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가부장적 지방예술계에 성평등 메시지를 던지다
[인터뷰] 가부장적 지방예술계에 성평등 메시지를 던지다
  • 김민주 기자
  • 승인 2022.09.22 15:20
  • 수정 2022-10-04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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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희 부산문화예술계 반성폭력연대 대표
2022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양성평등문화지원상 수상
송진희 부산문화예술계 반성폭력연대 대표 ⓒ본인 제공
송진희 부산문화예술계 반성폭력연대 대표 ⓒ본인 제공

송진희 부산문화예술계 반성폭력연대 대표는 여성 예술인들과 함께 부산문화예술계 반성폭력 연대를 결성해 폐쇄적이고 가부장적인 지역 문화예술계에서 반성폭력에 대한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다. 부산에서 최초로 #부산문화예술계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을 시작했으며, ‘모두를 위한 반성매매 전시’ ‘문화예술계 성폭력 회복 전시’ 등에 참여했다.

또한 성희롱·성폭력 대응을 위한 『지지자를 위한 대응 키트』, 부산문화예술계 미투운동 투쟁기 『그건 예술이 아니라 성폭력입니다』 등을 집필하며, 전시를 넘어 출판을 통해 성평등 가치를 전했다. 현재도 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의 성평등 정책분과위원활동과 다양한 분야에서 자문하고 있다.

- 2022년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양성평등문화지원상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개인적으로는 스스로 제 활동에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이 상이 ‘그동안 수고했어. 앞으로 계속해봐’라는 응원으로 다가왔는데, 공적인 의미가 중요하겠다고도 생각해요. 저를 비롯해서 다른 분들께도 그런 응원이 됐으면 좋겠어요.

- 부산에서 최초로 #부산문화예술계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을 시작하시고 부산문화예술계 반성폭력연대를 결성하시는 등 부산문화예술계에서 꾸준히 반성폭력에 목소리를 내오셨습니다. 이 사안에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16년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두 사건이 있었어요.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과 00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죠.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이 여성들이 겪는 차별과 폭력을 자각하고 분노하는 계기가 되었다면 00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은 분노를 넘어 행동하는 계기가 됐어요. 제가 일하는 예술 현장에서 발생한 일이라 가만히 있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있었고 먼저 용기를 내신 분들의 목소리 옆에 함께 있고 싶었어요.

당시 서울 중심으로 운동이 전개되다 보니 제가 활동하는 부산문화예술계는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어요. 예술계의 가부장적인 분위기와 카르텔 속에서 여성 예술인들이 겪었던 성차별과 성폭력을 말하지 못하는 억압이 지역은 더욱 심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지역의 현실을 깨보자는 취지로 작가들과 뜻을 모아서 부산문화예술계 성폭력 문제를 전면으로 다루는 SNS를 만들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인 마음의 변화와 용기도 있었지만, 페미니즘 리부트라는 동시대적인 움직임과 가부장제에 맞서는 페미니스트들의 무브먼트가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어요.

- 반성폭력의 목소리를 낼 방법에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할 텐데, 특히 문화예술이라는 수단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반성폭력의 메시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나누는 게 일상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부분에는 기획이 필요하고 그걸 잘 매개할 수 있는 방식 중 하나가 문화 예술이라고 봐요. 문화예술이라고 했을 때 전시나 공연 등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커뮤니티를 매개하는 현장을 만드는 포괄적인 의미로 생각하면 좋을 거 같아요. 이런 활동들이 성평등에 관심이 있지만 각자의 일이 있기 때문에 현장에 모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때로는 보이지 않는 현실을 예술을 통해서 만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2017년 연대에서 진행했던 <락페미> 무브먼트의 경우, 록 페스티벌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이 심각한 문제로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었고, 성평등한 축제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사람 중에 뜻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모으고, 메시지가 담긴 티셔츠를 같이 입고 공연을 즐겼고, 이 자체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효과가 있었어요.

