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대학교육 정상화를 위한 2008학년도 이후 대학입학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하면서 학부모와 교사들 간에 의견이 분분하다. 특히 수능의 비중을 낮추고 대학별 논술과 면접을 달리해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함은 물론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취향과 능력에 맞는 대학을 선택할 수 있게 한다는 교육부의 취지와는 달리 학부모들은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고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즉흥 정책'이라는 불만을 내놓고 있다. 바뀌는 수능 제도와 관련해 교사와 학부모들이 제기하는 현장의 소리를 들어봤다.

'수능 비중 축소 내신 확대' 공교육 살리기 역부족

고교서열화·대학 본고사 등 사교육 과열 불보듯

“대학 서열화 있는 한 백약이 무효”

-이철호(42·전교조 참교육 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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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학년도 수학능력시험부터 수능점수보다 내신의 비중이 커지는 입시제도가 발표된 가운데 지난달 31일 오후 지하철 플랫폼에서 한 여중생이 고단한 표정으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다. <이기태 기자 leephoto@>
교육부는 8월 26일 내신 9등급제, 수능 9등급제, 대학별 고사를 핵심으로 하는 2008학년도 입시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이번 시안은 그간 대입제도 개선을 요구한 국민의 의견을 전혀 수렴하지 않았고 교육문제의 근원인 대학서열체제로 인한 학벌을 그대로 둔 미봉책이라는 점에서 공교육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소지가 있는 위험스러운 안이다.

먼저 개별 학교의 교육활동을 중시하는 내신 중심의 선발이라고 하지만 실제 내신뿐만 아니라 수능 및 대학별 고사도 모두 중시해야 하며, 이에 대한 실질적인 선발권은 대학이 갖게 된다. 때문에 수험생의 입장에서는 입시 경쟁의 부담이 여전하고 사교육 수요 또한 줄어들 가능성이 없다. 게다가 각 대학은 변별력을 이유로 대학별 본고사의 부활을 벌써부터 요구하고 있으며 이는 새로운 사교육 시장의 형성을 불러올 것이다. 또한 대학이 자체적인 평가를 토대로 중등학교의 서열을 매기는 등급제를 실시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이번 시안이 발표되자마자 모 사립대 총장은 고교등급제 실시 발언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고교등급제는 일종의 연좌제로서, 개별 학교의 지금까지의 입시성적만으로 그 학교에 다니는 모든 학생의 미래를 서열 짓는 결과를 빚는다. 이는 학교선택권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자칫하다가는 망국적인 고등학교 입시까지 부활될 우려가 크다.

“강남·비강남 편가르기식 보도도 문제”

-배경미(43·노원구 상계동)

대학 서열화 구조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 어떤 입시 제도도 우리 교육을 정상화할 묘약이 될 수 없다. 벌써 입시 경쟁의 치열함은 변함 없으리라는 교육 기득권 층의 낙관론이 힘을 받는다.

강남에 사는 것이 유리한지 아닌지부터 따지는 언론의 논조는 교육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이다. 이번 개혁안이 현재의 수시 모집 형태를 확대한 것에 불과하다고 폄하하는 사교육 기관 입시 전문가들의 의견도 솔솔 흘러나온다. 그들에게 아이들은 이 교육시장의 소비자로서 버릴 수 없는 황금알이기 때문이다. 모 명문대 총장의 고교 등급제 발언에는 그야말로 아연할 뿐이다. 헌법상의 평등권을 무시하는 중대한 발언이다. 그런데도 이 말에는 왠지 잠잠하다. 이해하기 어렵다.

강남의 상위 4%는 인재이고, 비강남의 상위 4%는 믿을 수 없다는 발상은 철면피한 독식의 횡포다. 한 나라의 대표적 지성이 대학 서열화도 부족해서 고교 서열화까지 유도하다니. 고2, 중3 아이를 둔 나는 내 아이와 그 친구들이 정말 행복한 10대를 보내길 원한다. 그래서 밤늦게 아이들을 붙잡아 놓고, 방학에도 오후 5시까지 공부시키는 학교를 좋은 학교라고 칭찬하는 학부모들의 이기심이 싫다. 대학 랭킹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획일적인 서열화 구조가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한, 그리고 우리 스스로 이 신화를 없애려 앞장서지 않는 한 그 어떤 입시제도도 아이들에게 행복할 권리를 줄 수 없을 것이다.

“15번씩이나 고쳐도 달라진 게 없어”

-양성미(43·대구 수성구)

공교육의 여건과 환경이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론의 수렴 과정 없이 즉흥적으로 불쑥 내놓은 정책이어서 당황하고 있다. 공교육의 질을 개선할 의지와 수준을 향상시킨 후 이를 제도적으로 반영하고 강화하는 입시제도가 수반되어야 하는데, 그런 절차 없이 단번에 도입하려 하고 있다. 신중해야 할 교육정책을 조급하게 여론으로 몰아넣는 방법은 적절하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내신의 비중을 높이는 것은 오히려 학부모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이다. 고교 1학년 때부터 평가대상에 넣음으로써 지나친 경쟁을 야기, 학생 간 노트 안 빌려주기 같은 적대주의를 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은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또한 학생 변별력을 위해 중간·기말고사가 어렵게 출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학생·학부모 고통은 불변”

-김영진(41·서초구 반포동)

중2, 초등3년인 아이를 둔 엄마로서 새 대입제도가 내신 비중을 높인다는 대목에 한숨부터 나왔다. 모두 돈으로 해결하려 하고 그 혜택을 받은 아이가 좋은 결과를 얻으면 사교육시장은 더욱 세(勢)를 얻을 것이 분명하다. 또한 이번 제도의 문제는 학교 간 학력차를 인정하지 않는 내신과 등급제라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국어 고등학교나 과학고등학교가 심층면접에 강하기 때문에 전형자료로 활용하면 특목고가 인기가 있을 거란 얘기도 있다. 그리고 수능을 없애지 않는 한, 비중을 줄인다고 해도 어차피 수능 대비는 해야 하니 오십보백보다. 공교육 내실화는 단순히 내신비율을 높이는 것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학생들이 많은 내신 과목과 수능 과목에 시달리는 한, 교육의 기본 취지인 전인적 인간 양성은 요원한 과제가 될 것이다.

“내신성적 공정성 확보부터”

-박재현(41·한양대학교사범대학부속중학교 교사)

이번 제도는 현행 체제를 개선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입시에 대한 학생들의 부담을 줄이고 사교육 근절과 더불어 공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학과 학생을 서열화해 줄긋기 하는 것에 익숙해진 입시관계자들(학생, 학부모, 교사, 학원관계자 등)은 등급화된 수능성적이나 내신성적만으로 어느 대학의 어느 학과에 지원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할 것이다. 기본적인 학업 능력이 비슷하다고 판단되는 상황에서 학생과 학부모가 당락의 기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것이고, 객관성과 공정성의 문제가 불거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내신성적 산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고, 학교나 교사의 위상을 높이기보다 불신을 가중할 수도 있다. 또한 수능과 내신성적 이외의 나머지 전형방법(논술이나 심층면접 등)에 대한 사교육은 더욱 심화되어 사교육의 재편성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모든 대학에 학생 선발의 자율권을 부여하여 대학이 필요로 하는 학생을 선발할 수 있게 하고, 서열에 따라 대학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와 특성에 맞는 대학을 선택할 수 있게, 대학입시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는 거대담론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로 축소될 수 있도록 전환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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