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경찰, 에바 카일리 유럽의회 부의장 체포
에바 카일리의 수상한 발언들
메촐라 의장 "유럽의 민주주의가 공격받았다"
불법 로비에 취약한 의원의 특권 문화

뇌물 수수 혐의로 벨기에 경찰에 체포된 에바 카일리 유럽의회 부의장  ⓒ에바 카일리 트위터
뇌물 수수 혐의로 벨기에 경찰에 체포된 에바 카일리 유럽의회 부의장 ⓒ에바 카일리 트위터

벨기에 검찰이 에바 카일리 유럽의회 부의장을 뇌물혐의로 체포하면서 유럽의회가 발칵 뒤집혔다.

유럽의회는 카일리 부의장을 해임하며 진화에 나섰다.

벨기에 수사당국이 유럽의회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등 사건이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벨기에 경찰, 에바 카일리 유럽의회 부의장 체포

그리스 정치인으로 유럽의회 부의장 중 한 명인 에바 카일리(45) 의원이 9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벨기에 검찰은 이날 월드컵 개최국인 카타르의 부패 수사와 관련, 경찰이 다른 용의자 4명을 체포한 데 이어 카일리 부의장을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검찰은 앞서 브뤼셀에서 16곳을 압수수색해 현금 60만 유로(약 8억2600만 원)를 발견했다.

외신들은 "먼저 체포된 4명은 모두 이탈리아 출신"이라며 "그 중 1명은 카일리의 파트너로, 유럽의회 사회당그룹(S&D)의 보좌관"이라고 설명했다.

벨기에 현지 언론은 체포된 인사 중 이탈리아의 피에르-안토니오 판체리 전 유럽의회 의원, 루카 비센티니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 사무총장 등이 포함됐다고 전했다.

수사 소식이 알려지자 사회당그룹은 즉각 카일리 부의장의 당원 자격을 정지했다.

카일리 부의장이 자국에서 소속된 정당인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PASOK)도 트위터를 통해 그를 제명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수사 내용을 설명하면서 카타르를 명시적으로 지목하지는 않았으나, '걸프 국가'를 가리켜 "유럽의회의 경제적, 정치적 결정에 영향을 미치려고 한 혐의가 있다"고 언급했다.

검찰은 "유럽의회 내 상당한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지위를 지닌 제3자에게 거액의 돈이나 선물을 건넨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에바 카일리의 수상한 발언들

유럽의회 ⓒ유럽의회 홈페이지
유럽의회 ⓒ유럽의회 홈페이지

에바 카일리는 2022 카타르 월드컵이 열리기 몇 달 전부터 꾸준히 카타르를 지지하는 발언을 해왔다. 월드컵 개막 직전엔 카타르를 공식 방문했다. 

그는 지난달 유럽의회 연설에서 “카타르 월드컵은 아랍 세계에 영감을 준 개혁으로, 스포츠 외교가 어떻게 한 국가에서 역사적인 변화를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증거”라고 말했다. 

카타르가 노동자의 비자 허용이나 직업 선택의 자유를 고용주에게 일임한 ‘카팔라’ 제도를 폐기했다며 “카타르는 노동권의 선두주자”라고 극찬했다. 

당시 카타르는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이주노동자 수천명이 사망했다는 외신 보도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던 상황이었는데도 카타르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에바 카일리는 건축학을 전공했으며 그리스 메가 채널의 기자 출신이다. 지난 2007년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PASOK) 소속의 전국 의원으로 당선됐다.  지난 2014년 유럽의회 의원으로 당선돼 유럽의회에 발을 디뎠다.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은 카일리의 자격을 정지했다.

메촐라 의장 "유럽의 민주주의가 공격받았다"

로베르타 메촐라 유럽의회 의장 ⓒ유럽의회 홈페이지
로베르타 메촐라 유럽의회 의장 ⓒ유럽의회 홈페이지

BBC는 카일리에 대한 수사가 유럽 의회 역사상 가장 큰 부패 스캔들 중 하나가 될수 있다고 보도했다.

