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위한 레시피'는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와 함께 살아가는 남편들의 생활이야기입니다. 레시피라고 했지만 요리를 목표로 하지는 않습니다. 삶을 요리하는 레시피라는 뜻입니다. "아, 이렇게 사는 사람들, 부부도 있구나"라며 필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편집자 주

스페인 론다에 위치한 증기탕 내부에서 옛 스페인의 영화를 회상하는 아내의 모습.  ⓒ오재철 작가
스페인 론다에 위치한 증기탕 내부에서 옛 스페인의 영화를 회상하는 아내의 모습. ⓒ오재철 작가

오랜 시간동안 여행을 못했다.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이 선뜻 내키지 않는 코로나 시대부터 이니 3년 여간 해외 여행을 못한 셈이다. 아내는 답답해한다. 여행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상황을 참고 견디니 그럴만도 하다. 여행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였을까.

아내를 위해 저녁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그리고 아내를 위한 여행을 준비해 본다. 실력없는 요리사가 준비한 저녁 메뉴는 스페인의 전통음식인 빠에야(paella). 빠에야는 밑이 넓고 깊이가 깊지 않은 프라이팬으로 만드는 일종의 볶음밥이다. 요리를 잘하냐고?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형편없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져본다. 글과 사진으로 설명하는 블로그부터 친절한 목소리로 설명까지 해주는 요리 영상도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따라하기 쉬울 것 같은 것을 골랐다. 영상에서 이야기해 준 재료들을 준비해 본다. 오징어, 새우, 버섯···, 쉬운 영상을 골랐는데도 음식을 만드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고개를 몇 번이나 갸우뚱한 뒤에야 빠에야의 형상을 갖춘 음식이 완성 되었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빠에야를 올려놓은 식탁 테이블 위에 스페인에서 샀던 기념품들을 올려놓았다. 마트에서 산 1만원 대의 스페인 와인도 테이블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스페인 여행 중에 보았던 플라멩코. 기타 선율이 식탁 위의 촛불을 따라 일렁인다.

주방으로 들어오는 아내의 입가에 커다란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김이 올라오는 빠에야를 한 입 베어 문다. 나도 기대에 찼고, 아내도 기대에 찼다. 그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않았다.

‘그런데 맛은 없다. 그래도 좋아. 스페인에서 여행하고 있는 것같아.’

맛없는 음식에도 아내는 미소를 잃지 않고 있다. 그래 음식 맛이 뭐 중요하랴. 지금 이렇게 마주보며 함께 나눌 수 있는 우리의 여행 추억이 있는데 말이다. 그렇게 우리의 스페인 여행이 시작되었다. 와인 한 잔에 목을 축이며, 우리의 여행이 새겨진 기념품들을 들여다보며, 스페인 여행 중 있었던 일들을 하나둘 나누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여행은 여행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나는 지금 최고로 아름다운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다.창으로 들어오는 가을 바람이 스페인의 노천 카페에서 맞았던 밤바람처럼 선선하게 우리의 대화를 타고 흐른다. 그렇게 가을 밤이 깊어간다.

내일은... 스위스를 여행해 볼까? 

오재철 작가
오재철 여행·사진작가.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해 상업사진가로 일한 오 작가는 저서 『함께, 다시. 유럽』, 『꿈꾸는 여행자의 그곳, 남미』, 『우리 다시 어딘가에서』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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