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여성관의 양면성

팔경법 변성남자성불설… 색즉시공 공즉시색, 승만경 서로 대조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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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여성관은 완전히 성차별적이지도, 또 완전히 양성평등적이지도 않는 복합성을 지니고 있다. 사진은 사찰에 모인 여성신도들.

불교는 성차별적인가 혹은 양성평등적인가? 이것은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우선 불교에는 성차별주의로 보이는 비구니팔경법과 변성남자성불설(變性男子成佛說)이 있다. 비구니 팔경법은 비구니가 비구를 공경해야 하는 여덟 가지 법으로 그 중 하나를 보면, 비구니는 비구를 보면 연령의 고하를 막론하고 먼저 인사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듯 비구니 팔경법은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성차별적 규범임이 분명한데 불교계 내에서는 부처님이 정한 핵심 계율(특히 남방 불교에서), 혹은 후대에 조작된 것, 또는 당시 지독한 가부장제 인도 사회에서 비구니들을 보호하기 위한 한정된 역사적 유의미성을 지녔던 계율이라는 등 의견이 분분하다. 변성남자성불설은 남자의 몸으로만 성불할 수 있다는 사상으로 일부 초기 대승경전에 나와 있다. 이것 역시 지독한 성차별주의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비구니 팔경법과 변성남자성불설은 오늘날 한국 불교에서 분명한 위력을 미치고 있다. 비구, 비구니 스님들이 함께 회의를 할 때 비구니 스님은 교단 내 지위나 연령 고하를 막론하고 비구들 뒤에 앉아야만 한다고 한다. 또한 얼마 전 탁연 스님이 조계종 문화부장 자리에 오른 것이 세간에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이는 역으로 불교계의 요직은 비구들이 차지하고 있음을 말해주며, 이러한 관행의 이면에는 비구니 팔경법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비구니 팔경법을 체화하고 스님으로서의 아만(我慢)에 빠진 일부 비구 스님들에 대해 여신도들은 실망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만이 불교의 모습이라면 많은 여성들이 비구니 혹은 재가불자로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설명되지 않는다. 부처님은 이모이면서 양모였던 마하파자파티고타미와 그의 추종자인 500명의 석가족 여인들을 비구니 승단으로 인정하고 여성도 성불할 수 있음을 분명히 표명했다. '테리가타'(비구니의 고백)나 '쌍윳타니까야'와 같이 가장 오래된 초기 불경들에는 성불한 여성들이 도처에 소개되고 있다.

특히 앞 책에는 시집살이에 혹사당한 여성, 기생, 매춘 여성들과 같이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여성들의 출가와 성불이 소개되고 있다. 가부장적인 결혼만이 여성의 유일한 살 길이었던 당시 인도의 풍습에 비춰 볼 때 이는 불교의 혁명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탈 가부장적 모습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또한 후기 대승경전인 유마경에서 천녀와 사리불의 대화에서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불교 세계관에 따라 고정된 여성성을 부정하고 있으며 '승만경'에서는 재가 불자인 승만 부인의 설법을 부처님의 설법에만 붙이는 '사자후'라고 붙이고 있어 부처님이 승만 부인의 성불을 수기해주고 있다.

'승만경'은 신라시대 이래 오늘날까지 한국의 비구니들과 재가 불자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고, 이것은 한국 비구니 승단이 다른 나라의 비구니 승단(아예 남방 불교에서는 비구니 승단이 존재하지 않는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상대적 독자성과 권위를 설명해주는 한 요인이 된다고 보인다. 한국의 비구니들은 주지로 사찰 운영권을 갖고 있으며 불교대학의 교수로 비구를 가르치기도 하고 여성 불자들의 정신적 지도자이기도 하다. 한마음 선원의 대행 스님 같은 분은 수행의 영역에서 전 세계적이라 할 수 있는 큰스님으로 우뚝 서기도 하셨다.

김정희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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