조셉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카일리의 체포와 관련해 "매우,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아날레나 베어복 독일 외무장관은 이 사건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베어복 장관은 "유럽의 신뢰성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에서 결과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베르타 메촐라 유럽의회 의장은 "유럽의 민주주의가 공격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메촐라 의장은 "개방적이고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가 공격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도 "매우 심각하다"며 새로운 유럽연합 윤리기구의 설립을 촉구했다.

유럽의회는 13일(현지시각) 그의 부의장직을 박탈하기로 의결했다. 유럽의회는 이날 카일리 부의장 해임 안건을 상정해 전체 705명의 의원 중 625명의 찬성을 받아 가결했다. 반대는 1명, 기권은 2명이었다.

유럽 의회는 유럽 연합의 유일한 직접 선거 기관으로 유럽연합을 구성하는 27개국의 유권자들이 선출한 의원 705명으로 구성됐다. 집행부는 의원들이 선출한 의장과 부의장 14명이다.

현재 구속 상태인 카일리 부의장은 다음주 법정에 출석할 예정이다. 

당국의 관련 조사를 받고 있는 마리 아레나 유럽의회 인권소위원회 의장을 비롯한 같은 당 다른 의원들도 주요 직책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불법 로비에 취약한 의원의 특권 문화

벨기에 경찰이 공개한 지폐더미 ⓒpolicefederale 트위터
벨기에 경찰이 공개한 지폐더미 ⓒpolicefederale 트위터

카타르가 EU 의회 의원을 매수할 수 있었던 원인으로 EU의 취약한 로비문화가 꼽히고 있다.

EU에서는 로비가 합법이다. 그만큼 불법 로비 가능성도 높다. 특히 '의원은 예외'라는 특권 문화가 팽배했다. 

EU 행정부인 집행위원회와 비교하면 유럽의회가 훨씬 느슨한 로비 기준을 적용해 왔다.

EU는 로비스트 명부인 '투명성 등록부'를 관리한다. EU와 접촉하려는 로비스트들은 여기에 등록하고 감시를 받아야 한다. 지금까지 1만2,447명이 등록돼 있다. 이익단체(8,215명), 비정부기구(3,532명), 연구기관·지방자치단체(676명) 등에 적을 둔 로비스트들이다.

유럽이 아닌 제3국의 관료는 등록 대상이 아니다. 카타르 정부 관계자가 카일리 부의장에게 접근해 어떤 거래를 하더라도 이를 알릴 의무는 없었다. 다니엘 프러인트 유럽의회 반부패 실무그룹 공동의장은 "제3국이 (사각지대를 악용해) EU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는지 드러났다"며 "제3국에 의한 로비도 관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EU 회원국들은 "이번 사건을 개인 비리로 치부해선 안 된다"고 자성하고 있다.

벨기에 수사당국은 유럽의회 사무실까지 수색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이날 벨기에 연방검찰청은 “9일 이후 유럽의회 사무실 1곳과 개인 주거 공간 19곳을 수색했다”고 밝혔다. 

빈센트 반 퀴켄본 법무장관은 벨기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럽의회 의원들의 뇌물수수 혐의에 한 나라 이상이 연루됐다고 밝혔다.

벨기에 경찰은 이후 유럽의회 내 부패, 자금세탁, 범죄조직과 관련된 혐의로 200유로, 50유로, 20유로, 10유로짜리 유로 지폐 더미 사진을 공개했다.

검찰에 따르면 한 관련자 자택에서 현금 60만 유로(약 8억2600만원)를 압수했고, 유럽의회 의원이 소유한 또 다른 집에서 15만 유로가 나왔다. 한 호텔방에서도 수십만 유로가 발견됐다.

벨기에 수사당국은 정보유출을 막기 위해 유럽의회 IT 관련 직원들의 컴퓨터를 압수했다.

수사 범위가 넓어지고 있어 유럽의회 의원들의 비위 사실이 추가로 드러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