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 연내 폐지 낙관...사형제 반대 국보법은 유보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법관 후보로 지명된 김영란(48, 사법시험 20기) 대전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11일 비상한 관심 속에 열렸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진행된 이날 청문회는 큰 쟁점 없이 비교적 무난하게 진행됐으며 12명의 인사청문회 소속 의원 외에도 법조계 인사, 시민단체 관계자 등 8명의 참고인이 출석해 후보의 자질에 대한 의견을 발표했다. 국회는 23일 임시 본회의를 열어 표결로 대법관 인선을 결정할 방침이다. 청문회 결과 김 후보는 무난하게 국회 인준을 받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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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대법관 후보가 11일 오전 국회의사당 본청에서 열린 대법관 임명동의안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이기태 기자 leephoto@>

김영란 대법관 후보는 모두 연설에서 “우리나라 여성 최초라는 의미는 개인에 그치는 일이 아니라 여전히 소수자의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용기를 주는 일”이라며 “대법관이 되면 여성, 장애인, 어린이, 노인, 외국인 이주 노동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다수자는 소수자의 감수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서 “소수자의 감수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김 후보는 사형제도와 호주제 폐지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도 개정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서는 “법을 만들어 대체복무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인도적”이란 입장을 밝혔다.

김 후보는 “사형제도는 교화를 포기하는 제도”라며 “형평의 문제가 있어서 국민의 합의가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호주제 폐지에 대해서는 “이번 국회에서 꼭 통과시켜 주시길 하는 바람이 있고, 올해 안에 폐지되지 않을까 낙관한다”고 말했다. 또한 “자녀가 아버지 성을 따르는 게 남녀평등 원칙에 어긋나느냐”는 질문에도 “법감정의 측면을 고려해야 하지만 세계적인 추세나 생물학적 연구결과는 그렇다”고 답해 진보적 성향을 드러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폐지, 친일진상규명법 재개정, 새만금 간척사업 중단 등 진보적 사회단체가 요구하는 주요 현안에 관해서는 “더 논의가 필요하고 개인적으로 잘 모르는 내용”이라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국가보안법에 대해 김 후보는 “남북환경이 많이 변하고 있어 어떻게든 손질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도 개정·폐지·대체입법 등 구체적인 개정 방식에 대해서는 의견을 내지 않았다. 친일반민족진상규명법에 대해서는 “대상을 너무 확대해서 당시의 모든 조선인들이 대상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자신이 진보적인 인사로 불리는 것과 관련해 “사람마다 보수와 진보의 개념이 다를 수 있고 성향을 이름붙인 다음에는 판결의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해 시민단체 쪽 인사로 불리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참고인으로 출석한 조국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은 “김영란 후보는 오히려 온건 보수에 가깝다”며 “시민단체들은 여성 대법관이 반드시 나와야 한다는 측면에 무게를 두고 여성 인사를 추천했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직장생활과 가정을 양립한다면 수퍼우먼이고 나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서 직장과 가정생활을 병행하는 여성들에게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 여러 사람들과 연대하길 바라며 자신이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는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김 후보는 강지원 변호사(전 청소년보호위원회 위원장)와 결혼해 두 자녀를 두고 있으며 두 아이를 모두 대안학교에 보낸 것도 청문회에서 도마에 올랐다. “

공교육을 무시하는 태도가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김 후보는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귀족학교가 아니고 단지 입시 위주의 교육이 아니어서 농사도 짓고 옷 만드는 방법도 배운다”며 “단 한 번도 아이들에게 대학에 가야한다고 강요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영란 첫 여성대법관 인사청문회

쟁점마다 소신 답변…인준 낙관

56년 사법역사상 최초로 여성 대법관 후보로 지명된 김영란(48) 대전고법 부장판사는 11일 열린 국회인사청문회에서 호주제와 사형제도 폐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특히 호주제폐지와 관련해 김 후보는 “연내 해결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서는 “법을 만들어 대체복무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인도적”이라고 답했다.

김 후보는 국가보안법 폐지, 친일진상규명법 재개정, 새만금 간척사업 중단 등 진보적 사회단체가 요구하는 주요 현안에 관해서는 “더 논의가 필요하고 개인적으로 잘 모른다”며 즉답을 피했다.

일부 의원들이 지적한 서열파괴 인사로 사법 조직이 혼란을 겪고 있다는 의견에 대해 김 후보는 “대법관 인사가 승진개념처럼 인식되어 서열 위주로 이루어진 면이 있는데, 앞으로는 여성·젊은층 등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법관이 되면 여성, 장애인, 어린이, 노인, 외국인 이주 노동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사법고시 20기로 1978년부터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된 김 후보는 2003년 5월 집단 따돌림을 당한 피해 학생에게 부모와 학생의 책임비율을 합쳐 50%로 산정한 1심 판결을 깨고 “'왕따'를 당한 학생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려 화제를 모았다.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 조배숙 열린우리당 의원과 경기여고, 서울대 법대 동기동창이다.

국회는 23일 임시회의를 열어 표결로 김영란 후보의 인준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며 무난히 인준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청문회 이모저모

“서열파괴로 남성 역차별”

판사출신 의원 볼멘소리

“대법관 후보로 여성이 추천된 것이 정치권에서 왜 논란이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이 50년 넘게 대법관 인사에서 배제됐던 것이 비정상적인 것이 아닌가.”

국회 인사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법학과 교수는 국회의원들에게 이렇게 반문했다.

이날 청문회에서 여야 의원들은 인사제청의 서열파괴를 놓고 격렬한 찬반 논쟁을 벌였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지나친 서열파괴는 구성원의 사기저하, 조직의 분열과 갈등을 일으킨다”고 주장했으며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서열주의가 대법원을 국민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반박했다.

판사 출신인 주호영 한나라당 의원은 서열파괴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주 의원은 “기수를 뛰어넘는 인사로 법원에 혼란이 있지 않겠느냐”며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년 안에 대법원 구성이 바뀌는데 굳이 지금 서열파괴 인사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따졌다. 또한 “여성이어서 대법관이 될 이유는 적지 않느냐”며 “이번 인사로 묵묵히 일하는 남성들이 소외당함으로써 남성이 역차별받는 게 아니냐”는 주장을 펼쳤다.

반면 최용규 열린우리당 의원은 “1982년 전까지 40대 대법관이 16명이나 있었는데 왜 유독 김 후보에 대해서만 서열파괴니 (대통령과의) 코드인사니 하는 얘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참고인으로 출석한 석호철 대법원 인사관리실장은 “이번 대법관 후보 지명을 기수파괴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헌정사상 여성 대법관이 한 명도 없었던 것에 대한 배려와 사회 변화를 수용하려는 대법원의 노력으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대법관 후보 지명 과정에서 시민단체의 입김이 지나치게 많이 작용했다”는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의 지적에 대해 조국 소장은 “그 동안 법조계 인사들만 대법관 후보를 지명했던 관례를 깨뜨리고 올해 처음 시민단체가 대법관 후보를 추천했다”면서 “대법원장은 사회 변화의 흐름을 읽고 개인 소신과 판단대로 대법관 후보를 지명했을 것”이라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대법관의 임기는 6년이며 장관급 대우를 받는다. 현재 대법원장을 포함해 14명의 대법관이 일하고 있다.

임현선 기자 su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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