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알려진 랭보-베를렌느 이야기에
랭보의 친구 ‘들라에’라는 존재 더해
‘우리는 모두 특별하다’는 메시지 전해
2023년 1월 1일까지, 대학로 TOM 1관

(뮤지컬 ‘랭보’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뮤지컬 '랭보' 공연 사진. 랭보 역의 윤소호, 베를렌느 역의 정상윤. ⓒ더웨이브
뮤지컬 '랭보' 공연 사진. 랭보 역의 윤소호, 베를렌느 역의 정상윤. ⓒ더웨이브

19세기 후반, 프랑스 문단을 들었다 놓은 사건이 있었다. 바로 시인 랭보와 베를렌느의 스캔들. 눈 앞에 반짝였던 단어들을 시로 옮기기만 하면 됐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자평하기에 누더기같은 시를 쓰고 있는 베를렌느. 그는 어느 날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랭보가 스스로에 대해, 그리고 시에 대해 말한 편지는 베를렌느를 사로잡는다. 베를렌느는 랭보를 파리로 초대하고, 17살의 랭보와 27살의 베를렌느의 이야기가 그렇게 시작된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토탈 이클립스’로도 만들어져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다. 뮤지컬 ‘랭보’도 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이야기에 ‘들라에’라는 존재를 더해 또 다른 주제를 말한다. 바로 ‘우리 모두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

뮤지컬 '랭보' 공연 사진 중 일부, 들라에 역의 조훈. ⓒ더웨이브
뮤지컬 '랭보' 공연 사진. 들라에 역의 조훈. ⓒ더웨이브

어린 시절부터 랭보와 함께 해온 들라에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고민한다. 반면에 랭보는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분명하다. 랭보는 ‘투시자’가 되기로 결심했다며 시인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편지와 시를 보낸다. 그는 결국 파리로 베를렌느를 만나러 떠나 자신의 시를 꽃피우지만, 들라에는 고향에 남아 더욱 고민에 빠진다.

들라에는 결국 랭보가 죽음을 맞이한 뒤, 랭보가 마지막 시를 찾아 프랑스에서 아프리카로 떠난다. 그는 공연의 마지막에 고백한다. 자신이 랭보의 시를 찾아 떠났던 이유는 랭보를 위해서가 아니라, 랭보가 인생을 통틀어 찾고자 했던 진정한 시를 찾으면 자기가 누군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고, 그리고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뮤지컬 '랭보' 공연 사진. 들라에 역의 정지우. ⓒ더웨이브
뮤지컬 '랭보' 공연 사진. 들라에 역의 정지우. ⓒ더웨이브

그러나 들라에도 특별한 사람이었다. 당시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던 랭보의 시를 알아봐주었다. 베를렌느의 통찰력을 눈치채고 랭보에게 소개해준 이도 들라에였다. 이처럼 우리에겐 우리가 알지 못하는 특별한 부분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주변에 있는 빛나는 사람들을 보며, 상대적으로 빛나지 않는 나의 모습에 위축되고 슬퍼한다. 그런 우리들에게 뮤지컬 ‘랭보’는 우리도 들라에처럼 특별한 부분이 존재한다고, 그러니 슬퍼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뮤지컬 ‘랭보’는 특별한 주제와 함께 아름다운 가사를 담고 있다. 넘버의 가사가 모두 랭보와 베를렌느의 시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말을 가사로 담아내는 일반적인 뮤지컬과 달라 조금은 낯설 수 있지만, 시가 애초에 운율이 있는 장르라는 점에서 곧 익숙해지게 된다. 넘버의 가사 중 ‘초록’이 가장 아름다웠는데, 자신의 시를 부끄러워하는 베를렌느와 달리 랭보가 감탄하는 그의 시 중 하나다.

열매 꽃 잎사귀 가지들이 여기 있소/

그리고 당신 때문에 뛰는 내 가슴이 여기에 있소(넘버 ‘초록’)

아름다운 시가 담긴 가사를 든든하게 받치는 건 서정적인 음악이다. 넘버의 작곡가 민찬홍은 대학로 스테디셀러 뮤지컬 ‘빨래’의 넘버 작곡가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잃어버린 얼굴 1985’,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렛미플라이’ 등의 작곡을 맡았다.

뮤지컬 '랭보' 공연 사진. 랭보 역의 정욱진, 베를렌느 역의 김지철. ⓒ더웨이브
뮤지컬 '랭보' 공연 사진. 베를렌느 역의 김지철, 랭보 역의 정욱진. ⓒ더웨이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2시간 동안 랭보의 일생을 전부 담아야 하다 보니 베를렌느와의 갈등 부분에서 내용이 갑작스럽게 전개된다는 것이다. 직전의 장면까지 두 사람이 위기를 극복하고 시를 쓰는 내용이 이어지는 줄 알았지만, 인물들은 갑자기 싸우기 시작한다.

배우들의 열연이 아쉬움을 채운다. 사회의 책임과 의무 속에서 두 사람의 갈등이 절정으로 치닫는 장면에서 랭보와 베를렌느 역의 배우들이 보여주는 연기는 감탄을 자아낸다. 성종완 연출, 박정원, 정욱진, 윤소호, 김종구, 정상윤, 김경수, 김지철, 문경초, 조훈, 정지우 출연. 2023년 1월 1일까지 대학로 TOM 1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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