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7일·자정 근무 일상인
IT노동자·간호사·웹툰작가 인터뷰

정부가 6일 주 69시간 근로 시간 개편안을 발표했다. 개편안에 따라 평일 자정까지 혹은 주말에도 일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자 많은 사람들의 반발이 나왔다. 결국 21일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는 건강보호차원에서 무리”라며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주 69시간이 도입되기 전인 지금도 이에 맞먹게 장시간 근로를 하는 이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IT 노동자, 간호사, 그리고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웹툰 작가다. 여성신문에서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장시간 노동의 현실과 문제점을 살펴봤다.

게임 산업에 종사 중인 A씨의 시간표. ⓒ여성신문

주7일이 자연스러운 IT 노동자
“크런치 모드엔 자정 퇴근 일상”


게임 업계에서 일하는 A씨는 평소에는 아침 10시에 출근해 저녁 9시에 퇴근한다. 그러나 현재  CBT(게임 베타 테스트)가 4월에 잡혀 크런치 모드가 선언된 상태다. 크런치 모드는 데드라인을 맞추기 위해 야근과 특근을 반복하는 것을 의미하는 IT 업계의 용어다. 평일에는 밤 10시 퇴근이 기본이고, 자정을 넘긴 퇴근이 일상이다. 주 7일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장시간 업무를 하는 대신 휴가를 쓸 수 있는 상황일까. A씨는 “게임 서버에 대한 초과근무 기간에서 업무만 바뀐 채 계속 일하다 연말에야 여름휴가를 쓰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여름’ 휴가 기간은 12월 말이었다. 

장시간 업무는 건강에도 영향을 미쳤다. 2022년 5월 초 사전 예고없이 시작된 초과근무는 6월 게임 서비스 시작, 9월 게임 서비스 종료까지 이어졌다. 누적된 피로는 아직도 A씨를 힘들게 하고 있다. A씨는 “현재까지도 원활한 기상이 거의 불가능하다”며 ”올해 3월 초중순까지는 주말에도 점심쯤까지 늦잠을 자야 그날의 활동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3교대로 일하는 간호사 김주희(28)씨의 근무 시간표. ⓒ여성신문
3교대로 일하는 간호사 김주희(28)씨의 근무 시간표. ⓒ여성신문

 

주 5일 야간 근무하는 간호사
자유로운 휴가 “꿈도 꿀 수 없어”


3교대로 일하는 간호사 김주희(28)씨는 밤 9시 30분에 출근해 다음날 아침 7시 30분까지 일한다. 인력이 부족한 날에는 오후 7시에 출근해 다음 날 아침 7시 30분까지 일하는 경우도 잦다. 보건복지부는 간호인력 처우 개선을 위해 ‘간호 인력 야간근무 가이드라인’을 규정해 연속야간근무를 3일로 제한했다. 그러나 의무가 아니고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주 4일은 물론 주 5일 야간근무도 빈번히 발생한다.

노동시간과 더불어 극심한 노동강도는 간호사를 병들게 하는 주요 요인이다. 하루 종일 서 있거나 물 한 잔 마시지 못하고 뛰어다니는 탓에 다리 부종과 정맥순환장애가 직업병이 됐다. 혼자서 16명의 환자를 담당했다는 김 씨는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매일 코피를 흘렸다”며 “어깨와 허리에 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간호사가 흔하다. 같이 일하는 간호사는 계속 코피를 흘리다 쓰러지기도 했다”고 밝혔다.

원하는 대로 휴가를 쓸 수 있냐는 질문에는 “꿈도 꿀 수 없다”고 답했다. 교대 근무를 하는 간호사 특성상 병원에 간호인력이 비지 않도록 휴가 일정을 조율해야 하는데, 항상 간호인력이 부족한 탓에 원하는 날짜는커녕 휴일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환자 수에 따라 간호사 수를 강제하는 규정이 없다”며 간호사의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웹툰 작가 B씨의 근무 시간표 ⓒ여성신문
웹툰 작가 B씨의 근무 시간표 ⓒ여성신문

주 6일 12시간
여행 가서도 작업하는 웹툰 작가


웹소설과 웹툰을 같이 작업하는 작가 B씨는 주 69시간은커녕 72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가 잦다며 “웹툰 업계는 매일이 크런치 모드”라고 표현했다. 매주 결과물을 올리는 웹툰 특성상 마감 전에는 식사와 잠도 포기하며 작업에 몰두한다. 특히 마감에 시달렸던 지난해 11월 B씨는 한 달 동안 하루 15분에서 30분 엎드려 자는 게 고작이었다며 ‘이러다가 정말 과로로 죽는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극단적으로 긴 노동시간은 심신 모두에 큰 타격을 입혔다. 특히 근골격계 질환은 없는 게 없다. B씨는 근막염, 손목터널증후군, 어깨 유착성낭염을 앓고 있다. 또한 우울증 약과 공황장애 치료제, 콘서타(ADHD 치료제)를 복용하고 있으며, 2019년엔 암으로 의심되는 종양을 발견해 치료받기도 했다.

웹툰 작가는 이론상 자유롭게 쉴 수 있으나 무급휴가이기 때문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쉬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쩌다 여행을 가도 마감을 지키기 위해 새벽까지 노트북을 붙잡고 작업한다. 집에서 작업만 하면 정말로 정신에 이상이 올까 봐 억지로 여행길에 나섰다는 B씨는 숙소에 도착해 집에서보다 더 긴 시간을 마감 작업에 할애했다.

여성에게 더 큰 부담될 주 69시간 개편
“지금의 지옥에선 더 많은 환자가 나올 것”


장시간 노동을 하는 IT 노동자와 간호사, 웹툰 작가는 한목소리로 정부의 주 69시간 개편안이 ‘개악’이라고 꼬집었다. A씨는 “주 69시간으로 바뀌면 활용 가능한 여가 시간 및 휴식 시간의 총량이 부족해진다”며 “지금도 짧은 통근 시간과 식기 세척기같은 생활 가전의 도움으로 간신히 버틴다”고 말했다. 간호사 김주희 씨는 “간호 인력이 부족한 이상 몰아서 일하고 원할 때 쉬는 제도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웹툰 작가 B씨는 “헛웃음만 나온다. 지금도 빨래 못한 지 2주째다. 지금의 지옥에서 더 많은 환자가 나올 거다”고 지적했다.

장시간 근로를 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특히 주 69시간으로 개편되면 여성들이 겪는 부담이 커질 것이라 우려했다. A씨는 “기혼 가구의 경우 가부장제인 한국 사회 내에서 여성에게는 돌봄노동 및 건강 문제로 커리어 조기 은퇴에 대한 압력이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남성에게는 혼자서 가정을 부양해야 하는 부담감이 높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간호사 김주희 씨는 “여전히 아이를 돌보거나 집안일을 하는 것은 여자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문화가 잔재한다”며 “장시간 노동을 했을 때 일과 일상생활이 양립할 수 없다”이라고 꼬집었다. 웹툰 작가 B씨는 “웹툰 작가는 자택에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온 주변의 돌봄 노동이 그 사람에게 집중된다”며 “애초에 그런 돌봄노동이 무리한 것을 알기에 자녀계획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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