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KBS1TV 시사기획 창 ‘너를 사랑해…악마의 그루밍’ 유튜브 영상 캡처
사진=KBS1TV 시사기획 창 ‘너를 사랑해…악마의 그루밍’ 유튜브 영상 캡처

성착취로 이어질 수 있는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그루밍(Grooming·길들이기) 성범죄를 잡아내기 위해 지난해 9월 위장수사가 도입됐지만 최근 9개월 간 검거 수는 1건에 불과했다. 검거율이 저조한 이유론 위장수사 결과물이 증거로 인정되지 않거나 피의자가 불능미수 등으로 대응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처벌이 어렵다는 우려가 있다. 이에 적극적인 수사와 대응이 가능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재미 삼아 채팅 애플리케이션에 들어가서 모르는 오빠랑 대화했는데요. 오빠가 제 말도 잘 들어주고 용돈도 보내줘서 오빠가 저를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보내달라는 가슴 사진도 보내주고 샤워하는 사진도 찍어서 보내줬는데 성기 사진까지 보내달라고 해서 그건 거절하니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거냐며 화를 냈어요. 그러고 보니 다른 사람한테 제 사진 보여줬을까 봐 걱정이 돼요. 사진 보내준 저도 잘못이 있는 것 같아서 부모님한테는 말 못 하겠어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2020 한국 사이버성폭력을 진단한다’ 연구서 중 발췌>

온라인 그루밍의 전형적인 사례다. 온라인 그루밍은 가해자가 자신보다 경험이 부족하거나 미숙한 사람에게 접근해 신뢰 관계를 형성한 뒤 성착취를 하는 것을 말한다. 주로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이때 가해자는 다정한 말로 아동·청소년을 길들여 성적 촬영물을 직접 촬영해 건네주도록 만들거나 오프라인에서 성폭력이나 조건만남의 상황으로 유인한다.

온라인 그루밍을 처벌하기 위해 지난해 9월 개정된 청소년성보호법 시행 후 경찰의 위장수사가 도입됐지만 검거율은 저조한 편이다. 경찰은 아동·청소년 디지털 성범죄 위장 수사가 법적으로 허용된 지난해 9월 24일부터 올해 6월 30일까지 9개월간 147건의 위장 수사를 실시했다. 그중 성착취 목적으로 아동·청소년에게 대화(온라인 그루밍)를 한 행위를 검거한 것은 1건에 그쳤다.

아동·청소년 디지털 성착취 수사 관계자들은 위장수사 결과물이 증거로 인정되지 않거나 피의자가 불능미수 등으로 대응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처벌이 어렵다고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을 받아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가 올해 1월에 펴낸 ‘아동·청소년 성착취 피해예방과 인권적 구제방안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아동·청소년 디지털 성착취 수사 관계자들은 심층 면접조사에서 위장수사의 어려움이 많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를 보면 경찰은 상급기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등의 제한으로 수사가 더욱 위축될 수 있으며 증거로 인정되지 않거나 불능미수 등으로 실제로 처벌이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 등 관련 규정이 실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규정이 보완될 필요가 있다고 진술했다.

“위장수사의 범위 명백히 해야”

보고서는 이같은 심층면접을 통해 잠입수사·위장수사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법 개정을 통해 위장수사의 범위를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보고서는 “온라인 그루밍은 아동·청소년에게 할 때만 처벌되는데, 수사기관은 성인이므로 그루밍죄의 기수범이 성립할 수 없다”며 “범죄자가 자신과 연락하는 상대방을 아동·청소년으로 믿었다면 (불능)미수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위장수사를 하려면 상급기관의 사전승인을 받도록 돼 있어 수사가 더욱 위축될 수 있으며 역시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봤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아동·청소년 성착취 통합지원 단체를 설립한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도 온라인 그루밍은 예방이 중요하다며 경찰의 위장수사 권한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온라인 그루밍에 대한 위장수사 법제화 시도는 좋았으나 (불능)미수 등 처벌이 현실화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며 “미수죄를 도입하자는 의견도 있는데 무엇보다 경찰의 위장수사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도록 수사권을 보장하고 아동에 대한 성적 목적 대화를 법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기준과 규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