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주의 다른 정치⑬]

15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195개의 여성·시민·노동·사회단체가 여성가족부 폐지 규탄 집중 집회를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195개의 여성·시민·노동·사회단체가 주최한 집회에서 2000여명의 시민들이 윤석열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를 담은 정부 조직개편안을 규탄했다. ⓒ홍수형 기자

정부 조직은 언제든 바꿀 수 있다. 정책의 효과나 효율성 측면에서 혹은 새로운 현안이 등장할 경우,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거나 통폐합할 수도 있고, 또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다. 특히 새 정부가 들어설 때에는 소위 국정철학이라는 이름하에 대대적인 정부의 조직개편들이 있어 왔다. 여성가족부도 2001년 여성부로 탄생한 이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확대’와 ‘축소’, ‘통폐합’이라는 논란 속에서 롤러코스터(roller coaster)의 역사를 겪어야 했다. 여성(가족)부의 폐지나 통폐합을 주장한 정부가 윤석열 정부가 처음도 아니다.

그러나 지난 20여년 동안 여성(가족)부의 폐지를 둘러싼 논란은 오히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 폭력의 현주소를 환기시켰고, 역설적으로 여성가족부의 존재 이유만을 확인시켜줄 뿐이었다. 세계 성격차 최하위, 남녀임금격차 세계 1위, 전대미문의 텔레그램n번방사건, 날로 증가하고 있는 온라인 기반 스토킹이나 디지털 성범죄, 여성혐오 등 모든 객관적 수치와 자료들은 여성가족부의 폐지가 아니라 여성가족부의 권한 확대와 강화의 필요성을 가리키고 있다.

국민의힘이 발의한 정부조직 개편안(10월7일)으로는 그들이 강조하는 실질적 ‘양성’평등조차도 실현하기 어렵다. 여성가족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성별에 따른 차별과 불평등 해소, 폭력철폐 및 여성을 포함한 청소년, 가족의 권익 보호와 향상을 위한 사업들은 업무의 특성상 정부 조직 간의 정책조정과 이행점검 등을 통한 타 부처에 대한 개입과 관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일은 현재의 여성가족부 권한으로도 부족한 실정인데 보건복지부의 일개 본부(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의 권한으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윤석열 정부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단지 이런 개편안의 부실함에 있지 않다. 물론 부실함만으로도 여성가족부의 폐지를 막아야 할 이유가 충분하지만, 부실하고 부족해도 5년만 참자는 심정으로 용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심정으로도 용인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윤석열 정부에서 주장하는 ‘여성가족부 폐지’는 정부 부처인 ‘여성가족부’의 폐지를 의미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월 7일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가 페이스북에 올린 <여성가족부폐지>라는 일곱 글자로 시작된 이 논란은 ‘여성가족부’를 청년이 생각하는 불공정의 상징으로 낙인찍었고 페미니즘을 여성우월주의로 오독 왜곡시켰다. 반페미니즘(반여성주의)가 공정으로 둔갑하여 차별과 혐오적 발언을 정당화했다. 선거가 끝나고 정부 출범 5개월이나 지났는데도 대통령의 입을 통해 나오는 ‘여성가족부 폐지’는 청년 남성들의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어디에도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은 보이지 않는다.

‘여성가족부 폐지’는 ‘공정’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서 차별과 불평등을 은폐, 왜곡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조롱과 비하를 일삼는 차별주의자들에게 승리의 신호이자 반인권적 언행에 대한 면죄부나 다름없다.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는 더 이상 정부 부처인 여성가족부의 실효성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과 위협의 슬로건이 되었다.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가 곧 차별주의 옹호의 대체어가 되어버린 이 기이한 상황에서 ‘여성가족부’의 폐지를 통해 실질적 양성평등을 실현하겠다는 부실한 개편안은 이러한 상황을 방조하는 무책임한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여성가족부 폐지’안을 철회해야 한다. 이미 국제사회는 ‘여성가족부 폐지’ 개편안을 “반페미니스트를 위한 선물”이라 기사화하며 조롱하고 있다. 국민을 더 이상 부끄럽게 만들지 말기를 바란다. 또한 169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은 민주주의의 전당인 의회에서 반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역사적 실책이 일어나지 않도록 ‘여성가족부폐지’를 반드시 막아야 할 것이다. 진짜로 이름값을 하길 바란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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