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서 내자 ‘해임’ 초강수
윤핵관·초선의원 연일 맹폭
“권력 다툼에 민생은 뒷전”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10월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기념촬영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10월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기념촬영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4선 국회의원이자 보수 진영 대표 여성 정치인인 나경원 전 의원을 향한 같은 당 의원들의 맹폭이 이어지고 있다.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으로 알려진 김성태 전 의원은 나 전 의원을 겨냥해 “왜 장관이 못 됐는지 스스로 알 것”이라는 선을 넘는 비난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다. 집권여당이 당 대표 자리를 두고 계파 싸움을 벌이는 탓에 위급한 경제난과 민생고는 뒷전이 된 지 오래다.

국민의힘 3·8 전당대회 출마를 고심 중인 나 전 의원은 헝가리식 저출산 대책 아이디어를 냈다가 6일 대통령실의 1차 경고를 받았다. 안상훈 사회수석이 직접 질타했다. 나흘 뒤 나 전 의원이 사의를 표명하자, 대통실은 13일 사직서를 수리하거나 해촉을 하는 대신 ‘해임’했다. 사의를 밝히지 않은 기후환경대사직까지 해임한 점도 아이러니하다.

공무원법상 중징계의 의미를 갖는 ‘해임’은 어떤 지위나 맡은 임무를 ‘그만두게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통상 정치권에선 직책에서 물러나게 한다는 뜻의 ‘해촉’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왔다. 특히 저출산위의 민간위원 임면은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위·해촉하는 것으로 관련법과 시행령에 규정돼 있다. 나 전 의원의 경우 스스로 먼저 저출산위 부위원장 사의를 표명했기 때문에 ‘사의를 수용한다’ 등의 표현을 쓸 수 있었던 상황이다.

부위원장 해임 경위를 둘러싼 논박이 이어지자, 나 전 의원을 향한 당내 공세 수위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친윤계 장제원 의원은 12일 “공직으로 대통령과 거래를 시도하는 패륜” “반윤(反尹) 우두머리가 되겠다는 것”이라는 표현도 썼다. 친윤계인 박수영 의원은 영화 ‘나 홀로 집에’ 포스터에 나 전 의원의 얼굴을 넣고 “羅(나경원) 홀로 집에!”라는 문구를 붙인 합성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같은 당 동료였던 나 전 의원을 희화화한 합성 사진까지 만들어 공격한 것이다.

나 전 의원도 반격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제2의 진박 감별사가 쥐락펴락하는 당이 과연 총선을 이기고 윤석열 정부를 지킬 수 있겠나”이란 글을 올렸다.

친윤 그룹 의원들은 “왜 장관이 못 됐는지 스스로 알 것”이라며 수위를 높여 맞대응했다. “제2의 유승민”, “공직으로 대통령과 거래를 시도하는 패륜” 등 극단적인 표현들도 오갔다. 김성태 전 의원은 13일 라디오에서 “나 전 의원에 대해 외교부, 보건복지부 여러 자리(장관) 이야기가 있었고, 구체적인 진행 절차도 있었던 걸로 안다”면서 “본인이 제일 잘 알 것”이라고 했다. 나 전 의원에 대한 인사 검증 과정에서 흠결이 발견됐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국민의힘 초선 의원 48명은 나 전 의원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대통령에 대한 공식 사과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자 당내에서도 자중해야 한다는 비판이 인다. 이준석 전 대표는 “사무총장 호소인”이라며 장 의원을 비판했다. 안철수 의원도 “특정인을 향한 위험한 백태클이 난무한다”고 했다.

송문희 정치평론가는 과한 처사로 보이는 부분이 있지만 나 전 의원의 대처도 아쉽다고 밝혔다. 송 정치평론가는 “저출산위나 기후대사 두 직책의 무게는 당권 못지않게 중요하다. 나라의 존망과 미래가 걸린 일이기 때문”이라며 “나 전 의원이 무게감 있는 역할을 잘 해내길 기대했던 만큼 아쉬움도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 전 의원과 윤핵관의 내분은 결국 당권을 놓고 벌어지는 권력 다툼의 민낯을 드러내는 것이고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이어 “초선의원 48인이 나경원에게 사과하라고 촉구하는 모습도 기괴하다”며 “민주주의의 작동을 멈추겠다는 이야기로 들린다”고 덧붙였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작 대통령실은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대통령실 입장에선 나 전 의원이 대통령 이미지를 안 좋게 만들어 놓으면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져 총선이 어려워지고, 의원 개개인의 입장에선 당선 가능성이 떨어져 곤란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인들이 민생을 챙기기보단 정치적 이득을 우선하며 감정적인 대응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나 전 의원을 포함해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대통령의)눈치를 보며 대통령의 마음을 얻으려고 경쟁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의힘 의원들은 총선에서 공천 받으려고 대통령에게 충성을 벌이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정치인들이 대통령의 사랑과 후원을 받으려고 애쓰고 있고 대통령은 감정적으로 대응하며 갈라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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