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더하는 말풍선]
검둥 작가 웹툰 ‘안녕은하세요’
레즈비언이 겪는 차별·폭력과
사랑하며 사는 행복 조명

피라(Pyrrha) 작가가 웹툰 비평 ‘세상에 더하는 말풍선’ 칼럼을 통해 웹툰이 반영하는 한국 사회 여성이슈를 짚어봅니다. (편집자주)

*이 글은 작품의 줄거리와 결말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검둥 작가의 웹툰 ‘안녕은하세요’의 한 장면. ⓒ검둥 작가/카카오웹툰
검둥 작가의 웹툰 ‘안녕은하세요’의 한 장면. ⓒ검둥 작가/카카오웹툰

검둥 작가의 웹툰 ‘안녕은하세요’는 주인공 안영은과 박보금을 통해 여성혐오와 퀴어혐오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도저히 안녕할 수 없는 레즈비언들의 삶을 그려낸다. 영은은 자신이 겪고 있는 성추행과 가스라이팅이 폭력임을 분명히 인식한다. 하지만 “(가해자를) 피하고 벌하고 나 보호하는 데에도 시간과 돈이 들어”간다는 것을 알기에 침묵한다 (38화). 보금은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나 고모와 살고 있다. 고모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링거를 맞아야 할 때까지 과로하며 돈을 벌고 있지만 삶은 녹록지 않다. 

사람들은 헤테로정상성 사회 속에 안주하며 성소수자를 “이해해볼 필요도 없이 게으르게 살 수 있”는데, 영은과 보금의 삶은 아무리 열심히 버텨도 불안정하고 갑갑한 순간들을 마주한다 (53화). 그들이 여자여서 겪는 불안은 흔한 일 취급을 받고, 레즈비언으로서 겪는 불안은 별종 취급을 받는다. 

검둥 작가의 웹툰 ‘안녕은하세요’의 한 장면. ⓒ검둥 작가/카카오웹툰
검둥 작가의 웹툰 ‘안녕은하세요’의 한 장면. ⓒ검둥 작가/카카오웹툰

하지만 ‘안녕은하세요’가 정말 중요한 작품인 이유는, 안녕하지 못한 나날을 견디면서도 사랑의 순간을 놓치지 않는 인물들을 그리기 때문이다. 작품은 한국에서 여성으로,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면서 봉착할 수밖에 없는 괴로움을 가감 없이 보여주기에 현실적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주인공들이 예상치 못하게 만나게 되는 행복과 즐거움을 가시화함으로써 독자가 생각하는 ‘현실’의 범위를 넓혀준다. 레즈비언의 ‘현실’을 말할 때 그 단어가 오직 절망과 불안만을 의미하지 않도록, 기막힌 우연과 가슴 뛰는 사랑을 포함할 수 있도록 확장하는 것이다. 

마음대로 그려지지 않는 것이 삶이기에, 계획 없이 맞닥뜨리고 도망치는 길에 만난 행운 역시 내일의 한 형태다. 가해자는 잘못한 게 없는 양 떠들고 다니는데 자신은 침묵할 수밖에 없어 술을 진탕 마시는 일이 현실적이라면, “널 과민하게 만든 세상 탓도 좀 해가면서 살아”라고 말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현실적이다 (39화). 상처를 묻어두고 혼자 삭히는 나날이 현실적이라면, “왜 우울했냐고 물어봐 주고 날 궁금해해” 주는 사람 때문에 행복해하는 것도 현실일 수 있다 (52화). 나쁜 타이밍과 실수가 연발하는 삶이지만, 그로 인해 사랑을 발견하는 순간도 있다는 당연한 진실이 작품 속에 녹아 있다. 그것이 ‘안녕은하세요’를 발견하는 것만으로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검둥 작가의 웹툰 ‘안녕은하세요’의 한 장면. ⓒ검둥 작가/카카오웹툰
검둥 작가의 웹툰 ‘안녕은하세요’의 한 장면. ⓒ검둥 작가/카카오웹툰

영은과 보금의 애간장 타는 이른바 ‘썸’은 한국 사회가 비가시화했던 레즈비언의 사랑을 독자의 눈앞에 드러낸다. 보이지 않는 것을 이미지화하는 데 특화된 그래픽 예술 매체로서, 만화는 레즈비언을 존재론적으로 삭제하는 사회를 탐구하는 데 적합하다¹. 주변의 시선 때문에 혹은 상대에게 부담이 될까 애써 숨겨 두는 주인공들의 두근거리는 마음과 애틋한 눈길을 독자들은 ‘볼 수 있다.’ 그저 웃으며 우울을 삼켰던 고등학생 시절과 달리 솔직하게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고 우는 영은에게 보금은 “난 지금의 네가 더 좋은데”라고 말한다 (25화). 보금을 짝사랑하는 영은은 한껏 들뜨고, 그 벅차오르는 마음은 보금의 말풍선을 소중하게 껴안는 영은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26화). 소설도 영화도 해낼 수 없는, 오직 만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연출이다. 독자들은 꼭 끌어안은 베개마냥 우그러진 말풍선과 영은의 발그레한 뺨을 보며 레즈비언의 행복을 ‘볼 수 있다.’

검둥 작가의 웹툰 ‘안녕은하세요’의 한 장면. ⓒ검둥 작가/카카오웹툰
검둥 작가의 웹툰 ‘안녕은하세요’의 한 장면. ⓒ검둥 작가/카카오웹툰

‘안녕은하세요’가 보여주는 것은 안녕할 수 없는 하루하루가 반갑다고 느끼게 될 정도로 따끈하고 포근한 사랑이다. 영은과 보금의 현실은 우연히 발견한 서로로 인해 버틸만한 것이 되어간다. 그들의 이야기는 아주 평범한 사랑 이야기가 담보하는 달달함과 함께 레즈비언의 사랑을 가시화한다. 검둥 작가는 웹툰이라는 매체를 통해 삭제됐던 퀴어들의 불행과 행복을 동시에 조명하고 드러내는 데 성공한다. 현실적인 불행만큼 현실적인 행운과 행복이 있다는 당연한 진실을 보여주기에 그의 작품은 더욱 소중하다. 

 

참고문헌

¹ Wood, Andrea. “Making the Invisible Visible: Lesbian Romance Comics for Women.” Feminist Studies, vol. 41, no. 2, 2015, pp. 293-334. 

검둥. <안녕은하세요>. 저스툰, 2019, 카카오웹툰. https://webtoon.kakao.com/content/%EC%95%88%EB%85%95%EC%9D%80%ED%95%98%EC%84%B8%EC%9A%94/2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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