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의 성탄절이 지나갔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제정된 지 이제 4년, 이 법은 2019. 12. 25.부터 시행되었으므로 ‘2차 피해’라는 용어가 법률에 정식으로 자리매김하여 효력을 발하게 된 지도 이제 3년이 넘은 셈이다.

‘2차 피해’라는 개념은 오래 전부터 통용되어 왔었을 뿐만 아니라 법원의 판례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는 것이었지만, 여성폭력방지법 제정 전까지는 이를 법 문언에서 직접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노력에 힘입어, 이제는 2차 피해 방지에 관한 인식도 비교적 폭넓게 확산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2차 피해를 사유로 하는 징계사례, 법원의 판례도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필자도 2차 피해 발생에 따른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위반 고소사건을 계속 진행 중이다. 현실에서 법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체감하기로는 아직도 2차 피해 개념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에 개선되어야 할 점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일례로, 필자가 가장 많이 경험했던 행위자의 변명은 ‘그저 선의에서 나온 행동이었을 뿐인데요!’라는 것이었다.

성희롱의 경우, 가해행위자에게 성적 목적‧동기‧의도 등이 설령 없더라도 그 성립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은 법원과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례 및 결정례를 통하여 이미 확고부동하게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렇다면 2차 피해의 경우는? 그 의도에 있어서 2차 피해를 유발할 의사나 2차 피해를 유발하고 있다는 인식이 없다면 책임이 발생하지 않는 것일까?

법 문언을 보자. 입법자가 처음부터 세심하게 의도하여 그렇게 성안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어쨌든 여성폭력방지법은 행위자가 아닌 피해자의 관점에서 2차 피해를 정의하고 있다. 즉, ‘행위자가 어떠한 행위를 하였을 때 이를 2차 피해로 본다.’라고 정의하는 대신에, ‘피해자가 입게 될 수 있는 발생 가능한 여러 유형의 피해를 2차 피해로 본다.’라는 방식으로 이를 규정한다. 더 나아가, 이 법은 2차 피해의 성립요건으로 가해행위자의 괴롭힐 목적이나 의도 등은 언급하고 있지 아니하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행위 결과를 놓고 볼 때 합리적 피해자의 견지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될 수 있다면 이때 가해행위자의 의도 유무가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해 볼 수 있다.

법원이 바라보는 관점도 그러하다. 얼마 전 법원은 당해 사건에서 문제된 행위사실에 관하여 2차 피해 유발행위자에게도 나름대로는 양 당사자 사이에서 사안을 원만히 해결해 보고자 시도를 했던 것으로 평가해 볼 만한 여지가 없지 않다고 보았으면서도, 그 행위가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입힌 것 또는 상급자로서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치를 소홀히 한 것으로 평가하기에는 모자람이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울산지방법원 2019. 12. 19. 선고 2019구합6028 판결). 다시 말해, 선한 의지 내지 도우려는 마음에서 나온 행위라 해도 경우에 따라서 얼마든지 2차 피해 유발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2차 피해 유발행위의 경우에도 성희롱과 마찬가지로 2차 피해를 유발할 의사 또는 2차 피해를 유발하고 있다는 인식 유무는 그 성립인정에 있어서 고려될 필요는 없다고 일반화하여 정리해도 무방할 것이다.

다만,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의 경우와 같이 2차 피해 유발행위가 형사범죄로 규율되는 경우는, 현행법이 과실범 처벌규정을 따로 마련해 두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범죄의 성립을 위해서는 그 특정한 행위로 나아가고자 하는 고의가 있었음이 입증되어야 할 필요는 있겠다.

객관적으로 따져 보았을 때 고의 입증을 위한 증거 수집이 다소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 이때도 실망하기는 아직 이르다. 비록 형사책임을 묻기 어려울지라도 민사 불법행위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을 수 있다. 명문의 과실범 처벌규정 없이 과실에 기한 2차 피해 유발행위를 형사처벌 받게 하기는 어려우나, 민사책임에 있어서는 고의뿐만 아니라 과실에 기한 불법행위 책임도 당연히 인정되기 때문이다.

더욱 절실한 것은 2차 피해가 처음부터 발생하지 않게끔 하는 우리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다. 2차 피해에 대한 금지란, 거칠게 요약해 보면 ‘은폐, 회유, 예단, 비난 그리고 보복의 금지’라는 다섯 개의 키워드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한 가지 더! 궁극의 원칙, ‘피해자 의사의 최대한 존중!’ 이것이 전부다. 부디 새해에는 오늘보다는 더 나은, 더 안전한 내일이 우리에게 찾아오게 되기를.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인권 자문위원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인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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