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
27일 국회 기자회견
“15년간 77개 넘는 사업 진행
원작자가 받은 돈 1200만원뿐
비극 재발 막을 제도적 장치 마련해야”

‘검정고무신’ 이우영 작가의 동생이자 ‘검정고무신’ 공동 저작권자인 이우진 작가가 27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검정고무신’ 이우영 작가의 동생이자 ‘검정고무신’ 공동 저작권자인 이우진 작가가 27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혼자 싸우다 멀리 떠난 형에게 책임감 없다, 심약하다고 하기 전에 형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주세요.” (이우진 작가)

“납치당한 기영이와 친구들을 유족들의 품으로 돌려보내고, 비극이 반복되지 않게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신일숙 한국만화가협회장)

저작권 분쟁 중 세상을 등진 ‘검정고무신’ 고(故) 이우영 작가를 기리고, 또 다른 비극을 막기 위해 유족과 국회의원,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모였다. 한국만화가협회 등 만화단체들이 주축이 돼 꾸린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가 27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우영 작가는 ‘검정고무신’ 캐릭터·콘텐츠 사업을 펼쳐온 (주)형설앤과 3년 넘게 저작권 분쟁을 벌여왔다. 원작자에 철저히 불리한 사업권 설정 계약을 체결했다며 저작권·수익 배분을 두고 고통을 호소하던 고인은 지난 11일 자택에서 별세했다.

고인의 동생이자 ‘검정고무신’ 공동 저작권자인 이우진 작가는 이번 사안에 대한 관심과 연대를 눈물로 호소했다.

“(형설앤과 계약을 맺은) 2007년은 인연이 아니라 악연이 돼 형의 영혼까지 갉아먹고 오늘 이 자리까지 오게 됐습니다. (...) 제가 못 받은 마지막 부재중 전화에서 형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요? 형이 마무리하지 못한 분쟁을 해결하고 후배·제자들이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달란 말 아니었을까요.”

이 작가는 “막내 조카가 아빠를 그리워하며 지은 시”라며 고인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시를 낭독하기도 했다.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장인 신일숙 한국만화가협회장이 27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장인 신일숙 한국만화가협회장이 27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대책위원장인 신일숙 한국만화가협회장은 “불공정 계약, 관행이란 이름으로 작품을 강탈당하는 행위는 창작자에겐 삶을 부정당하는 것과 같다. 형설앤은 작가가 손수 만든 캐릭터로 인질극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한국 문화의 화려한 발전에 기뻐하기보다 창작자의 생명과 자존감을 지키는 게 우선이다. 우리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고인의 저작권을 공동저작자인 작가와 유족들에게 되찾아드리고, 다시는 이같은 불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겠다. 연대해달라”고 말했다.

강욱천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사무총장은 “형설앤은 지난 15년간 ‘검정고무신’ 원작을 활용해 약 77개 사업을 진행하면서 이우영 작가에게 1200만원을 지급했다. 1년에 80만원, 사업당 약 15만원을 지급한 꼴”이라고 주장했다.

김은정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예술가의 권리를 법률로써 보호한다는 내용이 우리 헌법에 있는데도 열악한 창작 여건과 불공정 계약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정부의 뒤늦은 대응으론 만연한 불공정 행위를 근절할 수 없다. 말로만 예술인 권리와 복지를 말할 게 아니라 결과를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문화예술스포츠위원회 소속 범유경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 변호사는 “정말 많은 만화·웹툰 작가들이 불리한 수익분배, 사업권을 작가 마음대로 행사할 수 없는 문제 등 위법적이고 상식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계약조항에 고통받고 있다”며 “한 작가의 불운이 아니라 업계 전체의 고통이다.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제도적 해결을 위해 노력해달라”고 말했다.

여야 의원들도 연대 발언에 나섰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만화··웹툰 작가들의) 과도한 노동, 불공정 계약,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 등을 보면 우리는 또 다른 이우영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작가에 대한 공정한 처우와 제작환경 개선을 위해 관계부처의 적극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많은 창작자가 작품의 성과로부터 소외되고 작품의 변화와 성장에서 배제된다”며 “문화예술 창작자가 언론에 나오려면 굉장히 큰 상을 받거나 목숨을 끊어야 한다는 말도 들었다. 이것이 과연 문화강국인가”라고 비판했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도 “고인이 형설앤과 맺은 계약서, 법원에 제출한 진술서 등 자료를 살펴봤다. 고인은 저작권을 강탈당하고 수익 배분에서 소외되고 창작권까지 빼앗겼다. ‘불공정행위 종합세트’를 보는 듯했다”고 비판했다.

유정주·김승수 의원이 창작자 권리 보호를 위해 각각 대표발의한 ‘문화산업 공정유통 및 상생협력에 관한 법률’은 국회 소관 상임위에 머물러 있다.

대책위는 △형설앤과 장진혁 대표의 공식 사죄 △‘검정고무신’ 관련 일체의 사업권을 유족에 반환 △이우영·이우진 작가에 대한 민사소송 취하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엄중 조사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이후 국회의원회관에서 비공개 토론회를 열고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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