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10일 LG아트센터 서울서
창작판소리 ‘노인과 바다’ 공연
재기발랄한 고전 재해석에
부채·목소리로만 객석을 쥐락펴락
관객과 호흡하는 ‘열린 극’ 이끌어

2019년 11월, 이자람 판소리극 ‘노인과 바다’ 두산아트센터 초연 현장. ⓒ두산아트센터 제공
2019년 11월, 이자람 판소리극 ‘노인과 바다’ 두산아트센터 초연 현장. ⓒ두산아트센터 제공

“홱, 퍽, 다르르르르르~ 노인네 손~바닥을~ 쓸며 낚싯~줄이 다르르르르 풀려나간다~!” 소리꾼 이자람이 목청을 돋우자 객석에 긴장감이 흘렀다. 홀로 망망대해에서 고기를 잡던 노인이 거대한 청새치와 맞붙는 대목이다. 팽팽해진 낚싯대를 잡고 버티던 노인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물을 마시려 애쓰는 대목에선 객석이 웃음바다가 됐다. 사흘간의 사투 끝에 노인이 승리하는 대목에선 호쾌한 추임새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렇지!” “아~!” “좋~다!”

지난 9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 판소리극 ‘노인과 바다’ 무대는 뜨거웠다. 120분간 부채와 북, 목소리만으로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이자람의 솜씨는 대단했다. 노인과 청새치가 맞붙고, 상어 떼가 습격하는 대목에선 바다가 요동치는 소리, 노인이 작살을 휘두르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소리까지 실감 나게 연기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을 바탕으로 이자람이 직접 쓰고 작창한 판소리다. 홀로 먼 태평양에 고기잡이를 나간 노인이 엄청난 청새치를 만난다. 사흘간 힘겨루기 끝에 청새치에게 작살을 꽂지만, 상어 떼에 몸통을 다 뜯기고 뼈와 머리만 갖고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이자람은 이 방대한 고전을 재기발랄한 상상력으로 재해석했다. 노인의 외모를 묘사하며 “외줄낚시를 버텨온 양어깨가 잘생겼다”고 넉살을 부리고, 노인이 회를 써는 대목에선 “회엔 와사비에 간장이 제일인데 원작에는 없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무대 장치를 최소화해 소리에 더 집중케 했다. 중간중간 조명 효과로 긴장감과 신비로움을 더했다. 관객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노인이 보여준 강렬한 생의 의지, 자연과 사투를 벌이면서도 경의를 표하는 자세를 설득력 있게 전달했다.

ⓒLG아트센터
ⓒLG아트센터

2019년 11월 두산아트센터 초연 이래 국내외 다양한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난 작품이다. ‘추물/살인’으로 동아연극상 신인연출상을 수상한 박지혜가 연출하고, 무대미술가 여신동이 시노그래퍼로 참여했다.

이자람은 중요무형문화재 5호 판소리 이수자다. 1990년 12세에 판소리에 입문, 1999년 ‘춘향가’ 최연소 완창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엄청난 에너지와 무대 장악력으로 국내외에 명성을 떨쳤다. 직접 쓰고 작창한 ‘사천가’, ‘억척가’ 등도 호평받았다. ‘아마도이자람밴드’ 보컬·기타리스트, 영화음악 감독, 연극·뮤지컬 배우로 활약했고, 올해 에세이집 『오늘도 자람』을 펴냈다. 뮤지컬 ‘서편제’의 ‘송화’ 역으로 더뮤지컬어워즈 여우주연상, 판소리 단편선 ‘추물/상인’으로 동아연극상 새개념 연극상을 받았다. 2011년 제4회 올해의여성문화인상 ‘신진여성문화인상’ 수상자다.

2019년 11월, 이자람 판소리극 ‘노인과 바다’ 두산아트센터 초연 현장. ⓒ두산아트센터 제공
2019년 11월, 이자람 판소리극 ‘노인과 바다’ 두산아트센터 초연 현장. ⓒ두산아트센터 제공

이날 공연은 서울 강서구로 이전하며 ‘마곡 시대’를 연 LG아트센터 서울 개관 페스티벌의 하나였다. LG아트센터가 서울 강남에 있었을 때, 이자람은 2011년~2013년 3년 연속 ‘억척가’를 기획공연으로 선보이며 전회 매진·전석 기립 기록을 세웠다. 이날도 1335석 규모의 LG 시그니처홀이 거의 꽉 찼다. “1000명 넘는 관객 앞에서 하는 건 처음이에요. 좋네요.” 활짝 웃으며 등장한 이자람은 공연에 앞서 “추임새는 관객이 무대에 보내는 응원과 공감”이라며 간단한 추임새를 알려주고, 자진모리 장단에 맞춰 박수를 치는 법도 알려줬다. 자연스럽게 관객과 호흡하는 열린 극으로 만들었다.

능수능란한 소리꾼도 무대에 온 힘을 쏟고 나면 ‘소리앓이’를 겪는다. 극의 마지막, 신들린 듯한 무대를 선보이던 이자람은 이제 막을 내릴 시간이라며 “이자람이 몸도 부서질 것 같고~”라고 노래했다. 농담조였지만 그 한마디에 그가 소리를 완성하려 홀로 애쓴 시간이 그려지는 듯해 마음이 숙연했다. 퇴장하는 이자람과 고수 이준형의 뒤로 긴 여운의 박수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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