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한국정치가 끝없는 무기력과 상쟁의 수렁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고 있다. 정치가 국민에게 희망과 자긍심을 주기는커녕 절망과 수치심만을 심어주고 있다. 일하는 국회, 개혁 국회, 상생의 국회를 외치면서 출범한 17대 개원 국회는 40일의 짧은 기간 동안 국민들이 그렇게도 혐오하고 청산되기를 원한 모든 구태를 한 점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재연했다.

일하는 국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던 여야는 일도 하기 전에 상임위 배정을 둘러싸고 국회를 한 달간 공전시켰다. 더구나, 국회를 한 달간 파행으로 이끈 17대 개원 국회가 정상화되면서 보여준 첫 작품이 선거법을 위반한 의원의 체포동의안을 부결한 대목에 이르러서는 분노를 넘어 측은감마저 든다. 수출과 내수의 양극화로 경기침체는 지속되고 기업 투자 의욕 감소와 불안한 노사관계 등으로 일본형 장기불황의 먹구름이 한반도를 엄습하고 있다는 국내외 경제전문가들의 전망이 줄을 잇는데도, 여야 정치권은 사오정처럼 배짱 좋게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연일 상대방에게 상쟁의 칼을 겨누고 있다.

왜 한국 정치는 변함없이 선언적 상생만을 외치면서 실천적 상생은 이룩하지 못하는가? 이는 여야 정치인들이 상생의 정치와 선진 정치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한 것이다. 상생과 선진 정치의 핵심은 한마디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관용(tolerance)과 국익 우선의 정신이다. 이러한 정치의식의 기제가 작동되지 않는다면 결코 선진 정치는 이룩되지 않는다는 것이 서구 민주주의에서 입증된 경험적 법칙이다.

국회 과반수를 획득한 집권 여당이 정부 편에 서서 무조건 정부를 지지할 때 어떻게 상생의 정치가 이루어지겠는가? 이것은 특정 정권을 위한 행보는 될 수 있을지언정 국익을 위한 길은 아니다. 여당이 야당과 더불어 정부를 견제할 수 있을 때만이 선진정치의 기틀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상원 정보위원회에서 미국이 잘못되고 과장된 정보에 의해 이라크를 침공했다는 공식적인 보고서가 제출되면서 부시 대통령의 재선에 빨간 불이 켜졌다. 미국 상원 정보위는 공화당 9명, 민주당 8명 등 총 17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위원장은 부시 대통령과 같은 공화당 출신이다. 대통령 선거를 5개월 앞둔 시점에 재선을 추구하는 현직 대통령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보고서가, 그것도 대통령이 소속된 정당 출신이 위원장이며 다수인 위원회에서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정부를 견제하고 국익을 우선하는 데는 여야가 따로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선진 민주정치의 사례이다. 입만 열면 상생을 부르짖는 한국 정치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야당의 '반대를 위한 반대'(oppositional mentality)도 상생의 정치를 어렵게 하는 근본 요인이다. 무조건적인 반대에 따른 정부 발목잡기와 정부 견제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한나라당과 박근혜 신임 당 대표는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할 때만이 의미 있는 견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시급히 깨달아야 한다. 야당은 행정수도이전 자체에 대해 백지화를 주장하는 것인지, 아니면 행정수도는 찬성하지만 천도는 반대하는 것인지 명확한 입장을 제시해야 한다. 대안 없이 반대만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길이다. 한 나라의 정치 지도자라면 쉬운 길이 아니라 철학과 역사의식을 갖고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 국민우선의 길을 걸을 줄 알아야 한다.

상대방이 잘못해 비난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할 때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돌아보는 것이 바로 관용의 정신이다. 새로운 정치를 꿈꾸는 정치인들이 정파적 이해관계나 개인적인 도취감에서 벗어나 새롭게 눈을 뜨고 관용과 국익 우선의 정치를 제대로 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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