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숙원' 눈앞…평등가족 뼈대 갖춘다

한 사회의 질적 발전은 인권에 대한 의식 수준과 비례한다. 특히 '비주류'로 대변되는 여성문제를 발굴하고 끊임없이 그 중요성을 사회에 환기시켜 성주류화와 양성평등을 사회가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이념으로 만들어온 여성운동과 이를 조직화해 이끈 리더들은 우리 사회의 질적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이에 <여성신문>은 하반기 주요 기획으로'한국 사회를 변화시킨 여성리더들'을 13회에 걸쳐 연말까지 연재한다. 이번 기획 시리즈를 통해 현존하는 여성리더들의 삶과 운동철학을 통해 사회적 영향력과 의미를 살펴보는 한편, 미래 여성리더의 비전과 대안적 역할모델을 제시하고자 한다. 더불어 사회의 근간이 될 여성리더 양성을 위한 사회제도적 개선 방안도 모색해 본다.

한국언론재단이 지원하는 이번 기획 시리즈는 각 여성인권 사안에 맞춰 이를 이슈화하고 제도권에서 대안을 이끌어낸 여성리더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번 호에선 호주제 폐지운동을 통해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 인권운동과 평등운동을 추구해온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호주제폐지를위한시민의모임 고은광순·이유명호 활동가의 리더십을 소개한다.

남녀·부부차별 철폐 시민·종교·법조계 한마음

헌재 위헌 심리중…9월 17대 국회 '마침표'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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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혁신세력과 보수세력 간의 갈등 속에 새로운 민법이 모습을 드러냈다. 1948년 제헌의회에서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된 지 10년 만이었다. 친족상속편(가족법)을 둘러싼 갈등이 법제정 지연의 원인이었다. 이 법은 기혼여성에게 자유롭게 법률 행위를 할 권리를 주었다는 점과 아내 간통에 대해서만 이혼 사유로 인정하던 것을 남편 간통으로 확대시킨 점에서 “부분적으로 개혁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가부장적인 부계 혈통주의를 강화하는 호주제와 이를 근간으로 한 불평등한 재산상속, 친권행사, 친족범위 규정 등이 포함돼 있어 여성계의 반발을 샀다. 부계중심 혈통주의에 기반한 가족법을 개정해 가족 구성원들 간의 평등한 관계를 만들기 위한 지난한 싸움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최초의 여성 변호사인 고 이태영 박사를 비롯해 여성단체 대표들은 민주적 가족법 쟁취를 위해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중심으로 1973년 범여성가족법개정촉진회가 결성돼 가족법개정운동을 벌였다.

13대 국회에서 활약한 박영숙 전의원은 당시 야당이었던 평화민주당이 '호주의 권리 의무 조항을 대폭 삭제'하는 내용의 가족법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하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당론 채택에 힘을 받은 박 전의원은 김장숙 당시 민주정의당 의원과 함께 1988년 가족법개정안을 의원 발의해 국회에 제출, 이듬해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키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혁명적'이라고 평가되는 1989년 개정된 가족법에 따라 호주권은 거의 유명무실화됐다. 동성동본불혼제 규정도 1997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일치 판정으로 사실상 없어졌다. 가족법은 대폭 수정됐지만 호주승계 순위와 성씨제도 등은 여전히 문제로 남았다. 호주인 남편이 사망하면 호주는 아들-딸-부인-어머니-며느리 순으로 승계되고 친아버지의 성을 물려받게 돼 있는 현행 가족법으로 인해 재혼 가정은 성씨 문제로 고통을 겪었다.

호주제가 안고 있는 폐해는 이혼, 재혼, 한부모 가정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양현아 서울대 법학과 교수는 “호주제는 남성이 가족을 대표하고 부인이 남편에 속하는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성차별적인 부계중심 가족제도”라며 “호주제가 남아선호를 대표하는 유일한 제도는 아니지만 '남자아이를 출산해야 대가 끊기지 않는다'는 강박감을 주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호주제는 민법상 가(家)를 규정함에 있어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을 구성하는 제도다. 호적제도는 출생, 혼인, 입양 등 각 개인의 모든 신분변동 사항을 시간별로 기록한 공문서로 사람의 신분을 증명하고 공증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하나의 호적에 가족 모두의 신분변동 사항이 기록되며 가족 구성원 모두는 호주를 중심으로 그 상호관계가 기재돼 있다. 이 때문에 가족 내 주종관계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는 비판과 이혼·재혼 가구 등의 증가에 따른 현대 사회의 다양한 가족 형태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1990년대 이후 호주제 폐지운동은 여성계 의제를 넘어 범시민사회단체의 공동목표로 확산됐다. 1997년 3월 8일 여성의날 행사에서 여성단체들은 '부모성함께쓰기'를 선언했다. 부계혈통주의에 대한 도전이었던 부모성함께쓰기 운동은 남성에게만 가정의 뿌리 혈통을 찾아왔던 그간의 전통과 관습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시킨 계기가 됐다.

