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국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김진표 국회의장과 주먹악수하는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 트위터
4일 국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김진표 국회의장과 주먹악수하는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 트위터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 방한 때 윤석열 대통령이 만나지 않은 것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웠다. “윤 대통령 휴가 일정이 겹쳐 예방 일정을 잡기 어렵다고 미국 측에 사전에 설명했고 펠로시 의장도 충분히 이해했다”는 것이 대통령실의 설명이었다. 대신 윤 대통령은 40분 간의 전화통화라는 간접 만남의 방식을 선택했다. 대통령실의 설명과는 상관없이, 펠로시의 대만 방문으로 미국과 중국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서 굳이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이에 대해 평소 한미동맹의 절대적 중요성을 강조하던 보수 진영 내부에서 비판이 나온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일이었다. “동맹국인 미 의회의 1인자, 워싱턴 권력에서는 사실상 2인자가 방한했는데 대통령이 만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유승민 국민의힘 전 의원), “대통령이 휴가 중이라도 국익을 위해 미팅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하태경 국민의힘 의원)라는 비판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낯설었던 것은 평소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의 균형 외교를 주장하던 더불어민주당 쪽에서 이어진 비판의 목소리들이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외교관계에서 있을 수 없는 아마추어의 창피한 국정운영”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오영훈 민주당 원내대변인도 “윤석열 정부의 외교 결례가 의전 참사로 이어지며 세계적인 망신거리가 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문재인 정부 국정원장을 지낸 박지원 전 원장까지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 있는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고 전화를 했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에 가세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펠로시를 만나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라는 반응들도 나왔지만, 당 지도부와 지지층들의 대세는 윤 대통령의 외교 결례를 비판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거두절미 하고 말하자면, 윤 대통령이 펠로시를 만나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었다. 역대 보수 정부들이 그랬듯이, 윤석열 정부 또한 이념적 지향에 갇힌 대미 편중 외교로 중국과의 실용외교를 소홀히 할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그런 마당에, 마침 휴가 일정 덕분에 대통령이 중국을 자극하는 만남을 자연스럽게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특보를 지냈던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의 말처럼, “휴가 중인데 바로 만나면 야당이 ‘굴욕 외교 한다’고 비판할 것”이었다. 어쩌면 평소 민주당의 주장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모처럼의 선택을 한 셈이었다.

미국 정부는 펠로시의 대만 방문을 만류했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국무부 고위 당국자들을 통해 펠로시의 대만 방문이 초래할 지정학적 위험을 설명하며 연기를 설득했으나 허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은 펠로시가 35년 정치 인생의 마지막 치적쌓기 과시용으로 대만 방문을 강행한다 판단하고 무척 분개했다고도 한다.

실제로 펠로시의 대만 방문 이후 중국과 대만의 군사적 긴장은 심각한 국면을 맞고 있다. 중국군은 펠로시의 대만 방문 직후 대만 주변 해역에서 실탄 사격을 한 데 이어 탄도미사일들을 발사했다. 이에 대만군은 9일부터 맞붙 성격의 대규모 포사격 훈련에 들어간다. 이처럼 위험한 일촉즉발의 싸움에 우리가 끼어들 명분도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펠로시와의 위험한 만남 자체에 대한 판단 보다는, 누가 했느냐에 따라 찬반의 태도가 정해지는 것은 해묵은 진영논리를 답습하는 모습이다. 미국만 의식하다가 중국과 척을 질까 걱정되던 윤석열 정부가 미-중의 싸움에 끼어들지 않는 실용주의적 선택을 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일이었다. 그런데 굳이 ‘외교적 결례’라고 비난하며 불 속으로 들어가라고 등 떠미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같은 행동도 내편이 하면 선이고 상대편이 하면 악이 되는 진영적 사고로는 우리의 앞길을 열어가기 어렵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