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나는 외도담론에 여성들의 결혼서약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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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는 별개 문제로 영화 TV 문화 코드에 갖가지 우스개 소리와 사실에 근거한 통계자료에 이르기까지 좋게 말하면 '애인', 냉소적으로 말하면 불륜 혹은 외도 얘기가 넘쳐나고 있다. 우리 사회에 '바람' 문화가 붐을 이루는 것일까, 한편으론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지만, 그 후유증의 냉엄한 현실을 생각하면 괜히 목 근처가 뻣뻣해진다.

◀클림트, '키스', 1907∼8.

최근 <뉴스워크> 한국판은 미국의 기혼여성 외도에 대한 특집을 게재, 눈길을 모았다. 기혼여성의 30~40%가 외도 경험이 있다는 사실도 충격적인데, 이젠 간통으로 일생을 정죄당해야 하는 '주홍글씨' 시대에서 직장여성건 전업주부건 첨단 과학기술에 힘입어 좀 더 용이하게, 좀 더 양심의 가책을 덜 받으며 외도를 할 수 있는 일종의 '성적 독립'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신호탄은 더욱 더 문화적 충격이다.

그렇다면 한국여성들은?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올 상반기 통계에 따르면, 총 2721명의 남녀 내담자 중 3.12%인 85명이 외도로 인한 이혼상담을 했는데, 이는 전년 상반기 2.28%에서 약간 늘어난 수치다. 남녀 성별분리 통계는 아니지만, 상담현장의 활동가들은 여성의 외도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임을 피부로 실감하고 있다.

서울여성의전화 이문자 여성인권상담소장은 가시화되고 있는 여성외도의 계기를 IMF위기 이후로 보고 있다.

“경제침체 속에서 여성이 생활전선에 나서면서 남자들처럼 바람의 유혹을 느낄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됐다”는 것. 전체 외도상담 중 여성의 외도 고민은 남성의 10% 가량 수치라고 한다. 여성들은 주로 다른 남자와의 연애가 삶의 활력소인데, 어떻게 남편에게 들키지 않고 애인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가부터 순진한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 관계가 깊어질수록 수반되는 상대남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 등을 고민한다. 그러나 그녀들의 고민이 늘 낭만적인 것은 아니다. 그 중엔 폭력남편과 사는 여성들의 경우, '들키면 곧 죽음'이라는 두려움이 크고, 채팅이나 나이트클럽의 부팅에서 못된 남자를 만나 관계를 폭로하겠다는 협박에 시달리는 여성들도 상당수다.

이 소장은 “여성의전화야말로 여성주의에 근거해 남성이 바람을 피울 권리가 있다면 여성도 바람을 피울 권리가 있다고 말해줄 수 있는 전국 유일의 상담기관일 것이다”라면서도 “여성 당사자에게 외도에 대해 우리 사회가 남녀에 들이대는 이중 잣대의 위험성도 분명히 지적해준다”고 말한다.

또 정절이데올로기가 아직 잔재해 마음만 가 있는, 플라토닉 러브를 하는 경우에도 '정신적 간음'을 심각히 고민하는 여성들도 꽤 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최근 아내의 외도를 이유로 폭력을 행사한 남편에 대해 이혼 판결을 내린 재판부의 판단이 시사하듯, 외도가 곧 인권유린의 빌미가 되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박이은경 편집국장pl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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