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가해자가 집 앞에... 피해자 보호한다더니 1년째 ‘보류’
가정폭력 가해자가 집 앞에... 피해자 보호한다더니 1년째 ‘보류’
  • 이세아 기자
  • 승인 2022.08.17 17:14
  • 수정 2022-08-18 1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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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주소 노출 2차 피해 심각한데
열람제한 신청 절차는 여전히 복잡해
쉼터 입소확인서는 되고 상담확인서는 안 돼
병원이나 경찰서 서류 필요...피해자들 부담 호소

“절차 간소화해 피해자 보호” 약속한 정부
1년째 명확한 이유 없이 보류
가정폭력 가해자가 가족의 권한으로 피해자의 주민등록 등·초본을 확인하고 거주지를 알아내 괴롭히는 일이 적지 않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없음. ⓒShutterstock
가정폭력 가해자가 가족의 권한으로 피해자의 주민등록 등·초본을 확인하고 거주지를 알아내 괴롭히는 일이 적지 않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없음. ⓒShutterstock

가정폭력 남편이 집 앞에 나타났다. 김연정(39)씨가 폭력을 피해 아이들과 집을 나온 지 두 달 만이었다. 김씨의 주민등록등본을 보고 새 주소를 알아낸 것이다.

“그 사람이 제 정보를 못 보게 하려면 병원 진단서나 경찰서 서류를 받아오래요. 하지만 신고할 자신이 없어요. 가해자의 반응도 두렵고요. 일하고 애들 보느라 바빠서 병원에 갈 시간도 없었어요.”

이처럼 가정폭력 가해자가 가족의 권한으로 피해자의 주민등록 등·초본을 확인하고 거주지를 알아내 괴롭히는 일이 적지 않다. 열람 제한 신청이 가능하나, 절차가 복잡해 피해자들이 고충을 호소해왔다. 정부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입법을 예고했는데, 명확한 이유 없이 약 1년째 보류 중이다. 법제도의 사각지대에서 피해자들은 고통받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기존 법령상 신청 절차가 복잡해서 피해자를 신속하게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가정폭력·성폭력 상담소에서 발급한 ‘피해상담 사실확인서’만으로도 가해자의 주민등록 열람 제한을 신청할 수 있게 한 주민등록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2021년 9월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2022년 8월 중순 현재까지도 ‘보류’ 상태다.  ⓒ행정안전부
행정안전부는 기존 법령상 신청 절차가 복잡해서 피해자를 신속하게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가정폭력·성폭력 상담소에서 발급한 ‘피해상담 사실확인서’만으로도 가해자의 주민등록 열람 제한을 신청할 수 있게 한 주민등록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2021년 9월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2022년 8월 중순 현재까지도 ‘보류’ 상태다.  ⓒ행정안전부

가정폭력·성폭력 피해자는 가까운 주민센터를 찾아가 가해자가 직계혈족 또는 세대주의 직계혈족의 배우자 자격을 이용해 피해자의 주민등록표를 보거나 등·초본을 떼어 보지 못하게 해 달라고 신청할 수 있다. 2009년 주민등록법 개정으로 도입된 제도다. 

문제는 제출 서류다. 쉼터로 피신한 적 있다면 입소확인서만 내면 된다. 가정폭력상담소, 성폭력 피해상담소만 다녀왔다면? 상담확인서만으론 신청이 불가능하다. “일방의 상담 사실만 기재되므로 객관적인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 병원 진단서, 경찰 신고기록확인서를 추가로 제출해야 한다. 

피해자들의 호소에 행정안전부가 응답했다. 기존 법령으로는 피해자를 신속하게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피해상담 사실확인서’만으로도 가해자의 주민등록 열람 제한을 신청할 수 있게 절차를 간소화한 주민등록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2021년 9월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내용은 지난해 법제처 심사 과정에서 제외됐고, 올해 5월~7월까지 다시 별도로 입법예고돼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최초 입법예고 시점에서 약 1년이 지난 2022년 8월 현재까지도 ‘보류’ 상태다. 행정안전부와 법제처에 그 이유를 물었으나 명확한 답변을 얻지 못했다. 

법제도의 공백 속 2차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 김씨처럼 불안에 떠는 피해자도 있고, 쉼터 입소 압박을 받는 피해자도 많다. 생계 활동, 가족 돌봄 등으로 쉼터에 갈 수 없거나 입소를 원치 않는 피해자가 많은데도 그렇다. 한선미 전주여성의전화 부설 전주여성의쉼터 소장은 “최근 가해자의 주민등록 열람 금지를 신청하려고 (입소 확인서를 받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1366 긴급피난처를 이용하는 피해자 수가 늘어났다고 한다”고 말했다.

피해지원 단체들은 ‘가정폭력 피해자가 쉼터를 찾거나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피해자의 말하기를 쉽게 의심해서는 안 된다’며 제도적 개선을 촉구했다. “피해 경험을 말하는 게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상담만 받았다고 해서 쉼터 입소자보다 피해 정도가 경미하다고 볼 수도 없다.”(한 소장) “피해자의 호소만으로는 피해를 증명하기 어렵다는 시각은 문제다.”(김다슬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정책팀장)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여성신문에 “법제처에 신속한 심사를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다”고 답했다. 법제처 대변인실 측은 “심사 인원이 많지 않아 안건이 산적해 있고, 심사 과정에서 변동이 있을 수도 있어서 시행 여부나 시점에 대해서는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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