- 문화예술계에서 반성폭력의 목소리를 내오시면서, 많은 반발을 겪으셨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반발에도 꾸준히 반성폭력에 목소리를 내오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역이라는 공동체의 가부장성, 폐쇄성이 반성폭력 운동을 하면서 가장 해체하기 어려운 지점이에요. 선생님과 선배의 관계망보다 형, 아우라는 친족적 관계망이 뿌리 깊고 공생 관계가 끈끈하기 때문에 성폭력 가해를 해도 반성과 성찰의 과정 없이 예술 현장으로 복귀해서 일하는 게 어렵지 않죠. 지역 문화예술계는 법과 제도적 제제보다 공동체의 파워가 더 큰 곳이에요.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형태가 되풀이되고 학습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걸 멈추게 하는 주변인의 역할이 중요해요. 저도 그 주변인의 한 명으로서 단단하게 서있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요. 지역에서 반성폭력 활동을 계속해나가는 것이 오롯이 제힘만으로는 오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거 같아요. 누군가 또 용기 내서 사건을 공론화하고, 그에 함께 연대하고 설치고 말하고 싸우는 사람들이 같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에요.

부산문화예술계 반성폭력 운동 기록 출판물(사진=송진희 대표 제공)
부산문화예술계 반성폭력 운동 기록 출판물(사진=송진희 대표 제공)

-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으시다면요?

부산에서 진행했던 문화예술계 반성폭력 운동 5년의 활동을 기록을 출판물과 온라인 아카이브 전시를 기획, 제작하면서 스스로 뿌듯함을 느꼈어요. 조직적이지 않은 여성 운동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 주체들이 흩어지고 기록도 잘 남지 않는 취약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었어요. ‘우리가 우리를 기록하지 않으면 문화예술계 반성폭력 운동이 여성 작가들 개개인의 고군분투와 추억으로 남을 수 있겠구나’ 싶었거든요. 운동의 현장을 남기고, 역사를 쓰는 일은 여성 운동을 공적인 장소로 옮겨놓는 일이자 다음 사람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남기는 일이기도 해요. 반성폭력 활동으로 지쳐있었던 시기여서 힘들었는데 끝까지 의지를 낼 수 있어서 후회가 없어요. 한 번씩 온라인 아카이브 페이지에 찾아와 주세요. wrwr-project.com

- 사회적 문제에 대한 시각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작가 송진희의 예술세계도 궁금합니다. 어떤 ‘예술관’을 갖고 계신가요?

작가로서 모두가 인정하는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사실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작가와 작품에 집중하기보다는 시대적 변화와 개인의 삶 사이에 충돌하는 여러 이슈와 현장에 더 관심이 가요. 매끈한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정말 많은데, 그 일들을 드러내지 않으면 세상에 없는 일이 되거든요. 그걸 찾아내고 표현하고 이야기하고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기획을 하고 예술을 하는 거 같아요. 내가 잘 살아갈 수 있는 예술, 누군가를 잘 살리는 예술. 그게 저에게는 중요한 거 같아요.

'완월동편지'(사진=송진희 대표 제공)
'완월동편지'(사진=송진희 대표 제공)

- 개인 작품 중 하나만 소개해주신다면요?

미술 작가로서는 기억에 남는 작업이 <완월동편지>에요. 부산의 성매매 집결지 완월동의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와 장소를 기록한 일곱 장의 편지를 외부의 타인들에게 발신하고, 답장을 받는 과정이 담긴 작업이었어요. 여성에 대한 혐오, 낙인으로 말해질 수 없는 두터운 경계면을 편지라는 일상적 형식을 통해서 조금씩 접촉하고 만나는 시도를 하면서, 두터운 경계가 개인의 일상 면과 겹치는 경험을 하는 것이었죠.

- 송진희 대표님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도 문화예술계 내에 성폭력은 여전히 만연해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을까요?

법과 제도적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 제도를 예술 현장에 적용시키고 성평등한 분위기를 지향하는 예술계 종사자들의 역할이 정말 중요해요. 공기를 바꿔야 해요. 결정권과 지위를 가지고 있는 예술계 종사자들이 그 역할을 해줘야한다고 생각해요.

- 현재 계획하고 있는 일이나 목표는 무엇인가요?

현재는 올해 젠더 폭력의 공간을 기록한 협업 전시를 준비 중에 있어요. 그 일이 끝나면 미뤄둔 과제를 들여다봐야 할 거 같아요.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 것들이 참 많은데 그걸 언어화하고 체계화할 시간이 없었어요. 그 생각을 좀 더 뾰족하게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문화예술을 기획하고 작업해보고 싶어요. 언젠가 세상에 내어놓을 수 있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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