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문화포럼 15일 열려
“환갑부터 아침밥 차리고 설거지...
늦었지만 큰 변화 겪어
짧은 인생, ‘사랑하는 법’만은 꼭 배워야
사랑의 또 다른 조건은 용서”

정호승 시인이 15일 서울 서초구 더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제64차 WIN 문화포럼'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정호승 시인이 15일 서울 서초구 더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제64차 WIN 문화포럼'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우리들의 삶은 너무나 짧지요. 이 짧은 시간을 살면서 ‘사랑하는 법’을 꼭 배워야 합니다.”

정호승 시인은 힘주어 말했다. 일흔이 넘도록 사랑과 고통을 열쇠말 삼아 인생을 노래해온 시인의 조언이다.

15일 서울 서초구 더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WIN문화포럼’ 연단에 선 정 시인은 2013년 발표한 시 ‘여행’을 낭독했다. “사람이 여행하는 곳은 사람의 마음뿐이다/아직도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 오지뿐이다....”

“거대한 우주 속 이 좁쌀만 한 지구에서 우리는 인생이라는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여행하는 것, 사랑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정 시인은 오지와 설산에 빗대어 사랑을 표현했다. “사람의 마음속 사랑을 찾아가는 일이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맨발로 히말라야의 설산을 기어오르는 것과 같아요. 그래도 우리는 사랑을 찾아가고, 사랑받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자본주의하에서 돈을 찾아 살아가는 이들이 많지만, 사랑은 돈보다 더 소중한 가치입니다. 절대자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건 아닙니다. 우리는 가족처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사랑을 원하고, 사랑하고 싶어 합니다.”

정호승 시인이 15일 서울 서초구 더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제64차 WIN 문화포럼'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정호승 시인이 15일 서울 서초구 더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제64차 WIN 문화포럼'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시인은 프랑스 ‘빈민의 아버지’ 아베 피에르 신부의 말을 빌려 “삶이란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얼마간의 자유시간”이라고 했다. 어머니의 헌신적이고 무한한 사랑을 회고하면서 “신의 사랑은 모성을 닮았다”는 글귀를 인용하기도 했다.

자신에게 일어난 “늦었지만 큰 변화” 이야기도 들려줬다. “경상도 문화권에서는 (남자가 가사노동을) 안 하는데, 제가 나이 육십부터 아침밥을 하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 아내에게 ‘여보, 오늘은 설거지해줄게’ 하니까 ‘설거지는 해주는 게 아니라 하는 거야’, ‘남자는 육십이 되면 철이 든다더니 꼭 당신을 두고 하는 얘기인가’ 하는 겁니다. 아내가 그러니까 처음엔 화가 났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집안일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러한 변화가 너무나 늦게 왔지요. 앞으로는 내 이익을 구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강연의 또 다른 화두는 ‘용서’였다. 시인은 “12월은 용서의 계절”이고, “사랑의 또 다른 조건은 용서”라고 했다.

“용서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남을 용서하지 못하면 당신이 죽습니다. 가슴에 총알이 박힌 것처럼, 용서하지 못하는 나 자신 때문에 더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선택입니다. 용서를 선택함으로써 내 과거를 해방하고 현재의 내 삶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정 시인은 등단 49년간 사랑의 기쁨과 피할 수 없는 생의 고독, 깨달음을 노래해 왔다. “울지 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로 시작하는 시 ‘수선화에게’를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시인이 한 해를 돌아보며 전하는 시 ‘새해의 기도’가 새로운 울림을 줄 것이다.

“올해도 저에게 상처 준 자들을 용서하게 해주세요/용서할 수 없어도 미워하지는 않게 해주세요/그렇지만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상처받지 않게 해주세요/무엇보다 저 자신을 용서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시인은 우리 삶의 곳곳에 도사린 고통을 이해해야 삶을 받아들이고 평온과 사랑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사랑 없는 고통은 있어도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고 김수환 추기경), “고통은 그 의미를 찾는 순간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의미 없는 고통은 없다”(빅터 프랭클), “고통은 극복하는 게 아니라 그냥 견디는 것이다”(박완서), “연꽃이 진흙을 필요로 하듯 행복은 고통을 필요로 한다”(틱낫한 스님) 등의 말도 들려줬다. “적절한 때를 만나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 연씨처럼, 우리는 오늘의 삶의 고통을 견뎌야 합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