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찰 대응 부적절했다"
WP "인기없는 대통령의 시험대"
이란 외교부 대변인, "한국 정부가 관리했어야"

이태원 참사 발생 초기 애도를 표했던 외신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정부의 책임을 묻는 기사들을 일제히 싣고 있다. 

외국인 희생자 26명 가운데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왔던 이란 외교부 대변인이 성명을 통해 한국 정부의 관리부실을 지적하자 우리 외교부가 유감을 표시하는 등 외교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 "한국 경찰 대응 부적절했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이태원 핼러윈 압사 참사와 관련, 대국민 사과 입장 표명 기자회견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윤희근 경찰청장이 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이태원 핼러윈 압사 참사와 관련, 대국민 사과 입장 표명 기자회견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BBC와 CNN 등 주요 외신들은 1일(한국시각) 경찰의 대응이 부적절했다는윤희근 경찰청장의 기자회견 내용을 일제히 보도했다.

BBC는 "이태원 압사 사건에 대한 경찰의 대응이 "부적절하다"고 말한 윤 청장의 발언은 참사를 막기 위해 대응이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한국 관계자들의 첫 번째 인정이다"라고 전했다.

윤 청장은 참사 발생 사흘만인 전날 회견에서 "공공 안전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면 전면적인 조사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이상민 내무부 장관도 156명이 사망하고 152명이 부상당한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윤 청장은 1일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 전체 회의 보고에서 “사고 당일(지난달 29일) 18시 34분쯤부터 현장 위험성·급박성을 알리는 112신고가 11건 접수됐지만, 사고예방 등 조치가 미흡했던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윤 청장은 “이번 사고와 관련한 경찰 조치 미비점을 철저히 규명해 엄정 조치하겠다”며 “경찰청장 지시로 강도 높은 감찰 조사에 착수했으며, 경찰청에 특별 기구를 설치해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겠다”고 말했다.

BBC는 참사가 시작되기 몇 시간 전인 현지 시간으로 18시 34분에 한국의 긴급 전화 번호로 첫 번째 전화가 걸렸으며, 이후 3시간 30분 동안 10건의 전화가 더 걸렸다고 보도했다.

NYT는 방탄소년단이 한국에서 콘서트를 개최했을 때를 언급하면서 한국 경찰이 "군중이 통제를 벗어나지 않도록 세심한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언급했다.

NYT는 "지난 29일에는 이러한 일(세심한 계획 아래의 통제)이 발생하지 않았다"라며 "경찰은 단 137명의 경찰 인력을 배치했고, 이들 대부분은 군중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성희롱이나 절도, 마약 등 범죄를 단속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라고 전했다.

NYT는 이번 핼러윈 축제가 방탄소년단의 콘서트와는 달리 주최 측이 없는 축제였음에도 "경찰 스스로 군중이 얼마나 모일지는 아니더라도 많이 모일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NYT는 한국 경찰이 결국 핼러윈 축제에 대비해 준비를 충분히 하지 못했으며, "사망한 사람들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는 정부 기관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 WP, "인기없는 대통령의 시험대"

ⓒ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 갈무리
ⓒ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 갈무리

워싱턴포스트(WP)는 "핼러윈 비극은 인기없는 지도자의 시험대"라고 보도했다.

WP는 "희생자가 주로 젊은 층인 악몽 같은 재난으로 우파지도자의 인기가 하락하고 있다"는 불름버그의 기사를 그대로 실었다.

WP는 "핼러윈 군중의 운집에서 150명 이상이 숨진 것, 주로 고등학생이던 300여 명이 2014년 세월호 침몰로 숨진 것의 유사성을 찾는 게 어렵지 않다"고 주장하며 "두 사례 모두 관료집단이 젊은이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피할 수 있던 비극적 사건을 거의 상상할 수 없는 규모로 불렀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뒤 정치적 위기에 몰리게 되는 과정도 언급했다.

WP는 "박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에 대해 개인적 책임은 불분명한 상태였지만 박 대통령의 감정적으로 동떨어진 대응에 많은 이들이 등을 돌리게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WP는 "대응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핵심 의문은 사고 뒤 대국민 브리핑 전까지 중대한 7시간 동안 행방의 수수께끼였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 애도기간을 선포하고 진상조사를 위한 광범위한 태스크포스를 구성하는 등 박 전 대통령보다 빨리 움직이기는 했지만, 시민들은 젊은이들이 희생된 사고에 특히 예민하다고 전했다.

◆ 이란 외교부 대변인, "한국 정부가 관리했어야"

이태원 참사 나흘째인 1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에 설치된 분향소에 시민들이 추모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이태원 참사 나흘째인 1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에 설치된 분향소에 시민들이 추모를 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서울 이태원 참사로 다수의 외국인이 희생된 가운데,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온 이란이 한국 정부의 현장 관리 부실을 지적했다.

나세르 칸아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정례 기자회견에서 “불행히도 이번 사고로 이란인 5명이 목숨을 잃었다”며 “한국 정부가 관리 방법을 알았다면 행사 관리를 해야 했다”고 말했다.

칸아니 대변인은 “한국 정부가 체계적인 계획으로 부상자 문제를 비롯한 상황 대응을 할 수 있기 바란다”며 “이란은 인도적 차원에서의 애도 뜻을 전한다”고 덧붙였다.

1일 기준 지금까지 확인된 사고 사망자는 155명으로 외국인은 14개국 출신 26명이다. 이란인은 5명으로 가장 많다. 이들 중 4명은 박사과정생이었고 다른 1명은 한국에 온 지 두 달도 채 안 된 어학연수생으로 알려졌다.

칸아니 대변인은 이날 최근 한국 정부가 이란 내 ‘히잡 시위’로 인한 유혈 사태를 우려한데 대해서도 비난했다.

앞서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달 28일 “정부는 이란 내 여성 인권 상황 및 강경한 시위 진압이 장기화하고 있는 데 대해 우려하고 있으며 관련 국제사회 대응에 동참하고 있다”고 밝혔다.

칸아니 대변인은 “이는 한국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압력을 받은 결과”라며 “한국은 이란 내부 문제에 대해 비건설적이고 무책임한 입장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 외교부는 유감을 나타냈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1일 나세르 칸아니 대변인의 발언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 개인적 언급이 기사화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우리 측은 외교 경로를 통해 이란 외교부 대변인의 발언에 대해 강하게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이런 언급은 결코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며 유감을 표했다"며 "향후 각별한 주의 및 재발 방지를 강력히 요청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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