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여성이 겪는 참상 고발해온
러시아 여성인권운동가·언론인
나스차 크라실니코바러시아
26일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컨퍼런스서 연설

“알려진 전시성폭력 사건만 수백 건...
러시아군, 여아·노인까지 집단 성폭행
러시아 내 여성폭력도 심각하나 정의구현 어려워
용감하게 싸우는 우크라 여성들도 많아”

러시아 여성인권운동가이자 언론인 나스차 크라실니코바가 26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과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주최로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개막한 ‘2022년 여성인권과 평화 국제 컨퍼런스’에서 특별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유튜브 영상 캡처
러시아 여성인권운동가이자 언론인 나스차 크라실니코바가 26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과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주최로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개막한 ‘2022년 여성인권과 평화 국제 컨퍼런스’에서 특별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유튜브 영상 캡처

“러시아는 성폭력을 전쟁 무기로 사용합니다. 여성과 약자들에게 성폭력을 매개로 두려움을 심어주려 합니다.” 러시아 여성인권운동가이자 러시아군이 저지른 전시 성폭력을 고발해온 언론인 나스차 크라실니코바는 말했다. 

그는 26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과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주최로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개막한 ‘2022년 여성인권과 평화 국제 컨퍼런스’에서 특별 기조연설을 했다. 

크라실니코바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쟁 반대 목소리를 높여왔다. 신변의 위협을 느껴 지난 3월 가족들과 러시아를 떠나 유럽으로 망명했다. 전쟁 이전부터 러시아의 일상 속 성차별·성폭력 관련 다큐멘터리, 팟캐스트 시리즈 등을 만들어왔고, 전쟁 후로는 팟캐스트 ‘도적의 딸(дочь разбойника)’과 러시아 독립언론 ‘메두사’의 뉴스레터 ‘KIT’ 등을 통해 우크라이나 여성들이 겪는 전쟁의 참상을 전하고 있다. 또 블로그를 통해 우크라이나 여성들과 함께 전쟁의 경험을 나누고 있다. 

'우크라이나 평화를 위해.' 참여연대, 전쟁없는세상 등 392개 시민사회단체가 2월 28일 서울 중구 주한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우크라이나 침공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마친 뒤 손팻말을 들고 있다. ⓒ홍수형 기자
'우크라이나 평화를 위해.' 참여연대, 전쟁없는세상 등 392개 시민사회단체가 2월 28일 서울 중구 주한 러시아대사관 앞에서 우크라이나 침공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마친 뒤 손팻말을 들고 있다. ⓒ홍수형 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8개월째에 접어들었다. 러시아군은 점령지에서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을 가두고,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여성과 아이, 노인들을 집단 강간하고 살해하기까지 했다는 고발이 이어졌다. 전시 성폭력은 전쟁범죄로 제네바 협약 제27조에 의해 금지돼 있다.

크라실니코바는 이날 연설에서 “인권운동가들이 3월 초부터 파악한 성폭력 사건은 수십~수백건에 달한다. 피해 여성들이 모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아니라서 정확한 피해 규모 확인도 어렵다”고 말했다.

“폭력은 성적 만족보다도 타인의 삶을 통제하려는 욕구, 권력 욕구에서 나온다”고도 지적했다. “러시아군이 집단적으로 자행하는 전시 성폭력은 가해자들의 연대를 도모하고 책임을 덜려는 방법이다. ‘남들도 다 하는데 설마 죄가 되겠냐’는 식이다. 그러나 사람을 실수로 죽일 수는 있지만 실수로 강간할 수는 없다.”

그는 러시아가 벌이는 전시 성폭력이 “장기적 국가 정책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전쟁’ 대신 ‘특별군사작전’이라는 용어를 고집한다. 전쟁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탄압하고 ‘가스라이팅’한다. 러시아 당국의 정치적 전략이다. 자유를 주겠다면서 성폭력을 저지르고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또 “러시아 여성들도 자국 내 젠더폭력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며 “러시아 유명 국립대에서 수십 년간 미성년자를 노린 성범죄가 벌어진 사실이 최근에야 조사로 드러났다, 지식인·공무원 등이 가해자로 지목됐다. 러시아 법은 이러한 행위를 성범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정의 구현은 쉽지 않다. 이러한 현실의 연장선에서 끔찍한 전쟁도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크라실니코바는 “전시성폭력 생존자들을 어떤 식으로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전시성폭력 피해자들을 ‘부역자’라는 식으로 비난했던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 남기로 한 여성들의 이야기도 들려줬다. “전쟁을 얘기할 때 우리는 남성의 영웅심에 대해 주로 이야기하지만, 여성들도 남성들만큼이나 용감하게 싸운다. 자세한 것은 군사기밀이라서 알 수 없으나 우크라이나군 전투병과 중 여군이 3만명 이상이고, 전체 장병 중 여성이 약 15%이며, 국방부 관료 등까지 합하면 우크라이나 군 관계자 중 여성이 25% 이상일 것이다.”

피난길에 오른 우크라이나 여성들이 처한 현실은 엄혹하다. “유럽 곳곳이 우크라이나 난민들로 넘쳐난다. 누구도 이들에게 체계적인 지원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고, 생계·주거·돌봄 등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많은 우크라이나 여성들은 자신이 구출된 데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안전을 찾아서 온 곳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착취와 성폭력을 겪고 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