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 휩쓰는 신데렐라·황태자 신드롬에 덧붙여

유혹하는 것과 유혹당하는 것,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

주목하는 것과 주목받는 것이 왜 이리 혼동되는지 모르겠다

- <이젠 다시 유혹하지 않으련다>, 피에르 쌍소

남성에 의한 여성의 구원에서'여성'에 의한 남성의 구원으로

젠더 메커니즘 변화 신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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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 재벌에 캔디 신데렐라. '발리에서 생긴 일' '불새' '황태자의 첫사랑' '파리의 연인' 등 일련의 TV 드라마를 기점으로 2004 버전 황태자 공주 신드롬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타고난 부와 신분,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인 완벽한 황태자들을, 가진 것이라곤 자신감과 삶에 대한 강한 의지뿐인 또순이 신데렐라들이 감화시켜 인간적 체취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보는 것은 마치 한 편의 인간 승리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이 대역전을 지켜보는 이들은 왕자가 신데렐라와 행복한 결합을 이루어내기까지의 과정이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구태의연한 동화 공식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깜박 잊어버린다. 하드웨어는 변하지 않았으나, 그 안의 소프트웨어가 다소 변화했다는 사실이 이토록 감각적인 혼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문화평론가 김종휘 씨는 반문한다. 황태자가 아닌 '고학력 실업자'의 첫사랑이나 파리가 아닌 '의정부'의 연인, 불새가 아닌 '개미' 등의 드라마가 나올 수 없느냐고. 왜 로맨스 판타지에선 그토록 소재와 공식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해진 룰을 따라갈 수밖에 없느냐고.

혹자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살 만한 경기 안정기엔 생활밀착형 드라마들이 호응을 얻으면서 '바른생활 맨'의 모범과 희망을 제시하지만, 지금과 같은 불경기엔 불안한 현실과 동떨어지면 질수록 현실 속 열패감을 환상으로 치유하려는 대중의 욕망이 강해진다고 분석한다. 그러면서 “황태자 신데렐라 드라마를 보는 그 누구도 그것이 현실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다. 어쩌면 그들이 진정 바라는 것은 환상의 현실화가 아니라, 환상 그 자체의 유지일 것이다”라고 덧붙인다. 이어서 볼멘 목소리로 항변한다. 너무나 차가운 현실을 버텨내기 위해 꿈꿀 자유마저 박탈하지는 말아달라고.

흥미로운 것은 이들 로맨스 판타지에 반응하는 신세대 남성들의 태도. '파리의 연인'의 경우, 통상 드라마에서 남성 평균 시청률 10%의 벽을 훌쩍 뛰어넘었다. 한 시청률 조사전문가는 특히 30대 남성들의 호응도가 두드러지고 있는 현상을 '이례적'이라고 분석한다.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이란 신조어가 패션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요즘, 최민수나 람보 식의 마초적 카리스마보다는 감성적이고 자기 안의 여성성을 억누르기보다는 개성적 방식으로 표출해내는 남성상이 시대의 대세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젠더(gender)의 역학관계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가 숨어있지 않을까.

연세대 사회학과 김현미 교수는 “예전엔 파워풀한 남성에 의해 여성이 발견 구원되는 플롯을 따라갔지만, 이젠 둘 사이의 관계가 바뀌고 있다”며 “가난하고 투박하며 세속적인 일상의 여성이 나무랄 데 없는 조건 때문에 오히려 인간적으로 취약한 남성을 발견하고 '사랑'의 이름으로 치유하며 리드해 나감으로써 젠더의 역학관계가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고 분석한다.

이에 따라 기존 가부장제식의 해피 엔딩 각본으론 더 이상 갈 수 없는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는 것.

이처럼 수동성을 벗어난 능동적인 여성상은 여성의 자아실현과 사회진출 욕구에 맞물린 자연스러운 표출인가. 아니면, 자기위안과 더불어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의 또 다른 버전인가.

“리얼리티의 반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욕망의 반영으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우리나라 젊은 여성 태반이 고실업, 비정규직, 밑바닥 노동에 시달리는 등 경제적 여건이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들 직업군에 종사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여주인공들에 의해 낭만적으로 포장될 수는 없다”는 것이 김 교수의 따끔한 지적이다.

박이은경 편집국장pl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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