한 마당도 있고, 마당 한구석에는 수돗가도 있어서 도심 한가운데에 이런 곳이 다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엄마 두 명과 아이들 네 명에게 주어진 임무는 일주일에 한 번씩 경로당을 방문해 깨끗하게 청소하는 일이었다. 인사와 함께 청소하러 왔다고 말씀드리니 반색을 하신다.

할머니 방 담당이 된 아이와 나는 준비한 고무장갑을 끼고 씩씩하게 청소에 들어간다. 기름때에 절어있는 할아버지 방의 싱크대와는 달리 할머니들께서는 끼니를 손수 마련해 드셔서인지 싱크대 주변과 냉장고는 아주 깨끗했다. 방 구석구석을 쓸고 닦고, 화장실 청소까지 하려니 삼복 더위에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지켜보시던 할머니들이 아이를 향해 '집에서 걸레 한 번 안 잡아봤을 텐데, 쯧쯧쯧' '저 조그만 손으로 힘들어서 어쩌나' '아이고, 고마워라' 한 마디씩 하시면서 주머니를 뒤져 사탕을 꺼내 주신다. 옆의 할아버지 방을 들여다보니 냉장고 청소가 한창이다. 오늘 몇 명이 왔나를 물으셨던 할아버지께서 쓱 나갔다 들어오시더니 아이스크림 한 개씩을 쥐어주신다. 그 차고 달콤한 맛이라니….

아이와 나는 세 번 경로당을 방문했고, 모두 합해 9시간의 봉사활동을 했다. 바닥이 몰라보게 깨끗해진 경로당에서 유리창을 닦으며 아이가 이야기한다. “엄마, 힘은 들지만 좋다. 할머니들이 좋아하시니까 더 좋아!” 같이 청소를 했던 다른 아이들도 뿌듯한 얼굴은 마찬가지였다. 말복이라고 마당에 솥을 걸고 닭죽을 끓이시던 할아버지가 닭죽 한 그릇 먹고 가라며 붙잡으셨지만, 어찌 어르신들 잡수실 것을 축내랴 싶어 도망치듯 나오며 다같이 기분 좋게 웃음을 터뜨렸다. 땀 흘린 후의 상쾌함 덕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땀이었으니 그 기분을 더 말해 무엇하랴.

사전교육을 받았던 복지관에 모여 평가회를 하고 봉사활동 확인서를 받는 날. 활동보고 사진 속에서 커다란 고무장갑을 낀 아이가 활짝 웃고 있다. 경로당이란 곳을 처음 가봤다는 아이들이 저마다 신나게 경험담을 풀어놓는다. 엄마들 역시 애쓴 아이들을 대견해하며 아낌없는 박수를 쳐주었다. 9시간의 활동시간 확인서에 앞서, 아이가 어르신들 계신 곳에 직접 가서 어르신들을 보고 말씀도 듣고 최선을 다해 도와드린 것으로 아이의 첫 번째 봉사활동은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세대통합이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작은 만남이 그 시작이다.

유경/

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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