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네다 사요코 일본 총합여성사연구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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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 당시 여성은 지도자에 의해 발발된 전쟁에 대해 피해자로서의 자각은 있었지만 가해국민의 일원으로서 자각하는 단계는 아니었습니다”

8·15 59주년을 며칠 앞둔 지난 11일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역사인식과 동아시아 평화포럼' 서울대회에 참석한 요네다 사요코(65·총합여성사연구회 대표)씨. 그는 “일본 여성들은 전쟁이 끝났을 때 두 가지 반응으로 나뉘었는데, '패배해서 분하다' '천황의 결단에 대해 감격한다'는 것과 '남편이 전쟁에 나가 죽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여성의 위치가 '대동아공영을 위한 성전(聖戰)'에 나가 싸우는 것과 전장에 나간 남자들을 배후에서 지원하는 역할로 양분됐음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1980년대 중반 패전 당시 20대였던 여성들의 일기, 회고록을 통해 전쟁에 대한 여성들의 인식을 조사한 사요코씨는 “권리 주체로서의 여성이라는 자리매김을 확립하지 않고서는 여성이 전쟁책임을 스스로 인식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전쟁 당시 여성들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무권리 상태에 있었고 전장에서 싸우지 않는 '2급 국민'으로 간주됐습니다. 여성들에게 있어 '총 뒤의 수비'를 맡은 자로서 전쟁에 협력하는 것은 능력 발휘의 기회로 여겨졌다는 점에서 당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일본 여성들이 과거의 침략전쟁 책임을 묻는 자세를 취하게 된 것은 여성의 권리 의식 성장 시기와 맞물린 1970년 이후의 일이다. 다시 말해 일본 여성들이 스스로를 인권주체로서 인식하면서 전쟁의 피해자로서 뿐만 아니라 국가가 일으킨 가해의 책임을 수용해야 한다는 자세를 갖게 됐다는 것.

사요코씨는 “전쟁 이전의 국가 체제는 일본 여성을 차별하는 구조였고 이것이 식민지와 식민지 여성에 대한 차별, 억압, 강간을 정당화한 것이기 때문에 위안부 문제를 밝히는 것 못지않게 일본에서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된 역사적 토양을 밝혀나가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지적한 뒤 “여성을 지배하는 구조와 싸우는 과정에 아시아 여성들이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초 공동 편저로 '아이에게 전하는 전쟁체험'을 펴낸 사요코씨는 1990년부터 10년간 야마나시 현립 여자단기대학에서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그가 속한 총합여성사연구회는 민간 연구원 300여명이 소속된 일본의 대표적인 근현대 여성사 연구단체다.

임인숙 기자isim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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