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란/

여성학자

우명미 선생이 갔다…솔직히 나는 이날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선생처럼 글자 그대로 좋은 사람,

좋은 시민을 만난 적이 없다. 그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나 일이 있으면 몸을 사리지 않고 도왔다

아마 여성신문 행사였었지, 그게? 워낙 날씬했던 선생은 한층 더 마른 몸으로 나타났지만 예의 활달한 웃음으로 주위를 환하게 밝혔다. 이제 병마는 완전히 물러난 듯했다.

처음 수술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선생은 ‘이 사람 환자 맞아?’ 싶을 정도로 씩씩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과 힘 어린 목소리는 몇 달 전 자궁수술로 엄살을 있는 대로 떨면서 풀죽어 있던 나를 참으로 부끄럽게 만들었었다. 그래, 사람이 이 정도는 돼야 성숙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지, 이 여자야 넌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빌빌댈 거냐.

그 후 또 다른 모임에서 선생의 건강한 모습을 다시 한 번 확인한 나는 늘 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도 그냥 또 무심하게 세월을 죽였다. 그러다가 작년 봄 선생의 재입원소식을 듣고서야 놀라서 뛰어갔다. 아, 그 때 선생은 아주 지쳐 보였다. 방심했던 것 같다면서 스스로를 탓했다. 하지만 선생은 이미 마음을 정리한 듯 아주 차분했다. 자주 올게요, 힘 내세요라고 말했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마음이 너무 무겁다보니 선생의 얼굴을 다시 보기가 두려웠다. 입·퇴원을 거듭한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병원도, 시골집도 찾아가지 못했다. 가면 마지막 인사를 하러 왔다는 인상을 줄까봐 겁났다.

역시 선생은 대단한 분이었다. 따님을 통해 도무지 얼굴을 보여 주지 않는 이들을 스스로 병원으로 불러들였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보고 싶은 사람들을 다 만나 인사를 남기고 싶다고 했다. 나 죽은 다음에 와서 울지 말고 살아 있을 때 얼굴 좀 보자.

그렇게 불려가서 만난 선생은 또 한 번 나를 감동시켰다. 모든 것을 다 비운 인간의 아름다움. 선생은 액자에 넣은 영정사진을 보여 주며 어떠냐고 물었다. 선생의 표정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해맑았다. 그 표정이 너무 좋아 며칠 후 다시 갔더니 그 새 내가 드린 책을 이틀만에 다 읽었다고 했다. 이런 최고의 독자가 또 어디 있을까. 죽음을 앞에 두고도 타인에게 힘을 주고 싶어하는 사람, 선생은 평생을 그렇게 산 분이었다.

우명미 선생이 갔다. 만난 지는 채 스무 해가 안되었지만 나는 선생을 깊이 사랑하고 존경했다. 나이 들어서 함께 살고 싶어서 선생의 시골집 이웃에 기를 쓰고 터를 마련했을 정도였다. 선생은 한 마디로 ‘좋은 사람’이었다. 솔직히 나는 이 날 이 때까지 살아오면서 선생처럼 글자 그대로 좋은 사람, 좋은 시민을 만난 적이 없다. 형편은 썩 넉넉지 않았지만 마음은 늘 부자였던 분이었다. 그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나 일이 있으면 몸을 사리지 않고 도왔다. 이 셈속 빠른 세상에서 돈도 명예도 그 무엇도 바라지 않는 그의 모습은 인간에 대한 신뢰감을 키워 주기에 충분했다. 반평생 동안 지속되어 온 생계와 봉사라는 이중 부담으로 선생의 몸은 항상 과부하 상태였지만 그 피로한 얼굴에서 웃음이 떠난 적이 없었다.

나는 선생을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을 즈음 여성신문에 편집위원으로 그를 끌어 들였다. 주체적이고 창의적인 모습이 아름다웠고 무엇보다 넉넉하고 맑은 인품에 끌렸다. 창립 초창기 그 어려웠을 때 선생은 놀라운 열정으로 편집위원의 역할 그 이상을 해냈다. 기획에서 기사작성, 구독권유 그리고 직원들 다독임까지, 든든한 큰언니처럼 여성신문을 살뜰히 챙겼다.(그런데 여성신문은 그 빚을 언제 갚을까)

지금의 정동으로 이사 오기 전 여성신문은 잠깐 동안 불광동에 있었다. 양재동에 있을 때보다 거리가 굉장히 멀어졌지만 선생은 손자를 돌보느라 바쁜 와중에도 편집회의에 열심히 참석했다. 선생의 열의는 다른 편집위원들을 자극시켜 회의는 언제나 활기찼다. 그 여세를 몰아 어느 늦가을 죽이 맞은 편집위원 넷-우선생, 최윤희, 박영숙 그리고 나-이 강원도 바람을 타고 고성으로 달려간 적이 있었다.

미친 듯이 바람 불던 그 날이 새삼 어제처럼 떠오른다. 선생이 또 큰언니처럼 밥을 해주려고 해서 우리가 화를 내며 뜯어 말렸지. 엄마 노릇 좀 그만 하라고. 맛있는 것 사 먹자고. 그 날 밤 우린 오래된 여고동창생들처럼 무던히 웃고 무던히 떠들어댔다.

이렇게 헤어질 줄은 그 땐 정말 몰랐다. 아름다운 사람 하나 또 놓쳐 버리고 난 죄 없는 소주만 들이킨다. 몸에 해로운 술 고만 마시라는 선생의 말씀을 귓등으로 흘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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