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통계, 남녀 간 격차보다
구조적 불평등 드러낼 수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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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격차 자체가 아니라 남녀를 구분하여 다른 역할과 책임을 부여하고 다르게 보상하는 기업 내부의 젠더 관계로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는 그것을 직관적으로 보여줄 다른 종류의 통계가 필요하다. ⓒPixabay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올해도 어김없이 성별 임금격차, 고위직 여성 비율 등을 제목에 내건 기사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러한 통계는 불평등한 현실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보다 논란을 키우는 불쏘시개가 된 것 같다. 더 이상 우리사회가 여성에게 불평등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극심한 성별 격차를 나타내는 통계 수치는 의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순위가 극단적으로 상이한 글로벌 성평등 지수들도 논란을 가중했다. 각각의 지수가 젠더 문제를 규정하는 관점과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상위 6%(2020년 GII 기준)와 상위 68%(2022년 GGI 기준)의 간극은 좀처럼 납득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성평등 수준에 대한 공통의 인식 형성의 ‘객관적’ 근거로서 이 수치들의 가치가 의심받는 만큼, 우리사회가 성평등한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흔들리고 있다.

통계가 드러내지 못하는 ‘구조’

사실 ‘객관적’ 통계란 존재할 수 없다는 주장은 페미니즘에서 기원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찍이 페미니즘은 통계의 정치성을 간파했고, 표본이 가정하는 표준적 인간 개념이 성차를 간과하며 그렇게 생산된 데이터가 불평등을 비가시화했다고 비판했다. 동시에 페미니스트들은 성별 불평등의 실증적 지표를 만들어냄으로써 정책 입안자와 시민들에게 성평등 정책의 필요성을 설득해 왔다. 통계를 활용한 페미니스트 정치의 거듭된 발전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지금과 같은 곤경에 처하게 되었을까.

페미니스트들은 우리사회 ‘구조적 성차별’의 존재를 입증할 근거로 성별 임금격차와 같이 남녀 두 집단 간의 총계적 차이를 주로 제시해 왔다. 하지만 그 수치에서 바로 ‘구조’를 읽어내는 건 불가능하며, 우리사회 성별 불평등이 어떻게 재생산되는지 드러내는 효과 역시 역부족이다. 전체 노동자의 임금을 남녀 두 집단으로 나누어 비교한 성별 임금격차는 노동시장에서 임금을 결정하는 불평등 체제 - 젠더, 연령, 학력, 지역 등의 위계가 얽힌 그 복합적 구조를 되레 납작하게 재현할 뿐이다.

남녀 간 격차와는 다른 ‘젠더 통계’

젠더 이론가 래윈 코넬은 우리가 젠더를 사고하는 방식이 젠더 문제 해결을 위한 행동 방식의 핵심이며, 젠더를 생물학적으로 정의된 남녀 범주로 사고하는 방식의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기업 내 고위직 남녀 비중이 젠더 문제로 제시되면 해법은 수적 균형을 맞추는 것으로 귀결되어, 정작 변화의 대상이 되어야 할 기업조직은 관심밖에 놓인다는 것이다. 성별 격차 자체가 아니라 남녀를 구분하여 다른 역할과 책임을 부여하고 다르게 보상하는 기업 내부의 젠더 관계로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는 그것을 직관적으로 보여줄 다른 종류의 통계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가족 돌봄 부담이 없는 ‘이상적 노동자’ 상을 유지하고 있는 기업이 얼마나 되는지 보여주는 통계, 남녀 간 역할과 지위 격차가 큰 조직에서 폭력이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젠더 기반 폭력의 기저를 드러내는 통계 등 우리사회가 해결해야 할 구조적 문제를 직접적으로 지시하는 통계는 남녀 간 격차와는 분명 다른 정치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위축된 페미니스트 정치의 재점화는 이러한 젠더 통계를 더 많이 개발하고 축적하는 데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김원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평등전략사업센터장
김원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평등전략사업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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