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성매매 조장·불법적 인권 침해 인정
여성단체, 국회·지자체에 후속 지원 방안 촉구

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한국 내 기지촌 미군위안부 국가손해배상 청구소송 판결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이 '기지촌 미군위안부에 대해 국가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 환영'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9월 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한국 내 기지촌 미군위안부 국가손해배상 청구소송 판결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이 '기지촌 미군위안부에 대해 국가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 환영'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9월 29일 대법원은 기지촌 미군‘위안부’에 국가 책임을 인정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여성 인권사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판결이다. 대법원의 판결은 국가가 성매매를 조장하고, 강제적으로 성병을 관리했음을 최종 확인했다.

이번 판결은 8년의 싸움이었다. 2014년 6월 25일 122명의 피해 생존 여성들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고 결의하고 국가를 상대로 ‘기지촌 미군위안부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시작했다. 소송 제기 후 2년 7개월 만인 2017년 1월 20일, 1심 재판부는 미군‘위안부’ 피해 여성에게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57명의 여성들을 성병치료소인 낙검자 수용소에 격리수용한 행위는 위법하다고 판단해 손해배상 청구의 일부를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었다. 이는 국가가 기지촌에서의 성매매를 조장·권유하였다는 점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으나, 기지촌 ‘위안부’들의 존재와 그들의 인권침해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2018년 2월 8일 2심은 1심에서 더 나아가 국가가 적극적·능동적으로 기지촌을 운영·관리한 주체로, 원고들의 인격권과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했음을 인정하며 원고 전원에게 손해배상 위자료를 지급할 것을 판결했다. 4년이 흘러 2022년 9월 29일,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결과는 상고 기각, 원고 일부 승소한 원심판결 유지. 국가가 적극적으로 기지촌을 조성한 것을 인정하고 강제적 성병관리의 위법 행위를 자행했음을 확정했다.

의정부 기지촌 ©여담톡톡
의정부에 위치한 기지촌 ©여담톡톡·여성신문

기지촌 여성들과 함께 싸워온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이번 판결의 의미에 대해 “국가 폭력에 공소시효가 없고,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일본군‘위안부’ 문제에서도 큰 시사점이 됐다”며 “한국은 자국의 여성들에게 가한 성착취 문제에 배상을 하는데, 일본은 왜 배상하지 않느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피해자들이 소송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내가 잘못해서 그렇구나’라고 생각했다가 국가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고 성장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또 다른 시작이다. 안김정애 기지촌여성인권연대 공동대표는 “가장 먼저 국가의 공식적인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19, 20, 21대까지 계류 중인 국회 특별법의 제정이 중요하다. 경기도나 다른 지자체에서 상위법이 없다는 핑계를 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국회에는 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 및 피해자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이 계류 중이다. 2020년 발의됐지만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법안심사소위도 개최하지 못했다. 또한 안김정애 공동대표는 경기도 기지촌여성지원위원회의 정상화를 촉구했다. 경기도에서는 ‘경기도 기지촌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2020년 4월 통과시켰지만, 상위법 부재와 대법원 최종판결 부재 등을 이유로 지원을 미뤄왔다.

안김정애 공동대표는 미국 정부를 대상으로 한 국가 소송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미군 차원에서 성병치료약을 대량으로 들여와서 쓰기도 하고, 미군 헌병이 낙검 대상 여성을 검진하는 과정에 관여하기도 했다”며 “미국 정부에도 분명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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