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도 청년 여성이 ‘페미니즘’을 합니다]
3. 지방 청년 여성 페미니스트 5인 인터뷰
일반 시민 관심도 떨어져… 단체·대학 동아리 중심
백래시 거세… QR코드에 압정 박아두고 포스터 훼손
“페미니스트·페미니즘 공동체 숫자 많아져야”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고 있다. 인구 감소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지역 상황을 일컫는 이른바 ‘지방소멸’은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그 중심에 여성 청년이 있다. 20~39세 여성 인구 수는 ‘소멸위험지역’을 가르는 잣대다. 현재 65세 이상 인구가 20~39세 여성의 수보다 배 이상 많아서 사라질 수 있는 소멸위험지역은 전국 228개 시·군·구 중 113곳(49.6%)에 달한다(한국고용정보원). 2015년보다 33곳, 2020년보다는 11곳 늘었다.

지역 내 성평등은 ‘지방 소멸’을 풀어낼 열쇠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가 된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도 지역에서 페미니즘의 목소리를 일로, 활동으로 꾸준히 내는 이들이 있다.

여성폭력피해자지원현장단체 공동행동 집회에 참여한 별이 전주여성의전화 사무국장. ⓒ본인 제공
여성폭력피해자지원현장단체 공동행동 집회에 참여한 별이 전주여성의전화 사무국장. ⓒ본인 제공

인터뷰 참여자들은 대부분 성차별을 ‘나의 이야기’로 겪거나 느끼면서 페미니스트가 됐다. 별이 전주여성의전화 사무국장(29)은 2016년 우연히 ‘성평등 상담원 양성 교육’ 현수막을 보고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졌다. 당시 강남역 사건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졌던 것도 한 몫 했다. 강원도 원주에서 문화 기획자로 일하고 있는 신동화(35) 씨는 장녀로 자라며 한국의 성차별 문화를 깨달았다고 밝혔다. 이후 딸을 낳고 결혼과 육아를 하며 산후 우울증을 오래 앓았고, 성별 불균형을 겪으며 페미니즘 관련 시각을 가지게 됐다.

‘우리가 말하지 않는 것’ 주제로 열린 원주 학성동 성매매집결지 관련 포럼. ⓒ신동화
‘우리가 말하지 않는 것’ 주제로 열린 원주 학성동 성매매집결지 관련 포럼. ⓒ신동화

이들은 다양한 페미니즘 활동을 하고 있었다. 별이 사무국장이 속한 전주여성의전화는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사업, 상담사업, 인식개선 사업, 소모임 활동 등을 진행 중이다. 신동화 씨는 현재 원주 지역의 성매매 집결지 학성동 아카이브 사업을 하고 있다. 내년에는 지역의 성평등 담론을 논의해보는 사업을 할 예정이다.

인터뷰 참여자들은 지방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일반 시민의 관심도는 떨어지는 편이라고 밝혔다. 별이 사무국장은 전주 지역에서는 여성 단체의 활동이 활발하고, 페미니즘 소모임이 대학을 중심으로 조성돼 있다고 소개했다. 충북대학교 간호학과 페미니즘 동아리 ‘보구여관’도 그중 하나다. 보구여관이라는 이름은 동명의 최초 근대식 여성 대상 진료 기관이자 근대식 간호교육기관에서 따왔다.

두마(26) 씨도 경상국립대학교 ‘세상의 절반’의 창립 멤버다. 경남지역대학 페미니즘동아리 연합 ‘아우르니’ 대표도 겸하고 있는 그는 “경남 지역에서라도 우리의 목소리를 모아낼 수 있는 창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아우르니에는 경상국립대 ‘세상의 절반’, 진주교대 ‘방과후 페미니즘’, 창원대 ‘페밋’, 경남대 ‘행동하는 페미니즘’이 속해있다.

보구여관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리 씨와 은조 씨는 한국 사회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큰 사건을 기점으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아리 씨는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 때, 당시 남자친구와의 논쟁은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은조 씨는 “페미니스트라고 스스로 생각하게 된 계기는 2020년 N번방 이슈”라며 “이전까지는 페미니즘이 극단적이라고 생각해 외면하고 있었다. 하지만 끔찍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고, 페미니즘에 동참해서 같이 활동하고 싶다고 생각을 바꿨다”고 말했다.

두마 씨는 여성 대상 범죄 피해자가 될 뻔했던 경험이 페미니스트의 길로 이끌었다. 그 경험 이후 일상 속에서 공포를 겪었다는 그는 ‘내가 여자라서’ 이런 일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페미니즘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충북대학교 간호학과 페미니즘 동아리 보구여관이 붙인 인하대 사건 관련 대자보. ⓒ보구여관
충북대학교 간호학과 페미니즘 동아리 보구여관이 붙인 인하대 사건 관련 대자보. ⓒ보구여관

‘보구여관’은 간호학과라는 학과의 특성을 살린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간호사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한편, 건강권과 월경인식개선 위한 캠페인을 학교 축제에서 벌였다. 최근 발생했던 인하대 살인사건 때에는 여성단체와 함께 대자보를 붙였다. ‘아우르니’는 인하대 사건 기자회견에 참여하는 등 사안에 대응하는 한편, 페미니즘을 알리고 백래시에 맞서기 위한 대중 강연회 등 기획 사업을 하고 있다.

인하대 강간살인사건 엄중처벌 촉구 기자회견 단체 사진. ⓒ아우르니
인하대 강간살인사건 엄중처벌 촉구 기자회견 단체 사진. ⓒ아우르니

그러나 백래시는 견고하다. 충북지역의 ‘보구여관’과 경상지역의 ‘세상의 절반’ 모두 커뮤니티 사이트 ‘에브리타임’에 올라오는 조롱·루머 게시글로 인한 피해를 호소했다. ‘보구여관’은 동아리 홍보 포스터를 훼손하는 일도 있었다. 아리 씨는 “신원이 노출되고,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고정되는 것이 걱정된다”며 “페미니즘의 인식이 개선되는 게 시급하다”고 밝혔다.

어떤 형태로 외치든 간에, 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스트와 페미니즘 공동체의 수가 많아져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은조 씨는 “더 많은 소모임이 생겨서,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고 전했다. 두마 씨는 “단체에 들어가지 않고 개인 페미니스트들이 다수다. 하지만 이는 한계가 크다”며 “페미니즘 공동체에 들어가 목소리를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별이 사무국장은 “쉽고 가벼운 방식으로 페미니즘을 접할 수 있기 위해 페미니즘 문화 기획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신동화 씨는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페미니즘 문제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역은 보수적이니 현실에 순응해야 한다는 한계를 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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