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헬스장에서 시민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서울 시내 헬스장에서 시민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몇 해 전 거주지를 옮기면서 체육관을 물색하러 다녔던 적이 있다. 남성 코치 두세 명이 맞아주던 한 체육관은 탈의실과 샤워 시설이 자랑거리였다. 여성 회원이 많아서 파우더룸도 따로 만들고 특별히 청결하게 관리한다는 거다. 체육관에 가는 목적이 운동이지, 샤워는 아니지만 자랑해도 좋을 만큼 시설이 깔끔하긴 했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걱정과 의구심이 따라붙었다.

‘이 안에 카메라는 없겠지?’

그곳이 특별히 수상쩍어 보였던 건 아니다. 그러나 겉보기에 깨끗하고 쾌적한 공간에서도 범죄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실제로 체육관 불법 촬영 범죄는 여성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

지난해 4월에도 대전의 한 헬스클럽에서 근무하던 트레이너가 자신에게 개인 트레이닝을 받는 여성 회원이 씻는 모습을 휴대전화로 불법 촬영한 사건이 보도됐다.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몇 년씩 개인 트레이닝을 받았고 피해 사실을 인지한 후에도 트레이너에게 전화해서 피해 사실을 털어놓을 정도로 가해자를 신뢰했다. 그런데 바로 그 신뢰의 대상이 범인이었다.

최근에는 범죄의 양상이 탈의실이나 샤워실을 불법 촬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다양해졌다. 여성들이 소셜네트워크(SNS)에 운동하는 사진이나 영상을 업로드하면 게시물을 불법적으로 합성해서 유포하는 등 악질적인 범죄가 계속 생겨나는 추세다. 이처럼 여성의 운동과 연관되어 발생하는 디지털 성폭력은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주는 건 물론이고 여성의 신체 활동에 제약을 가하는 억압으로 작용한다.

체육 시설 내 불법 촬영 근절 캠페인 ‘JUST STOP IT’

해당 범죄의 심각성을 알리고자 2021년 11월 25일 세계여성폭력추방의날을 맞아 예비사회적기업 운동친구와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활동 단체 리셋(ReSET)이 체육 시설 내 불법 촬영 근절을 위한 캠페인 ‘JUST STOP IT’을 진행했다. 캠페인을 홍보하는 해시태그는 ‘나의 운동은 너의 포르노가 아니다’, ‘안전하게 운동할 권리’였다. 인식 개선 캠페인과 함께 불법 촬영과 디지털 성폭력 범죄에 관한 실태조사도 함께 진행했다.

응답자 총 198명(전체 응답자 비율은 여성 99.5%, 남성 0.5%) 가운데 불법 촬영 노출에 관한 인식은 171명(86.4%)이 ‘매우 노출되어 있다’고 답했다. 운동 사진이나 영상을 SNS에 업로드했을 때 불법합성에 노출되어 있다는 인식도 ‘매우 노출되어 있다’가 85.4%였다. 체육 시설 내의 불법 촬영과 운동 사진을 게시했을 때 ‘불법 합성될 가능성에 관한 우려와 불안감을 느낀다’는 대답도 약 70% 비율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문제는 이러한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음에도 처벌이 미약하고 예방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회적인 인식과 법률과 제도가 개선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인가. 그동안에도 피해는 계속 발생하고 다수의 여성이 피해자가 될까 봐 불안해할 걸 생각하면 착잡하기만 하다.

운동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시대다. 그런데도 여전히 운동을 즐기는 인구의 비율을 비교하면 남성보다 여성이 현저히 낮게 나타난다. 여성이 운동을 자유롭게 즐기지 못하는 현상과 디지털 성범죄의 상관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즐겁고 안전하게 운동할 권리는 여성에게도 똑같이 보장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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