기존 여성단체들 외에 민주노총,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다양한 114개의 시민사회단체가 결합해 2000년 6월 '호주제폐지를위한시민연대'(호폐연)를 발족시켰다. 호폐연은 호주제 폐지 민법개정에 관한 청원 운동을 벌이며 사회적 이슈로 확산시켰다. 불교, 천주교, 개신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등 6대 종교 20여 개 단체도 '호주제 폐지를 위한 종교 여성 연대'를 만들어 호주제 폐지 운동에 합류했다. 호폐연은 2000년 11월 호주제가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해 세 차례의 위헌 변론을 마쳤으며 현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2003년 출범한 참여정부는 같은 해 10월 열린 국무회의에서 호주제 폐지를 포함한 민법중법률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과정에서 평소 호주제 폐지를 소신으로 밝혀온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4월 총선을 앞두고 보수층의 표를 의식한 16대 국회는 호주제 폐지를 외면한 채 지난 3월 본회의를 마감했다.

9월 17대 정기국회를 앞두고 호주제 폐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6월 호주제 폐지를 포함한 민법중법률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안에 대해 여성계는 “배우자와 혈연관계를 위주로 정의한 가족 개념 항목을 삭제할 것”과 '자녀는 부(父)의 성과 본을 따른다'고 정의한 항목을 “헌법의 양성평등이념에 부합하도록 부부협의에 의해 자녀의 성을 결정하도록 바꿔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호주제 폐지 운동 50여 년의 역사가 이번 정기 국회를 계기로 마침표를 찍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호주제 폐지운동 연혁

1957년 4월 여성계, 국회 공청회에 참가해 가족법상 남녀차별은 헌법에 위배됨을 주장하고 가족법 초안 심의요강에 의견서 제출이후 청원서, 호소문 제출 등 활발한 가족법 개정운동 전개

1960년 1월 신민법 시행(호주제 관련 조항: 처의 무능력 제도 폐지, 부부별산제의 채택, 양자법의 개혁, 호주권의 약화, 모계혈통의 계승 인정, 호주상속과 재산상속의 분리)

1973년 6월 범여성가족법개정촉진회(회장 이숙종 전의원) 결성, 모든 여성단체는 가족법 개정을 위해 단결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하고 대통령, 국무총리, 대법원장, 국회의원 등에 발송

1979년 1월 개정 가족법 시행

1984년 7월 가족법 개정을 위한 여성연합회(회장 이태영·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 결성, 회원단체별 서명운동, 가족법 개정 포스터·전단배부, 대통령, 관계 국무위원, 국회의원에 가족법 개정 촉구 건의서 발송

1989년 12월 가족법개정안(수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 호주제 관련 내용에서 호주의 권리·의무조항 대폭 삭제, 친족범위는 부·모계 각 8촌까지로 조정

1997년 3월 여성단체 회원 및 PC 통신 가입자 중심으로 '부모성 함께 쓰기'운동 시작

1999년 유엔 인권규약 감시기구에서 우리 정부에 호주제 폐지 권고

2000년 9월 한국가정법률상담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호주제폐지를 위한 시민의 모임 공동으로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발족, 국회에 호주제 관련법 조항의 개폐에 관한 청원서 제출

2000년 11월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 호주제 폐지를 위한 위헌소송 기자회견

2002년 12월 제16대 대통령 선거 시 노무현 당시 대통령 후보 호주제 폐지 공약

2003년 3월 국가인권위원회, 호주제가 가족 간 종적 관계, 부계우선주의를 강제해 인간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및 평등권을 침해하므로 헌법에 위배된다는 의견을 헌법재판소에 제출

2003년 5월 여성부 '호주제폐지특별기획단'발족, 이미경 의원 대표발의 국회의원 52명이 서명한 호주제 폐지를 위한 민법중개정법률안 국회제출

2003년 11월 호주제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민법개정법률안(정부안) 국회제출

2004년 6월 민법중개정법률안(정부안) 제17대 국회에 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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