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과학]
“바이러스명 바꾸는 노력 넘어
편견, 혐오, 불평등 깨부술 수 있는
책임감이 모두에게 필요“

원숭이 두창은 전 세계에서 유행하기 전까지 선진국의 시야에 들지 않던 바이러스다.  ⓒShutterstock
원숭이 두창은 전 세계에서 유행하기 전까지 선진국의 시야에 들지 않던 바이러스다. ⓒShutterstock

고등학생들과의 세미나에서 이런 질문을 받은 적 있다. “그동안 수많은 바이러스 유행이 있었는데, 백신 개발이 중단된 것이 대부분이라고 하셨잖아요? 백신을 계속 개발하기 위해 어떤 일이 필요할까요?”

필자의 대답은 이랬다. “슬프지만, 그리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지만,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이, 특히 선진국의 많은 사람들이 그 바이러스에 걸리면 됩니다. 그러면, 선진국과 제약회사와 수많은 기구들이 백신 개발에 돈을 쏟아부을 겁니다. 코로나19처럼요.”

원숭이 두창도 좋은 예다. 전 세계에서 유행하기 전까지 선진국의 시야에 들지 않던 바이러스다. 최근 관련 연구가 급속도로 진행됐다. 기존의 동물-인간 간 원숭이 두창 바이러스에 비해, 인간-인간 간 유행하는 현재의 원숭이 두창 바이러스는 2018년 경부터 사람들에게 더 잘 전파할 수 있도록 변이가 일어났다는 발표가 나왔다.

아쉬운 것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아프리카 풍토병으로 치부되던 시절의 유전학적 데이터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코로나19 변이를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 국가의 경우 수만 달러에 해당하는 유전자 분석기계나 한 번에 수천 달러가 들어가는 분석 시험을 수행하기에는 물질적·인적 자원이 부족하다. 데이터와 자원의 불평등은 원숭이 두창의 ‘잃어버린 퍼즐’이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에볼라가 그랬고, 에이즈가 그랬고, 코로나19가 그랬듯이 원숭이 두창은 질병이 인류에게 주는 물리적인 고통과 더불어 질병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비난의 무게를 실어 혐오와 낙인이라는 정신적인 고통을 남겼다.

2022년 유럽으로 넓게 퍼진 원숭이 두창에 대한 서구 미디어의 이미지들은 한결같이 검은 피부의 원숭이 두창 병변이었다. 원숭이와 흑인을 연관시키는 고질적인 인종차별 클리셰에 검은 피부의 원숭이 두창의 이미지가 포개져 인터넷을 통해 삽시간에 퍼졌다. 지난 에볼라 유행 때와 마찬가지로 원숭이 두창에 대한 혐오는 흑인들에게 낙인을 찍었다.

원숭이 두창은 호흡기 분비물, 감염된 사람의 피부 병변 혹은 오염된 물체(침구, 의류 등)와의 긴밀한 접촉으로 인해 전파된다. 그러나 유럽에서 유행이 시작될 당시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발생했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은 원숭이 두창이 성소수자만 감염시키는 질병으로 착각하고 비난의 눈길을 보냈다.

미국 질병관리예방센터(CDC)의 자료에 의하면 2022년 5월 기준 원숭이 두창 확진자의 약 70%가 백인이었던 반면, 최근에는 흑인이 41%, 히스패닉/라틴그룹이 27%, 백인이 26%였다. 이는 원숭이 두창의 예방 및 치료 목적으로 사용되는 천연두 백신과 의료 접근성과 관계가 있다. 흑인을 비뚤게 바라보는 시각이 흑인들을 더 두렵게 만들었다.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백신 접종 캠페인이 진행됐음에도, 성소수자들이 백신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막아 버렸다.

다행히도 국제보건기구(WHO)와 과학계의 노력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WHO는 지난 8월 원숭이 두창이라는 이름으로 인해 아프리카의 특정 국가들, 인종, 성적 지향 등으로 전염병의 공중보건의 위기가 심화될 수 있음을 경고하며 새로운 질병명을 공개 협의하겠다고 발표했다. WHO는 바이러스학자, 공중보건학자 등 전문가 위원회를 만들어서 먼저 원숭이 두창 바이러스의 분기군의 명명을 바꿨다. 기존의 콩고분지 분기군을 I 형, 서아프리카 분기군을 IIa, 2017년 이후 인간에게 감염되었던 원숭이 두창 바이러스와 현재 유행하고 있는 분기군을 IIb로 지정했다. 유전학적 사실을 통해 혐오와 낙인을 배제하고 결코 원숭이 두창이 아프리카만만이 아닌 전 세계의 문제임을 상기시킬 수 있는 과학적 움직임이었다. 현재 국제바이러스분류위원회(ICTV)에서도 원숭이 두창 바이러스의 이름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지구 반대편의 혹은 다른 대륙의 질병은 이젠 더 이상 남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이 되었다. 인류는 바이러스와 함께 지구를 공유하고 있다. 바이러스의 이름을 바꾸는 노력을 넘어, 낙인, 편견, 혐오, 불평등을 깨부술 수 있는 책임감은 지구를 공유하고 있는 모두에게 필요하다.

문성실 미생물학 박사 ⓒ문성실 박사 제공
문성실 미생물학 박사 ⓒ문성실 박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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