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숙

공주대 교수

잔혹한 식민정책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 탓이었을까. 일본어판 마르크스-엥겔스전집이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였던 시절에 사회주의를 전공하면서도 일본어는 배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박대통령 과거사 논란에 이어 여당 의장 부친의 친일행적 파문이 일 무렵 일본의 학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겨우 두 번째 방문인지라 오랫동안 지녀왔던 본능적 거부감이야 여전하지만 이번엔 조금씩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우선 일본인들의 철저한 이중성이다. 겉으로 보이는 부드러움과 친절함 그리고 예의바름 밑바닥에 똬리를 튼 냉정함의 상반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둘째, 우리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인데도 알면 알수록 이질감을 느끼게 되는 이유이다. 일본 마쓰리(祭)도 8할 정도는 한국적인 것들이다. 그런데도 식민사가 남긴 저항감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거리감의 실체는 무엇일까. 셋째, 일본을 왜 '작은' 섬나라 정도로만 여겨왔을까 하는 것이다. 일본의 면적은 한반도의 2배이다. 그런데도 일본인들 스스로 작은 나라라고 이야기해 왔기 때문이라는 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착각을 해 온 것이다. 넷째, 일본 정치문화의 독특성이다.

일본의 경우 회사원들은 회사에 헌신하는 회사 사회주의 국가요,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 되려하지 않는 천황 사회주의 국가요, 서구 사민주의를 접합해 발전시킨 동양적 사회주의 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전 사회가 조직화되어 있어 어떠한 돌출행동도 허용되지 않는다. 총선에서 우리의 시민단체들을 모방해 대대적인 낙선운동을 전개했지만 일본정국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처럼 유기체적인 사회구조가 견고하게 조직되고 유지되는 힘은 무엇일까.

두 번 방문하고서야 겨우 싹트기 시작한 호기심은 일본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던가를 새삼 깨닫게 했다. 그리고 어쩌면 치욕을 겪은 우리가 본능적 거부감만으로 일본을 쉽게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역설적인 생각도 들었다.

바닥을 친 경제 탓에 민초들의 한숨이 하늘에 닿는다. 그런데도 보수-진보로 갈려 민심을 흔들던 정치권은 이제 과거사 논쟁까지 보탰다. 물론 식민과 분단 그리고 독재시대의 과거청산은 반드시 필요하다. 굽은 역사에 대한 평가는 후손들에게 바른 역사를 물려주어야 할 우리 시대의 몫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과거사 정리는 그렇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주도세력이 정치권이어서는 안 된다. 전문가 집단에 맡겨야 한다. 그 전문가 집단을 어떻게 구성하는가도 매우 중요하다. 역사 흐름의 안팎에서 가해자 측에도, 피해자 측에도 연루된 적 없는, 그리고 단 한 차례도 정치적 힘에 휩쓸린 적 없는 전문가가 엄선되어야 한다. 이들이 정권과 무관하게 역사적 사안들을 햇볕 속으로 차근차근 끌어내고 꼼꼼하게 살펴 올곧은 판단을 내려야 한다. 어느 한 정권이, 그것도 스스로조차 일제 고문사와의 연줄을 끊어낼 수 없는 정객들이 단기간에 칼로 무 자르듯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게다가 여야를 막론하고 지금의 정국을 주도하는 이들은 식민통치의 경험은 물론 일본을 '작은'섬나라 정도로 생각할 만큼 일본에 대해 체계적인 교육조차 받아본 적 없는 세대이다.

“정치란 너무나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정치인에게 맡길 수 없다”. 정치적 시련기에 직면한 우리 사회에 꼭 맞는 듯한 드골의 말이다. 하물며 역사 청산에 있어서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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