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5월 조사개시 이후 191명 1차 진실규명 결정
1975년~1986년까지 3만8000명 입소…657명 사망
"강제노역·폭행·성폭력·사망 등 인간존엄성 침해"
"국가는 피해자와 유가족에 공식적으로 사과" 권고

부산 주례동의 옛 형제복지원 전경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부산 주례동의 옛 형제복지원 전경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대규모 인권침해 의혹이 제기돼 온 형제복지원과 관련해 총 657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진실화해위원회가 발표했다.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24일 서울 중구 남산스퀘어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은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다"라고 밝혔다.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35년 만에 국가 기관이 처음으로 '국가 폭력에 따른 인권침해 사건'으로 인정했다.

형제복지원에서 발생한 전반적인 피해를 국가의 독립적인 조사기구가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해 3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비상상고 신청을 기각하면서 '국가가 주도한 인권유린 사건'이라고 판단했으나, 국가 책임을 일부 인정하는 데 그쳤다.

위원회는 "이 사건은 경찰 등 공권력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이들의 허가와 지원, 묵인하에 부랑인으로 지목한 불특정 민간인을 적법절차 없이 단속해 형제복지원에 장기간 자의적으로 구금한 상태에서 강제노동, 가혹행위, 성폭력, 사망, 실종 등 총체적인 인권침해가 발생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 위원회는 ▲ 부랑인 단속 규정의 위헌·위법성 ▲ 형제복지원 수용과정의 위법성 및 운영과정의 심각한 인권침해 ▲ 정부의 형제복지원 사건 인지 및 조직적 축소·은폐 시도 등을 밝혀냈다.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의 전체 진실규명 신청자 수는 544명으로, 이번 1차 진실규명 대상자는 2021년 2월까지 접수를 마친 191명이다. 진실규명 신청 접수 순서대로 진실규명이 이뤄질 예정이다.

진실화해위는 "형제복지원 입소자는 형제복지원과 부산시가 '부랑인 수용보호 위탁계약'을 체결한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총 3만8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했다"며 "사망자 수는 기존에 알려진 552명보다 105명 많은 657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 형제복지원 사건은 부랑인 단속부터 수용, 시설 운영 등 전반적인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60년 7월 20일 형제육아원 설립부터 1992년 8월 20일 정신요양원이 폐쇄되기까지 경찰 등 공권력이 부랑인으로 지목된 사람들을 민간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하고, 강제노역과 폭행, 가혹행위, 사망, 실종 등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가 벌어진 사건이다.

마구잡이식 부랑인 단속과 형제복지원 수용의 근거가 됐던 내무부 훈령 제410호는 법률유보·명확성·과잉금지·적법절차·영장주의 원칙 등을 모두 위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훈령은 부랑인 단속반이 부랑인으로 지목된 사람을 어떤 형사절차도 밟지 않고 수용시설에 보내 강제수용할 수 있도록 했다.

국가가 형제복지원의 실상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외면한 정황도 드러났다.

1982년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피해자 가족이 정부와 수사기관에 수사를 촉구했지만, 오히려 진정인이 무고죄로 고소를 당하고 실형을 선고받았다.

1986년 보안사령부는 형제복지원에 수용된 간첩 용의자를 감시하기 위해 보안사 요원을 수용자로 위장 침투시켜 복지원 실상을 파악했다.

보안사령부는 이때 "교도소보다 더 강한 규율과 통제로 재소자 대부분이 탈출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곳"이라고 형제복지원을 평가하면서도 어떤 조처도 하지 않았다.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이 알려지고 검찰 수사가 시작된 후에도 보건사회부는 부랑인 강제수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진실화해위는 "부산시와 경찰, 안기부 등 부산 지역 모든 기관이 사건을 조직적으로 축소, 은폐했다"며 "특히 부산시는 피해자와 가족들의 진정과 소송을 회유하고 원장과 측근들이 다시 형제복지원 법인을 장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이런 조사 결과를 토대로 국가가 형제복지원 강제수용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피해회복 및 트라우마 치유 지원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또 국가가 각종 시설의 수용 및 운영 과정에서 피수용자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고, 국회는 유엔 강제 실종 방지협약을 조속히 비준 동의하라고 촉구했다.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은 "오랜 시간 기다려온 형제복지원 사건의 인권침해 진실이 드러난 것은 피해자와 유가족, 사회단체 등이 기울인 노력의 결과"라며 "2기 진실화해위 출범의 계기가 된 이번 사건에 대한 종합적인 진실규명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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