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이상 “감추는 것이 미덕” 지배적…20대 “흡연은 권리” 인식 강해

“밀실에서 광장으로 끌어내 재조명하자” 의견

요즘 카페에서 담배 피우는 여성을 보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 되었다. 그러나 가족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에게 '흡연자'라고 당당히 밝히는 여성의 목소리를 듣기란 쉽지 않다. 흡연 여성의 목소리는 도덕적 잣대에 파묻혀 있기 때문이다. 흡연 체험담을 공개적으로 들려달라는 요구에 대부분 여성들은 손사래를 쳤다. 기혼 여성들은 “시댁 식구가 알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고 미혼 여성들도 “사회적 이미지가 좋지 않기 않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이름을 비공개하자고 했을 때 그들은 가슴 속 깊이 담아둔 이야기를 비로소 털어놓았다. 그들의 목소리를 엮어보았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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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일러스트·<흡연 여성 잔혹사>(웅진닷컴)

경기도 일산에 살고 있는 주부 L씨(41)에게 담배는 '친구'라고 한다.

“대학시절 담배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이 집을 비운 뒤 거실에 혼자 앉아 담배를 피울 때 해방감을 느낍니다. 몇 번 금연을 시도했는데, 담배와 헤어질 생각을 하니 너무 섭섭하더군요.”

비교적 오랜 기간 담배를 피웠지만 L씨의 친정과 시댁 식구들 가운데 그의 흡연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남편뿐이다.

L씨는 자신의 흡연이 시댁 식구에게 알려진다는 걸 상상만 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한다. 주눅드는 대상은 시어머니나 시아버지처럼 '어르신'들만이 아니다. 손위 동서, 손아래 동서, 시아주버니, 시누이, 시동생 등 일단 '시'자 붙은 사람은 다 해당한다.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갑자기 집으로 찾아온 시댁 식구들 때문에 '십년감수한'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그래도 운 좋게 한번도 걸리지 않았다”고 말하며 그는 쑥스럽게 웃었다.

인천의 한 종합병원에서 전문의로 일하는 J씨(35)는 20대 중반 병원 레지던트 시절 담배와 만났다고 한다.

“그때는 밤새우는 날이 정말 많았습니다. 가끔씩 피우는 담배가 고단한 제 생활에 위로가 돼주었습니다. 지금까지 그 맛을 잊지 못하지요.”

J씨가 하루에 만나는 환자는 200~300명. 하루 종일 진료실에 붙박이처럼 앉아 있어야 한다는 J씨가 담배를 피우는 장소는 화장실이다. 그것도 아무 때나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아니다. 진료시간이 끝나 일반인들의 발걸음이 끊어진 저녁 무렵에야 화장실에 앉아 담배를 빼어 문다. J씨는 한 자리에서 담배 한 갑을 타 태우고 일어난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날 화장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려는데 머리가 핑 돌더군요. 한 평 남짓한 화장실 안에서 내가 뭐하고 있나 한심한 생각이 들어 담배를 끊어야 하나 갈등했습니다.”

J씨 역시 '담배 커밍아웃'보다는 '숨어서 피우는 것'이 마음 편하다고 한다. 그는 어느새 '담배 몰아 피우기의 달인이 됐지만 뒷맛이 영 씁쓸하다'며 금연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아직까지 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여성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최근 대학 캠퍼스를 걷다 보면 담배를 물고 있는 여학생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30∼40대 여성들이 흡연을 되도록이면 숨기고 싶어하는 반면, 20대 여성들은 비교적 개방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흡연자란 사실을 숨기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직장인 주혜정씨(23)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기성세대가 강제로 여성의 흡연을 금지할 권한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담배를 폈다는 주씨의 흡연 계기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부모님도 알고 있냐는 질문에 주씨는 “그렇다”고 답했다.

“엄마는 '어른이니까 네가 알아서 해라'며 간섭하지 않지만 친척들은'여자가 담배를 피냐'며 좋지 않은 시선으로 봅니다. 하지만 그들의 말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하루 담배 반갑 정도를 태운다는 직장인 W씨(26)는 “나와 연고가 없는 타인에게 흡연 모습을 보이는 점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지만 정작 가까운 가족들에게는 말하지 싶지 않다”고 말했다.

여성학자 정박미경씨(32)는 “여성 흡연이 올바른 시각에서 다시 제기되고 재조명되기 위해서는 밀실에서 광장으로 나와야 한다”면서 “왜 그들이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으며 실제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해명되지 않은 채 단순한 건강이나 의학적 이유로 담배를 뺏으려는 것은 남성 중심 문화의 횡포”라고 주장했다.

임현선 기자 su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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