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수 연구해 지역 내 유행하는
바이러스 관찰·예측하는 ‘하수역학’
코로나19 계기로 활용 폭 커져
미지의 전염병 예방 기대

ⓒShutterstock
ⓒShutterstock

2014년 에볼라 환자가 미국 애틀랜타의 에모리병원으로 이송됐을 무렵, 미지의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은 여러 측면에서 나타났다. 특히 인근 지역민들 사이에선 병원의 폐수가 지역 하수 처리 시설로 흘러가면 에볼라 감염 위험이 있는 건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심지어 카운티(county)가 병원의 하수도 서비스를 중단할 것이라는 기사까지 나왔는데, 카운티와 병원 간 소통 문제였음이 드러나며 흐지부지됐다. 에볼라 환자를 수용하는 특수 병동엔 의료 폐기물뿐만 아니라 폐수까지 멸균하는 특수 정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는 게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미지의 질병에 대한 염려는 공기를 넘어 하수까지, 상상보다 훨씬 더 멀리 퍼져 나간다.

이러한 염려는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새로운 전략으로 탈바꿈했다. 거꾸로 생각해보자. 특수 하수 정화 시설이 없는 일반 병동, 잠재적인 무증상 감염자들이 배출하는 생활하수엔 얼마나 많은, 얼마나 새로운 종류의 코로나바이러스가 있을까? 이 바이러스들을 어떻게 검출할 수 있을까? 생활하수를 통해 바이러스와 그 변이를 검출하고 특정 지역에서 유행하는 바이러스의 추이를 관찰할 수 있는 방법을 ‘하수역학’이라고 부른다.

미국에서 하수역학은 마약류나 결핵 확산 등을 막기 위해서만 사용됐는데, 코로나19를 계기로 활용 폭이 넓어졌다. 2020년 국가 폐수 감시 시스템(NWSS)이 구축됐다. 약 40개 주 카운티 159곳의 폐수에서 코로나19의 변이와 검출률 추이를 관찰해, 지역사회 내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조기 경보를 제공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2022년 7월 뉴욕주에서 폴리오바이러스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발생했다. 폴리오바이러스는 소아마비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로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어 전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사라졌다.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서만 폴리오바이러스 1형이 국소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79년 이후 야생형 폴리오바이러스 감염이 보고되지 않았다.

이때 하수역학이 다시 등장한다. 폴리오바이러스는 바이러스에 오염된 대변을 통해 구강으로 감염된다. 주 방역당국은 환자가 발생한 록랜드 카운티를 비롯한 인근 4개 카운티에서 코로나19 감시를 위해서 4개월 전 채취한 하수 샘플부터 추적하기 시작했다. 이후 총 9개 카운티의 약 10개월치 데이터를 확보해 분석한 결과, 총 100개의 양성 사례 중 처음 발생한 환자의 폴리오바이러스와 유전적으로 연결된 것이 93개고, 백신 유래 혹은 백신의 변이 바이러스는 7%로 분석됐다. 첫 환자는 해외에서 생백신으로 인한 폴리오바이러스에 감염됐으며, 증상이 나타나기 전 이미 지역사회에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었다는 과학적 증거였다. 이를 토대로 뉴욕주는 행정명령으로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폴리오바이러스 백신 접종을 긴급 권고했다. 코로나19 이후 다시 한번 전염병에 대한 공포를 뉴욕 주민들에게 드리운 사건이었다.

2022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발간한 하수기반역학 마약류 모니터링 대국민 정보지 내용 일부. 우리나라에서도 코로나19를 계기로 하수역학의 활용 폭이 넓어지는 추세다.  ⓒ식품의약품안전처 홍보자료 갈무리
2022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발간한 하수기반역학 마약류 모니터링 대국민 정보지 내용 일부. 우리나라에서도 코로나19를 계기로 하수역학의 활용 폭이 넓어지는 추세다. ⓒ식품의약품안전처 홍보자료 갈무리

우리는 코로나19 유행 반복으로 공포스러웠던 2020년을 잊고 살고 있다. 코로나19가 독감같이 무덤덤한 소재가 된 것은 전 세계가 달려들어 개발한 백신과 온 국민이 함께한 방역이라는 방패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하수까지 촘촘히 걸러 분자 수준까지 연구하고 질병을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됐기 때문이다.

한국은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세종시를 대상으로 하수역학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을 실제 시험해 증명했다. 현재 17개 지자체 보건환경연구원, 학계(고려대 세종산학협력단)와 질병관리청이 협업해 전염병 국가 감시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시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세종시의 데이터를 보면 코로나19뿐 아니라 바이러스성, 세균성 식중독균의 유행 및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와 같은 호흡기 바이러스가 검출됐으며, 실제 지역사회에서 유행하는 질병들과 일치했다.

기후위기를 목전에 두고 과학자들은 가까운 미래에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이 또 우리를 위협할 수 있다고 지속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험난한 시간 동안 구축한 이 시스템을 활용해 미래에 우리를 위협할 미지의 전염병에 대한 비밀을 보다 쉽게 풀 수 있기를 기대한다.

문성실 미생물학 박사 ⓒ문성실 박사 제공
문성실 미생물학 박사 ⓒ문성실 박사 제공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