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시험 치르게 해달라” 국회 청원

2002년 꿈의 한국행…직업선택 한계에 좌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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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한의사로 일하다 1999년 중국으로 탈출, 2002년 3월 한국행에 성공한 김지은(39)씨는 이달 초 국회에 '탈북자가 한의사 자격 취득 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원했다. 국회에 청원서를 제출한 탈북자는 김지은씨가 처음이다. 김씨는 1988년 북한 청진의대 동의학부를 졸업한 뒤 1999년 북한을 떠날 때까지 한의사와 의학 연구원으로 일했다. 중국에서 가정부, 도시락 판매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불안정한 신분 때문에 여러 차례 한국행을 시도, 동남아시아의 한 국가에서 붙잡혀 중국으로 송환돼 감옥생활을 하기도 했다. 결국 한국행에 성공한 김씨는 남한에 오자마자 한의사자격증 취득 시험을 치를 수 있게 해달라고 민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그의 요청은 매번 좌절됐다.

통일부는 그의 학력을 인정했지만 한의사 시험을 관할하는 보건복지부는 “북한에서의 학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냉담한 반응으로 일관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던 김씨는 자살을 결심하기까지 했다.

“한국에 왔을 때 처음엔 별천지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모든 것이 풍족해 보여서 정말 부러웠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니까 탈북자들이 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렸습니다”

그는 '죽을 각오로 살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그러자 '보이지 않았던 도우미'들이 나타났다. 이번 국회에 청원을 낼 때도 김현미 열린우리당 의원의 도움을 받았다.

“북한에서 의사는 존경받는 직업이긴 하지만 남한처럼 고소득 직종은 아닙니다. 식량난이 한창 심했을 때 저도 8일동안 굶은 적이 있습니다. 죽을 고비를 몇 번 겪고 나니 대담해지더군요”

그는 현재 비혼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중국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씨에게 남한 사회는 '꿈에 그리던 낙원'이 아니었다.

김씨는 “어린 학생들은 예의가 없어 보였고 여성들은 매우 권위적이란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2년째 남한사회를 경험하게 되니 여성들의 입장을 이해하게 됐다”면서 “남한에서 살아가려면 권리를 강하게 주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탈북 주민 재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남한 정부의 지원이 절실함을 강조했다.

임현선 기자 su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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