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AP/뉴시스] 25일(현지시각) 페루 리마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더 이상의 억압은 없다. 디나, 당신은 우리의 대표가 아니다"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있다. 페루에서 한 달 넘게 이어진 반정부 시위로 디나 볼루아르테 대통령이 '전국적 휴전'을 촉구했으며 식량과 연료 부족 사태까지 겹치며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리마=AP/뉴시스] 25일(현지시각) 페루 리마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더 이상의 억압은 없다. 디나, 당신은 우리의 대표가 아니다"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있다. 페루에서 한 달 넘게 이어진 반정부 시위로 디나 볼루아르테 대통령이 '전국적 휴전'을 촉구했으며 식량과 연료 부족 사태까지 겹치며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페드로 카스티요 페루 전 대통령이 의회에서 탄핵당한 뒤 한달이 넘게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시위대들은 지방에서 수도 리마로 집결해 카스티요 전 대통령 석방을 요구하면서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경찰의 진압과정에서 5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21년 페루 대선때 카스티요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에 당선됐던 디나 볼루아르테 현 대통령은 카스티요를 제거하고 대통령직에 올랐지만 '임기를 채울수 있을지?'라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 카스티요 지지 시위대 "리마를 접수하자"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전국 각지에서 한 달 넘게 이어진 페루 반정부 시위가 수도 리마로 밀려들고 있다.

AFP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19일(현지시각) 오후 산마르틴 광장을 중심으로 한 리마 도심에서수천명의 시민들이 디나 볼루아르테 정부와 의회를 성토하고 페드로 카스티요 전 대통령 석방을 요구하며 거리 행진을 했다.

이들은 "새로운 선거로 모두를 떠나게 하자"라거나 "디나는 살인자" 같은 구호를 외치며 분노를 표출했다.

이날 시위는 특히 전국 각지에서 버스 등을 타고 수도에 집결해 벌이는 '상경 집회' 성격으로 진행됐다. 멀게는 1천㎞ 넘는 쿠스코와 푸노에서 온 이들도 있다고 현지 매체는 보도했다.

'리마 접수' 또는 '리마 점령'으로 명명된 이 날 시위에 앞서 정부는 군·경 1만1,800명을 미리 대통령궁과 의회 등에 배치하고 경비를 강화했다. 이미 리마에는 국가비상사태가 내려진 상태다.

현지 언론은 실탄을 쏘며 강경진압으로 50명 이상이 숨졌다고 전했다. 

시위가 격화되자 디나 볼루아르테 새 대통령은 지난 24일(현지시각) “전 국가적으로 휴전하자”며 시위 중단을 촉구했으나 이후에도 시위는 멈추지 않고 있다.

◆ 후지모리 따라하기 실패한 '단 두시간 독재자' 카스티요

페드로 카스티요 전 페루 대통령 ⓒ페드로 카스티요 트위터
페드로 카스티요 전 페루 대통령 ⓒ페드로 카스티요 트위터

페드로 카스티요 페루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지난해 12월 7일(현지시각) 페루 의회에서 가결됐다. 지난 2021년 7월 취임 이후 세 번째 탄핵 위기에 몰렸던 카스티요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잃었고, 디나 볼루아르테 부통령이 페루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탄핵안에는 재적의원 130명 중 101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탄핵안은 3분의2인 87명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호세 윌리엄스 사파타 의장은 “카스티요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하고 위헌적인 방식으로 의회의 기능을 방해하려 했다”며 탄핵소추안 처리 배경을 설명했다.

의회가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자 카스티요 전 대통령은 의회 해산을 선언하며 맞섰다. 카스티요 전 대통령은 TV 연설을 통해 “현재의 의회를 해산하고, 비상 정부를 설립하며 새로운 총선을 시행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야당을 비롯한 페루 각계에서는 “위헌적인 쿠데타 행위”라며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볼루아르테 부통령도 “의회 해산은 법을 엄격히 준수해서 극복해야 할 정치적·제도적 위기를 악화하는 쿠데타”라며 반발했으며 카스티요 정부 장관들의 사임이 잇따랐다.

페루의 우파 언론들은 카스티요를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하며 탄핵을 부추겼다. 

시골 교사출신의 카스티요 전 대통령은 1072년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쿠데타를 따라했다.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일시적으로 의회를 해산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후지모리는 절대 권력을 장악하면서 의회를 탱크로 둘러쌓다. 이후 언론인들과 야당 지도자들을 체포하고 신문과 텔레비전 방송국을 검열하여 거의 10년 동안 지속될 독재 정권을 시작했다.

영국의 가디언은 카스티요가 후지모리를 따라 셀프쿠데타를 했지만 실패했다고 보도했다. 페루의 정치분석가 이반 라네그라는 "페드로 카스티요가 단 두시간 동안 독재자였다"고 말했다.

