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에 있는 한 노인복지관에서는 〈어르신 강사 양성 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종이 접기, 컴퓨터, 서예, 영어, 한글, 시조, 한국무용 등 기왕에 갖고 계신 능력을 잘 다듬어 자원봉사 강사 활동을 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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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노인에 의한' 교육을 목표로 하는 프로그램이다. 다른 강사들과 함께 나도 어르신들께 강사의 역할과 자세, 학습 대상자와 관계 맺기, 마음을 여는 대화법 등을 알려드리고 있는데, 솔직히 내가 무엇을 가르쳐 드린다기보다는 늘 어르신들께 보이게 보이지 않게 가르침을 받게 된다.
▶ 어르신과 함께 한 '마음열기' 꽃그림.
첫 시간의 일이다. 수강하시는 분들이 서로를 알고 처음 만나는 사람과 관계맺는 연습을 하기 위해 '마음 열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예쁜 꽃 모양이 그려진 종이를 나눠드리고, 한가운데에다가 먼저 자신의 별명을 써넣으시도록 했다. 그리고 오른쪽 꽃잎에는 가장 자신 있는 일, 반대편 왼쪽 꽃잎에는 가장 자신 없는 일, 또 위쪽 꽃잎에는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아래쪽 꽃잎에는 <어르신 강사 양성 아카데미〉에 지원하게 된 동기를 적으시도록 했다. 그리고는 네 분씩 둘러앉아 그 꽃 모양에 담긴 내용을 중심으로 돌아가며 각자 자기소개를 하시도록 했는데, 언제 머뭇거리며 어색해했던가 싶게 서로 인사를 나누고 소개들을 하시느라 교실 안이 금방 떠들썩해졌다.
그동안 나는 교실을 이리저리 돌며 팀원끼리의 소개가 끝난 후 대표로 앞에 나와 자기소개 하실 분들을 찾는다. 재미있게도 별명이 같은 분들이 눈에 띄었다. 키가 훌쩍 크신 두 아버님은 '장대와 키다리'이셨고, 반대로 키가 작고 조금 뚱뚱하신 두 분은 '땅딸보와 땅딸이'였다. 또 '두꺼비'가 두 분 계셨다. 두 분씩 앞에 모시니 어찌나 별명이 딱 들어맞는지 여기저기서 웃음과 박수가 터진다. 홍일점(紅一點) 아닌 홍이점(紅二點) 두 어머님은 '왕눈이와 시계바늘'이셨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그 자리에 계신 분들 가운데 한 분도 빼놓지 않고 이 프로그램 지원 이유를 쓰는 아래쪽 꽃잎에 '내가 가진 것을 나누려고 조금이라도 베풀고 싶어서'라고 쓰셨다는 사실이다.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지만 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나눠줘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어르신들의 그 마음이야말로 인생 선배만이 지닐 수 있는 넉넉함일 것이다. 키다리, 땅딸보, 두꺼비, 시계 바늘…생긴 모습만큼이나 나이도 경험도 다 다르지만 '나도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남을 돕기 위해 이 더운 날 땀흘리는 어르신들이 계시기에 우리 후배들은 그 길을 따라갈 용기를 얻는 것이리라. 다음 수업시간에는 시원한 음료수라도 들고 가 나눠드려야겠다.
유경/
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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