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초, 서울 공덕동에 있는 한국사회복지회관 강당에서는 한국사회복지협의회에서 주최하는 '2004 전국 사회복지 자원봉사대회'가 열렸다. 내가 노인복지관에 근무하던 때인 8년 전 나의 권유로 자원봉사를 시작해, 그동안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오신 어르신께서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받으신다고 해서 꽃다발을 준비해 달려갔다. 상을 주고받는 기쁜 자리이긴 하지만, 커다란 외부 건물을 빌려 화려하게 행사를 치르지 않는 것은 자원봉사활동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되새겨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좋은 취지 덕분에 그리 크지 않은 행사장은 수상자와 축하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여러 종류의 상 가운데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받은 자원봉사자는 모두 42명이었는데, 그 어르신이 가장 연세가 많으신 데다가 솜 같이 하얀 머리카락이 모두의 눈길을 끌어 인사하실 때는 제일 큰 박수를 받으셨다. 아들, 며느리를 비롯해 축하드리러 온 가족 옆에서 나도 그 어르신이 자랑스러웠다. 물론 감사 드리는 마음도 함께였다. 직장 근무하실 때와 똑같은 마음으로 결석 한 번, 지각 한 번 하지 않으신 그 어르신의 성실함과 열정도 놀라웠지만, 옆에서 출근 뒷바라지하듯이 꼼꼼히 챙겨주신 사모님의 정성 또한 그렇게 아름답게 여겨질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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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식이 끝나자 '자원봉사 사례발표 대회'가 이어졌는데, 고등학생들과 일반인 그리고 사회복지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어렵고 고단한 이웃들을 위해 펼치는 자원봉사활동들이 어찌나 감동적인지 나 자신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행사나 그렇듯이 의미가 있고 소중한 자리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내가 아는 분의 순서가 끝나고 나니 어찌나 지루한지 몸이 배배 틀리는 것이었다. 행사장 바깥으로 나가 뜨거운 커피도 마셔보고, 차가운 물도 마셔봤지만 시계로 향하는 눈길을 도저히 붙잡을 수가 없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두들 어렵게 자리를 지키며 앉아있었다.

그런데 행사장 분위기를 단번에 바꿔놓는 일이 생겼는데, 다름 아닌 할머니 8명의 힘이었다. '자원봉사 사례발표 대회'의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마련된 축하공연에 주부 사물놀이 봉사단에 이어, 흰 바지에 진분홍 티셔츠를 받쳐입은 8명의 할머니가 등장해 신나는 댄스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하자 행사장은 한 마디로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할머니들의 춤은 이름하여 '서머댄스'. 서울 강서노인종합복지관 행복나누미 봉사단 할머니들이었는데, 댄스를 배워 여기 저기 행사에 찬조 출연하는 것이 바로 그분들의 봉사활동이었던 것이다.

노인복지관에 가보면 어르신들의 춤 사랑은 유별나서 전통 한국무용부터 스포츠 댄스, 에어로빅, 포크댄스, 차밍디스코, 레크댄스 등 그 이름도 종류도 어찌나 많은지 나 같은 사람은 어디가 어떻게 다른 춤인지 알지도 못할 뿐더러 이름마저 생소한 경우도 많다. 그런데 '서머댄스'라니. 여름에만 추는 춤일까? 아니면 신나는 댄스에 여름이니까 서머라는 이름을 붙인 것일까? 내 궁금증이야 어찌됐든 할머니들의 신나고 멋진 율동에 행사장은 금방 박수와 함성으로 가득 차고 흥겨운 열기가 지붕을 뚫고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나도 고갯짓을 하고 발로 박자를 맞추며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치는데 왜 그리 자랑스럽던지. 한 구석에 얌전히 앉아 챙겨주는 것이나 받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할머니가 아니라, 자신만만하게 무대 위에 올라 온몸으로 삶의 즐거움을 표현하는 할머니들의 활짝 웃는 얼굴과 유연한 몸을 바라보면서 순간 주책없이 코끝이 찡해지는 것이었다. '바로 저거야, 어르신들에게도 힘이 있다고'. 한글교실 자원봉사로 상을 받은 어르신의 힘! 신나는 댄스로 행사장을 활기 있게 바꿔버린 할머니들의 힘! 세상은 이렇게 예상치 못한 힘에 탄력을 받아 굴러가는 것은 아닐까.

유경/

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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