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애자·트랜스젠더 출연 예능 화제
OTT 등장하며 매체 환경 변화
퀴어콘텐츠 시청자층 2030 여성에 국한돼
“현실 퀴어의 삶 더 많이 조명하길”

웨이브 오리지널 예능 ‘좋알람‘에서 여-여 데이트가 성사된 모습이다. 왼쪽 백장미, 오른쪽 자스민 출연자. 사진=유튜브 ‘wavve 웨이브‘ 영상 캡쳐
웨이브 오리지널 예능 ‘좋알람‘에서 여-여 데이트가 성사된 모습이다. 왼쪽 백장미, 오른쪽 자스민 출연자. 자스민은 본인이 양성 모두에게 끌린다고 밝힌 바 있다. (사진=유튜브 ‘wavve 웨이브‘ 영상 캡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퀴어가 전면에 등장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다.

지난 3일 성황리에 종영한 웨이브 오리지널 예능 ‘좋알람(좋아하면 울리는 짝!짝!짝!)’은 처음부터 인기를 끈 것은 아니었다. 후반부에 들어서며 그간 여성 출연자 ‘자스민’이 친구로 가까이 지내는 것으로 보였던 다른 여성 출연자 ‘백장미’를 연애 대상으로 좋아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흥행 급물살을 탔다.

웨이브는 일전에도 ‘메리 퀴어’, ‘남의 연애’ 등 픽션이 아닌 일반인-퀴어 당사자가 출연하는 연예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한 바 있다. ‘남의 연애’는 인기에 힘입어 시즌2 제작을 준비 중이다.

유튜브 등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해 공중파 예능에 진출한 트랜스젠더 ‘풍자’도 눈길을 끈다. 풍자가 진행자로 등장하는 맛집 탐방 유튜브 콘텐츠 ‘또간집’의 평균 조회수는 250만회에 달한다. 개인 채널 ‘풍자테레비’도 83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대중들은 ‘솔직하면서도 입담 좋고 재치있다’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동성 부부 직장가입자의 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고등법원 판결이 지난 21일 나오기도 했다. 우리 사회가 ’퀴어 프렌들리’한 곳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신호로 봐도 되는 것일까.

제20회 서울퀴어퍼레이드가 열린 1일 서울광장 인근에서 보수·기독계 단체들이 반동성애·퀴어축제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제20회 서울퀴어퍼레이드가 열린 서울광장 인근에서 보수·기독계 단체들이 반동성애·퀴어축제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그렇다고 결론내기엔 여전히 ‘동성애와 성전환을 조장’하는 학생인권조례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고, 동성 커플은 동사무소에서 혼인신고 수리를 거절당하고 있다. 퀴어 퍼레이드에는 늘 반대집회가 꼬리처럼 따라다닌다.

퀴어가 등장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현상과, 퀴어에 대한 차별이 공존하는 우리 사회 모습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OTT 서비스에서 퀴어 콘텐츠가 인기를 얻는 이유에 대해 “매체 환경의 변화를 먼저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다“며, “대규모 흥행을 목표로 하던 시대와 많이 달라졌다. 범위를 좁게 잡고 다양하면서도 아주 깨알같은 지점으로 접근해서 흥행을 시켜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퀴어는 좋은 아이템일 수 있다. 충성도 높은 고객이 포진돼있는 거니까“라고 분석했다.

김교석 문화평론가는 “(퀴어가 등장한 프로그램이) 사회현상을 어느 정도 보여주긴 했지만, 담론을 이끌어 내거나 진지한 인권 문제로까지 나아간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며, “(퀴어 콘텐츠가) 여성향으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 시청자층이 2030여성에 국한돼있는데, 그걸 넘어서야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콘텐츠가 될 것이다. 아직은 현실과 괴리가 있다”고 한계를 짚었다.

공개적으로 동성결혼식을 올리고 그 과정을 담은 책『언니, 나랑 결혼해줄래요?』를 쓴 김규진 작가는 ‘좋알람’ 프로그램에 대해 “이성애에 국한되지 않은 프로그램이 신선했다. 홍석천 등을 패널로 섭외한 것도 퀴어로서 반가웠다”면서도, “동성애와 이성애가 동등한 관계에 있지 않다는 건 드러났던 것 같다. 팅커벨이 꽃사슴에게 (좋알람을) 울렸을 때 희화화돼서 받아들여진다든지, 자스민이 고민하면서도 백장미의 좋알람을 끝내 울리지 못했던 것 등이 그렇다”고 말했다.

앞으로 미디어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는 “BL(남성 동성애 콘텐츠) 등이 소비는 많이 됐지만, 앞으로는 실제 존재하는 사람의 삶까지 캐치됐으면 좋겠다. 비극적인 면만 부각하지 말고, 퀴어로서 재밌게 살아가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밝은 부분도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트랜스젠더 유튜버 풍자가 MBC 프로그램 혓바닥 종합격투기 세치혀에 출연해 커밍아웃 당시 가족의 반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유튜브 채널 MBC 캡처)
트랜스젠더 유튜버 풍자가 MBC 프로그램 ‘혓바닥 종합격투기 세치혀‘에 출연해 커밍아웃 당시 가족의 반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유튜브 ‘MBC‘ 영상 캡쳐)

퀴어 다큐멘터리 제작자 A씨 역시 “퀴어 가시화 측면에서 여러 콘텐츠가 생기는 건 반갑게 본다”면서도 “(좋알람 같은 경우도) 예외적인 것으로 화제가 된 거고, 신기해하는 양상이나 시선은 몇 년 전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어 “장애인은 불쌍하게만 재현되는 것에 대한 경각심이 있는데, 여전히 지상파에서는 퀴어를 ‘불쌍한 소수‘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 아니면 아예 좋알람처럼 (이성애보다) 더 낭만적인 사랑인 양 그리는 것 같다. 아직 질적인 걸 따질 단계는 아니지만, 절대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여러 한계가 있지만, 퀴어 콘텐츠의 대중화가 인식 개선에 긍정적일 수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변화를 촉발하거나 드러낸다고 보진 않지만, 서서히 변화하는 건 분명하다“며, “최근 BL 콘텐츠도 등장했고, 동성애 관련 얘기도 과감하게 내놓고 한다. 그런 드라마도 상당히 많이 등장했다. 변화해가는 것을 보면 대중이 수용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퀴어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게 뭐 어떠냐’ 하는 수용적 관점이 가장 중요한데, 그런 관점 형성에 콘텐츠 영향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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