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독일 '인정' 일본 공론화 단계

다른 나라에서는 아내 강간죄에 대해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미국에서는 80년대 초까지 아내를 강간한 경우에 처벌받지 않았다. 혼인계약의 조건에 아내는 남편이 원할 때는 언제나 성관계에 응한다는 철회할 수 없는 동의가 포함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매사추세츠 주법원이 이 이론을 최초로 채택한 이후 80년대 초까지 미국 형법상의 강간죄의 핵심원리로 작용했다.

이러한 '면책 이론'이 본격적으로 비판된 것은 페미니즘이 급속히 성장하기 시작한 80년대에 이르러서다. 84년 뉴욕 항소법원은 “강간은 단순히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는 성행위가 아니다”라며 “혼인증명서가 남편이 형사면책을 갖고서 아내를 강간할 수 있는 자격증으로 파악되어서는 결코 안 되며, 기혼여성도 미혼 여성과 똑같이 자신의 신체를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고 판결했다. 이러한 판결은 '아내 강간의 면책'을 폐기하는 계기가 됐다. 현재 20여 개 주에서 입법이나 판결로 이러한 '면책 이론'은 사라졌다. 즉 아내강간죄도 강간죄의 일종으로 보고 처벌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독일의 형법은 97년 이전까지 강간죄에 대하여 '혼인 외 성관계'만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따라서 남편에 의한 폭행, 협박을 사용한 강간의 경우에도 처벌될 수가 없었다. 그러나 97년 이러한 형법을 개정하면서 '혼인 외 성관계'라는 문언을 삭제함으로써 아내를 강간하는 경우에도 강간죄로 처벌될 수 있도록 했다. 현행 독일 형법에서 아내강간은 아무런 조건이나 제한 없이 범죄가 성립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아내강간에 대한 특별한 규정은 두고 있지 않다. 일본 학계의 통설은 계속적인 성관계를 전제로 하는 부부 간에는 혼인관계가 실질적으로 파탄되지 않는 한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해석하고 있다. 판례 역시 법률상으로는 부부이지만 혼인이 실질적으로 파탄에 이른 경우 아내강간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통상의 혼인관계에서 남편이 폭행이나 협박을 통해 아내를 강간한 경우 강간죄 성립여부에 관해서는 판례가 없는데, 이러한 경우에도 강간죄 성립을 인정하자는 학설이 강력히 대두되고 있다.

정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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