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한 구조적 전환의 실체 보여줄 정책 축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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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라는 용어가 정책에서 퇴출될 위기에 놓였다. 관건은 성평등의 의미를 새롭게 전유할 수 있는 정치를 작동시키고, 정책의 실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shutterstock

‘성평등’라는 용어가 정책에서 퇴출될 위기에 놓였다. 지난 1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3년 주요 업무 추진계획’에서는 예년과 달리 정책 목표에서 성평등 사회 실현과 같은 문구를 찾아볼 수 없었다. ‘양성평등’이 ‘성평등’을 대체해서도 아니다. ‘양성평등’도 예외적인 경우 외에는 등장하지 않았다. 의도적인 성평등 지우기가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여가부 관계자는 용어만 안 쓸 뿐 성평등 정책이 들어 있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용어만 다시 되살리면 되는 걸까.

오히려 우려되는 건 지금 이 시점에서 ‘성평등’을 되살리더라도 그 말이 페미니스트가 지향해온 변화의 방향을 지시하는 말로 통용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성평등’이 고정된 의미를 갖지 않으며 경합을 통해 정치적으로 구성된다고 보면, 지난 10여 년간 우리사회에서 이 용어의 의미를 전유한 세력은 적어도 페미니스트는 아닌 것 같다. 반동성애 선동의 응집력을 높여 준 성평등/양성평등 논쟁, ‘양성평등’이 ‘여성우대’ 정책의 피해자라는 프레임으로 남성을 결집시키는 데 활용된 상황을 돌아보면 말이다. 다시 이 말을 꺼내드는 순간 힘을 얻는 의미는 아마도 남녀 간의 기계적 균형에 다름 아닐 것이다.

교차적 관점의 성평등 정책 안보여

돌이켜 보면 성평등이 반격의 언어로 효용을 얻게 된 여러 국면에서 페미니스트 정치와 정책은 충분히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성소수자 배제에 대항하는 언어로 ‘성평등’을 주장했지만, 용어의 문제를 넘어서 성소수자를 포함하는 성평등 정책이 어떻게 전개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정책 대상으로 성소수자를 인지하고 교차적 관점의 성평등 정책을 펼치는 데 별다른 진전이 없었던 게 단지 ‘성평등’이 아니라 ‘양성평등’이 공식적인 정책 용어로 채택되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최근 ‘젠더갈등’ 국면에서 남성 징병제가 남성 차별이고 남녀 모두 징병하는 게 성평등이라고 주장될 때, 남성의 여성에 대한 육체적·정신적 우위를 전제한 병역제도를 재설계하는 것이야 말로 성평등이라고 설파하는 정치적 대응은 미흡했다. 징병이 차별인가 아니면 징병에서의 배제가 차별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남성 징병제가 한국사회의 위계적 젠더관계를 유지·재생산하는 중심축이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기획이 부재했다는 점이 아쉽다.

의미 재정립 과정 정책으로 보여줘야

적극적 조치의 궁극적 목표가 여성을 우대하는 것도, 남녀 숫자를 맞추는 것도 아니라 정치·경제·사회 영역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남성 기득권 중심의 의사결정 과정을 변화시키는 데 있음을 설득하는 데도 실패했다. 국회와 정당, 공직사회, 대학에서 성별 대표성 균형이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그 성과를 실증적으로 입증하고, 양적 변화가 기관·조직의 구조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충분하지 않다면 어떤 다른 정책적 접근이 이루어져야 하는지 보여주지 못했다.

이렇게 보면 성평등이라는 용어 자체를 지우거나 살리는 것 자체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관건은 성평등의 의미를 새롭게 전유할 수 있는 정치를 작동시키고, 정책의 실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특정 세력이 성평등 개념을 왜곡해서, 국민들이 성평등 개념을 잘 몰라서 문제라는 진단으로는 부족하다. 동등 대우/차이 인정을 넘어 구조적 전환으로 성평등의 의미를 재정립하는 과정을 실질적인 정책을 통해 보여주는 작업, 작은 영역 하나에서라도 그러한 사례를 제대로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김원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평등전략사업센터장
김원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평등전략사업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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