후지모리 따라하기에 실패한 카스티요는 2021년 6월 대선에서 경쟁자였던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딸 후지모리 게이코를 4만4천표 차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카스티요 전 대통령은 시골 초등학교 교사 출신으로 페루 대통령이 됐으나 본인과 측근의 부패 스캔들로 두 차례 탄핵 위기를 겪고, 세 번 째에 결국 대통령직을 박탈당했다. 카스티요 전 대통령은 직권 남용을 포함해 뇌물 수수, 대학 학위 논문 표절 등 혐의로 구금됐다.

◆ 폐쇄된 잉카 유적지 마추픽추 

페루의 잉카 유적지 마추픽추 ⓒTravelAwaits
페루의 잉카 유적지 마추픽추 ⓒTravelAwaits

페루 안데스 산맥의 잉카 유적지인 마추픽추가 격렬한 반정부 시위의 여파로 폐쇄됐다. 

페루 문화부는 21일(현지시각) 방문객들의 안전을 고려해 잉카 트레일과 마추픽추 입장을 전면 폐쇄한다고 공식 성명서를 통해 통보했다고 블룸버스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지난 몇 주간 계속된 시위로 페루 전역에서 최소 수십 명이 사망했으며 다수 지역의 공항이 시위대의 주요 공격 타겟이 되면서 마추픽추의 산 정상인 잉카 성채로 가는 관문 중 하나인 남부 도시 쿠스코 국제 공항도 접근이 금지된 상태다. 

페루 국방부는 앞서 지난 19일 성명을 내고 ‘안전을 고려해 쿠스코의 국제공항을 우선 폐쇄한다’는 방침을 공고했다. 

공항 폐쇄에 앞서 반정부 시위대는 지난 18일 공항 진입을 시도하며 버스 정류장을 불태우고 상점 내부를 약탈하는 등 충돌이 빚어졌다.

쿠스코 공항 인근에서 1명의 무고한 시민이 사망했고 현장에 파견됐던 경찰관 중 19명이 부상을 입는 등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또, 당시 공항 내부에 있었던  시민 50명이 시위대의 공격을 받고 부상을 입어 인근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마추픽추 유적지가 폐쇄되면서 관광 중이었던 국내외 관광객들이 현장에 그대로 발이 묶인 상태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마추픽추에 발이 묶인 관광객들은 수백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 6년 만에 6번째 대통령 볼루아르테는 임기 지킬까?

디나 볼루아르테 페루 대통령
디나 볼루아르테 페루 대통령

페루 헌법에는 "도덕적, 육체적 무능"으로 대통령직을 공석으로 둘 수 있다는 모호한 조항이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후지모리 게이코와 같은 정치인들은 그들이 좋아하지 않는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해 이 조항을 사용해왔다.  페루에는 볼루아르테 대통령 이전 6년 동안 5명의 대통령이 있었다. 2020년에는 5일 동안 3명의 대통령이 바뀌었다. 볼루아르테는 6년만에 페루의 6번째로 취임한 대통령이 됐다.

볼루아르테는 카스티요가 집권했던 2021년 선거에서 카스티요의 러닐메이트였지만 지난해 12월 초 가스티요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하려고 했을 때 재빠르게 그와 거리를 뒀다. 볼루아르테는 "쿠데타 시도"라고 반발한 뒤 카스티요를 탄핵하고 자신이 대통령이 됐다.

카스티요 전 대통령의 뒤를 이은 볼루아르테 대통령도 현재 혼란상황을 잠재우기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볼루아르테는정치 경력이  4년 밖에 되지 않는 신출내기 정치인이다. 독자세력 없이 갑자기 대통령직에 오른데다 여전히 탄핵 찬반 시위가 격렬하게 계속되고 있다. 

BBC에 따르면 변호사 출신인 볼루아르테 대통령은 지난 2018년 구청장선거를 통해 처음으로 페루 정계에 입문한 뒤 이후 지난 대선 때 카스티요 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지명되면서 중앙정계로 진출했다. 

그 전에 치른 선거도 모두 낙선했다. 2018년 리마 수르키요구 구청장 선거에서 4%도 안 되는 득표율로 낙선했고, 2년 뒤 의회 보궐선거에서도 저조한 성적으로 떨어졌다. 본인의 정치적 지지기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국가지도자로 올라선 셈이다.

페루 안팎에서는 그가 2026년 7월까지로 예정된 잔여임기를 모두 채우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페루 정치권 내에서도 볼루아르테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를 줄여 조기 대선을 치뤄야할 것이란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결국 경제난과 식량난이 해소되기 전에는 누가 집권해도 정치적 혼란을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볼루아르테 대통령은 지난 24일 국가적 휴전을 제안하면서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대에 “나는 권력을 유지할 생각이 없다. (2024년 4월 예정된) 총선 이후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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