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체험과 감수성에 대한 공감대, 배려의 편안함…

청일점 남편은 이해 못 해

“아니, 장모님과 이모님은 왜 저토록 집요하게 그까짓 김치 하나 가지고 흥분하시지? 안 먹으면 그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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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1년 여름, 큰 맘 먹고 엄마와 이모, 그리고 남편과 함께 떠난 베트남 하롱베이에서 남편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니글니글한 중국음식 일색에 지쳐 있던 우리 일행은 한 그룹으로 함께 온 몇몇 가족 일행이 한국에서 특별히 챙겨온 갖가지 종류의 김치를 여행 첫 날에만 인색하게 조금 내놓은 후 쭉 자기네들끼리만 김치를 음미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차였다.

◀2001년 엄마, 이모 고정 여행 멤버에 남편이 추가되어 떠난 베트남 하롱베이 선상에서 엄마와 한 컷.

엄마와 이모는 그럴 때마다 한국인 특유의 접대 습성상 있을 수 없는 행태를 그네들이 한다고 생각했고, 고추장으로 유명한 호남 저쪽 지방에서 온 그네들이 고추장 사업가 아니면 조폭일 것이라고 나름대로 농담반 진담반 악의적인 추측을 하기도 했다. 더구나 여행 스케줄 중 단지 골프를 위해 동행한 아이들을 다른 일행에게 맡기고 어른들끼리 골프장으로 이탈(?)하는 행위에 대한 분노까지 겹쳐 여행기간 내내 엄마와 이모의 김치 타령은 종종 이어지곤 했다. 부엌의 메커니즘이나 음식에 대한 애착이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남편이 엄마와 이모, 그리고 간혹 동조하는 나의 흥분을 이해할 수 없었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면서 여자들에 섞여 청일점으로 떠난 여행에 대한 문화적 충격을 감내(?)했다.

2001년 초 하노이 직항 노선이 생기면서 갑자기 인기 여행지로 부상하기 시작한 하롱베이를 그해 다소 무리를 해가며 피서지로 택한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엄마는 수년 전 카트린느 드뇌브가 주연한 프랑스 영화 '인도차이나'의 배경지라는 이유에서, 난 한 여성활동가가 베트남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여행하게 돼 확실히 재충전을 했다는 경험담에서 마음으로 이미 별러왔던 것이다. 하롱베이에서 마주친 첫 숙소에서 엄마가 프론트 데스크로까지 직접 가서 '인도차이나' 촬영 당시 카트린느 드뇌브가 묵었던 방을 자신에게 내줄 수 없느냐는 요구를 하는 순간에 가선, 남편의 충격은 그야말로 절정(?)에 달했다. 후에 엄마의 방이 카트린느 드뇌브가 묵었던 바로 그 방이 아니라는 사실(어쩌면 당연하다!)을 알고 나도 함께 이를 애석해하자 남편은 여자들의 이해할 수 없는 감수성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남편이 가장 곤혹스러워한 것은, 동행한 여성 3인방의 쇼핑욕일 것이다. 이국적 물품에 대한 탐심과 호기심은 사실 가격의 고하와는 별 상관없는 것이었다. 남편은 아이 쇼핑을 위해 어느 순간 사라진 여성 3인방을 찾는 데 늘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고, 때론 일행들에게 다른 행선지로 출발하기 직전 그 3인방을 기다려줘야 하는 이유를 진땀을 흘리며 설명하곤 했다. 이후 남편은 장모님, 이모님과 함께 여행을 떠나자 얘기를 다시는 자신이 먼저 꺼내지는 않았다… .

사실, 난 요즘 세대 같지 않게 아주 늦도록(대학원 때까지) 친구들보다는 가족과 함께 여행을 많이 떠났고, 97년 결혼 이후에도 겨울이건 여름이건 남편과 함께 떠나는 여행보다 엄마와 이모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 더 많을 정도로 여행패턴이 좀 특이한 편에 속한다. 현실적으론, 내 휴가기간을 남편이나 친구들과는 맞추기 힘들었던 반면 전업주부로 비교적 시간 활용이 자유로운 엄마와 이모가 여행 파트너로선 더 부담이 없었다. 게다가 남편과 함께 떠나는 여행에선 내가 더 배려해야 하는 입장에 서야 하지만, 반대로 엄마나 이모와 함께 떠나는 여행에선 내가 더 배려를 받는 입장에 선다는 데서 오는 이기적 편안함도 있다. 비록 시어머니 같은 약간의 잔소리는 감내해야 하지만.

아 참, 내가 남편에게 '마마 걸' 소리까지 모질게 들어가면서도 엄마와 이모라는 여행 파트너를 쉽게 포기 못 하는 큰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엄마와 이모는 내 탄생부터 성장기를 쭉 지켜본 증인이자 어려울 때 가장 가까이 있었던 동지로, 힘든 시기를 함께 건너왔다는 공동체 의식이 우리사이에 형성돼 있다. 낯선 여행지에서 한 잔 술이 얼큰히 들어가면 어르신들이 종종 말하는 “그때를 생각하면…이렇게 커서 사회에서 한몫 해내니 참 대견해”란 칭찬에 순간 눈시울이 잠시 젖어들 정도로 난 깊이 중독돼 있다. 이에 더해 우리만의 허스토리를 말할 시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안도감도 한몫 한다.

박이은경 편집국장pl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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