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하영의 침묵을 깨고]

서울 이태원의 한 주점에서 판매하는 메뉴 중 ‘흑형치킨’, ‘흑형떡볶이’, ‘흑형계란말이’. 이를 두고 온라인에서 인종차별이라는 문제 제기가 쏟아지기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서울 이태원의 한 주점에서 판매하는 메뉴 중 ‘흑형치킨’, ‘흑형떡볶이’, ‘흑형계란말이’. 이를 두고 온라인에서 인종차별이라는 문제 제기가 쏟아지기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첫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우리 수업에서는 다문화 사회도 다루고, 동성애와 트랜스젠더도 다룰 것이다, 라고 일부러 ‘매운맛’을 보게 했다. 긴장되는 첫 주 수강정정 기간,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생존’해있었다. 본격적인 첫 수업은 한 학기 동안 다룰 장애, 젠더, 빈곤, 인종을 관통하는 ‘차이’, ‘차별’, ‘혐오’라는 단어들을 새롭게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차이와 차별 구분하기로 시작해 좀 더 실생활로 적용 범위를 넓혀갔다. 장애인에게는 장애인만의 직업이 있다, 는 식의 명제에는 이제는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차별이요”라고 답할 수 있게 됐다. 이제 학생들에게 변화구를 던질 순서가 됐다.

먼저 학생들에게 인종차별, 그중 흑인에 대한 차별의 역사가 얼마나 길며 놀랍게도 얼마나 최근까지(혹은 지금까지) 자행돼왔는지를 알려줬다. 학생들도 2012년부터 들불처럼 퍼져 국내 해시태그 운동으로 이어진 ‘Black Lives Matter’(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BLM)에 대해서는 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인종차별’이 내가 아는 유명 농구선수, 래퍼, 영화배우에게도 피부색 하나로 적용된다는 것으로 연결하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오히려 “어린 시절부터 흑인을, 유색인종을 ‘차별하면 안 된다’(금지)를 접했던 친구들은 또 다른 의미로 상상력이 잠금 상태였다. 애초에 차별이 없는 상태를 상상해보지 못했다는 말이다. 몇몇은 반문하기도 했다. “우리가 백인도 아닌데 흑인을 차별할 일이 뭐가 있나요?”

다음 사례를 소개했다. 2014년 이태원의 한 주점 신메뉴 이름을 두고 인종차별 논란이 빚어졌다. 간장 양념으로 검게 색을 낸 치킨(닭튀김)에 ‘흑형치킨’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아프리카계 미국인 누리꾼이 트위터에서 공개적으로 한국인들의 인종차별 사례로 들어 비판했다. 반박하는 쪽의 주장은 ‘흑인을 형으로 높여주는 말’인데 뭐가 나쁘냐, 주로 온라인상에서 뛰어난 농구선수나 R&B, 랩 등 흑인음악에 재능이 뛰어난 아프리카계를 향해 존경과 인정을 담아 쓰는 말이니 결코 차별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외워서 하는 정의로움’은 생명력이 없다

학생들에게 이 논란에서 나름의 답을 찾아보길 청했다. 차별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내가 주점 사장이라면, 치킨의 새 메뉴명을 뭐라고 붙일지 상상해보자고. 내가 생각하기에 차별이 아니라면, ‘프로불편러’들을 향해 뭐라고 주장할 것인지도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우리는 칭찬이라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이 기분 나쁘다면 쓰지 말아야 한다”, “동양인을 착한바나나라고 부르면 착하다는 말보다 바나나라는 말이 더 기분 나쁜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상대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중점을 둬 생각하는 학생이 많았다. “요즘 크레파스도 살색이라는 단어를 안 쓰고 살구색이라고 한다”, “수업을 듣고 찾아보니까 흑형이라는 단어를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인종차별적 단어로 지정했다고 한다” 등 적극적으로 여러 다른 사례를 찾아서 제시한 경우도 있었다.

다른 메뉴명을 제시해보라고 하니 통통 튀는 아이디어가 많았다. 검은색이면서 고급스러움을 살려서 “블랙라벨치킨”을 제안한 학생도 많았고, 색감에 집중하면서 반전 재미를 추구하는 “오골계치킨”, “흑계란말이”, “석탄치킨” 같은 기발한 대안을 제시한 학생들도 있었다.

재미있었던 것은, ‘흑형치킨이라는 메뉴명 자체는 차별이 아니’라던 학생들조차도 새로운 메뉴명 아이디어를 내는 데 동참했다는 것이다. 모두 비슷한 머리모양, 비슷한 표정으로 튀지 않으려고 애써 눈치를 살피던 학생들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차별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던 학생 중에는 “차별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음식 앞에 단어가 붙으면 존중하거나 높이는 느낌은 들지 않아서 가치를 낮게 판단하는 느낌을 줄 수 있다”며 메뉴명을 바꾸자는 의견도 있었다.

정의로운 정답을 알려주기는 잠시 미뤄둔 채, 작지만 새로운 자기만의 답을 찾아보도록 기회를 주자, 학생들은 훨씬 더 다채롭게 자신의 다름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어떤 것이 나쁜지를 알려주고 금지하는 접근도 중요하지만, 교과서로 배운, 외워서 하는 행동들, 조심스러움은 나와 우리의 다름을 긍정하는 상상력을 잃은 정의로움으로 왜곡돼 나타났다.

다른 세상을 살아보려면, 상상해보자

학생들은 다르게 살기를 두려워한다. 나의 다름, 나의 ‘차이’가 누군가가 날 차별할 이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다름과 우리 안의 다름을 ‘차이’로 인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오히려 나와 동떨어진 세계의 차별은 명징하게 구분한다. ‘인종차별은 나빠’, ‘장애인을 차별해선 안 돼’ 같이 ‘외워서 하는 정의로움’이 갖는 한계다. 생명력을 잃은 교과서 속 정의로움보다 더 가까운 것은, 온라인 ‘짤방’과 밈, ‘숏폼’ 콘텐츠(단시간에 소비할 수 있는 짧은 영상 콘텐츠)에 넘쳐나는 차별 표현, 고정관념의 재생산이다.

학생들에게 ‘그래도 이건 차별까지는 아닌 것 같아’라고 자유롭게 이야기하도록 했더니, 학생들은 정의로운 쪽을 선택하거나 가치를 판단하기보다는 ‘다른 답을 찾아보기’를 택했다. 다른 삶, ‘흑형치킨’을 대신할 ‘신박한 치킨 메뉴 이름’을 상상해 보는 것이 갖는 힘이 여기에 있다.

신하영 세명대 교양대학 교수 ⓒ신하영 교수 제공
신하영 세명대 교양대학 교수 ⓒ신하영 교수 제공

신하영 교수가 2021년부터 세명대 정규 교과목으로 개발해 강의 중인 ‘현대사회의 다양성과 공존’ 수업의 주요 내용과, 학생들이 참여한 토론에서 나온 생생한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학생들과의 대화 내용은 연구와 저술 목적으로 익명 처리, 오탈자 교정을 포함한 각색을 거쳐 동의를 얻어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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