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77주년 기획]
종연방직 파업 주도 등
항일노동운동에 앞장
의열단 군자금 모금활동도

항일독립운동은 지금까지 남성의 영역으로 인식됐다. 총을 들고 무장투쟁을 벌이거나 만주와 러시아에서 활약해야 독립운동이라고 인정하는 편견 탓이다. 동지이자 부부로, 연인으로, 가족으로 함께한 여성 독립운동가의 업적이 주목받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제뿐 아니라 가부장제에도 맞섰던 여성 독립운동가의 용기와 헌신은 그래서 기려야 한다. 이병희(1918~2012) 지사는 ‘여성과 좌파’라는 꼬리표를 안고 ‘항일 파업투쟁의 선봉’에 섰던 독립군이다. 

이병희
이병희 독립운동가 ⓒ여성신문

이병희 지사의 독립운동은 노동운동부터 시작한다. 1918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난 그의 아버지 이경식은 대구 조선은행 폭탄투척의거에 연루돼 옥고를 치렀고, 큰아버지 이원식은 안동에서 항일독립운동을 펼쳤다.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나고 자란 그는 경성여자상업학교(서울여상 전신)에 다니다 중퇴한 뒤 일본인이 경영하던 종연방적주식회사에 여공으로 위장취업한다. 1936년 18살의 나이에 여성 동지들을 규합해 만세운동과 임금인상 투쟁을 일으키며 파업을 주도했다. 이 일로 체포돼 2년 4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에도 삿뽀로 맥주, 기린 맥주회사, 영등포 방직공장에서 노동운동을 해 수차례 체포되고 고문을 받아야 했다.

이후 이 지사는 1940년 베이징으로 망명해 무력독립운동 단체인 의열단에 입단했다. 그는 의열단원들 간의 문서를 전달하는 연락책 역할과 군자금 모집 활동을 했다.   

이육사. (사진=이육사 문학관 제공) ⓒ뉴시스·여성신문
이육사. (사진=이육사 문학관 제공)

이병희 지사의 독립운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바로 이육사다. 일제는 1944년 1월 11일 ‘앞으로는 독립운동 대신 결혼을 하겠다’는 조건으로 이병희 지사를 석방한다. 닷새 뒤인 1월 16일 이육사가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은 그는 이육사의 시신과 유품을 수습했다. 유품 중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육사의 시 ‘광야’와 ‘청포도’ 등이 쓰인 마분지가 있었다. 이병희 지사가 아니었다면, 이육사의 시도 이육사의 시신도 후대에 전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조선의 딸, 총을 들다』, 2016)

이병희 독립운동가 생애(사진=서대문 형무소) ⓒ여성신문
이병희 독립운동가 생애(사진=서대문 형무소) ⓒ여성신문

그러나 이병희 지사의 이러한 업적은 1996년까지 숨겨져 있었다. 일제 치하에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을 했던 그가 자신의 이력이 자녀들에게 누가 될까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독립운동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육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던 한 방송사의 제작팀이 이육사의 사망신고를 했던 이병희 지사를 추적한 끝에 당시 그가 국내에 생존해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 결과 1996년 이병희 지사와 작고한 부친 이경식 씨는 애국장을 수훈하고 독립유공자로 이름을 올렸다.

2007년 여성신문과의 인터뷰 당시 이병희 독립운동가. (왼쪽부터) 김옥한(아니키스트 김종진선생 막내딸), 이병희 독립운동가, 박용옥 3·1 여성동지회 회장.
2007년 여성신문과의 인터뷰 당시 이병희 독립운동가. (왼쪽부터) 김옥한(아니키스트 김종진 선생 막내딸), 이병희 독립운동가, 박용옥 3·1 여성동지회 회장. ⓒ여성신문

이병희 지사는 여성신문과의 2007년 인터뷰에서 자신의 마지막 과제로 같이 활동했던 사람을 찾아 독립유공자로 추대하고 그 후손에게 자랑스러운 조상의 명예와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게 하는 것을 꼽았다. 그는 “젊은이들이 과거 독립운동이 왜 일어났고, 그 정신이 어떠했는지 관심을 갖고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여옥사 ⓒ홍수형 기자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여옥사. ⓒ홍수형 기자

그러나 여전히 여성 독립운동가의 업적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장은 이런 이유에 대해 국가 기관의 관심 부족을 짚었다.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 여성기관은 한국 여성의 정체성이나 여성 역사에 대한 관심보다 육아나 출산 등 현상적인 여성 문제에 매달려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기관이 앞장서고 국민들의 관심이 따라야 하는데, 관심이 지속되지 못하고 계속 단절돼 왔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정현주 여성역사미래 상임대표는 “역사가 남성 중심적으로 기록이 되다 보니 독립운동에서도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자료가 없다”며 “기존에 남성 중심으로 쓰인 독립운동 자료를 여성의 시선에서 재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