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옥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대표

우리사회에서 언론의 중요성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정치인들이나 연예인은 자신들의 부고 외에는 모든 언론보도가 유익하다는 농담 섞인 말까지 있을까. 아무리 좋은 활동을 해도 언론에 보도되지 않으면 마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어떠한 관계를 유지하는가가 실제 활동내용보다 중요한 변수가 되는 경우도 있다. 시민단체도 예외는 아니어서 언론은 그들의 활동을 알려주는 주요 매개체이기도 하지만 이미 막강한 힘을 가지고 권력기관화한 보수언론들은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정말 가까이 할 수도, 멀리 할 수도 없는 힘든 관계인 것이다.

여성운동과 언론과의 관계는 좀 더 미묘하다. 기존의 사회구조를 깨고 성평등사회를 구현하려는 여성운동은 전통적 사회 틀을 유지하고자 하는 보수언론의 기조와 기본적으로 맞지 않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무겁지 않은 주제로서 다루고 싶어하는 언론의 욕심도 병존한다. 즉 여성문제라면 이슈를 따지지 않고 가볍고 부드럽게 가고 싶으나, 이에 잘 따라 주지 않는 여성 운동계와의 갈등이 노출되는 경우가 있다.

지난번 청와대 홈페이지에 실린 박근혜 대표 패러디 사건을 놓고 여성운동계와 보수언론이 펼친 한바탕의 설전도 사실 그러한 맥락 속에서 따져 볼 수 있다. 패러디 사건에 대해 즉각적인 반대성명을 내지 않는 여성단체들에 대해 꾸짖는 기사는 마치 굉장한 여성주의적 시각을 보이고 있는 듯하나 그 동안 정치권에서 있었던 여성정치인 성희롱 사건이나 여성비하적 발언에 대해 꿈쩍도 하지 않던 행태를 생각하면 그 기저가 의심스럽다. 여성단체들이 여성주의적 시각을 잃어버렸다거나 그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는 우려섞인 비판이라기보다는 '옳다꾸나, 너 한 번 당해봐라' 식의 발목잡기에 나선 감이 있다.

사실 패러디 사건은 여러 가지 논쟁점을 안고 있었다. 우선 패러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만약 박근혜 대표 패러디를 비판한다면 이제까지 우리 사회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수많은 패러디물들에 대해서도 똑같은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야 할 것인가라는 고민이 있었다. 거기에다 이 사건은 단순히 여성비하적인 패러디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정치적으로 대응하는 정당들 사이에서 자칫 잘못하면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걱정도 존재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안을 놓고 일괄적으로 왜 여성단체들이 즉각적으로 성명을 내지 않는가, 정치적인 이유에서 내지 않는다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사실 여성운동에 대한 몰이해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왜 우리편에 대해서는 즉각적으로 편들어 주지 않는가 하는, 이미 정치적으로 편향된 의도가 숨어있기도 하다.

여성운동의 경우 보수언론과의 갈등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소위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들도 여성운동에 대해서는 유독 박한 경우가 많다. 여성운동이 일반적인 진보를 지향하지 않고 특수한 여성의 이익만을 지향한다거나 여성단체들이 권력화했다는 비판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는 그만큼 여성운동의 영향력이 넓어져 감을 의미하지만 앞서간다는 언론에서조차 여성문제를 자신들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언론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 나가야 할 것인가는 앞으로 여성운동이 고민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펜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한다는 언론의 애초의 역할도 다시 한 번 끄집어내서 언론들이 돌이켜 보아야 할 대목이다. 여성운동 역시 사회정의 실현의 한 방법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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