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30년 동안 혼자 사셨고, 할아버지는 혼자 되신 지 5년. 두 분이 사귄 지는 1년 정도. 서로를 좋아하기에 몸과 마음 모두 간절히 원하지만, 할머니의 망설임과 머뭇거림이 이어진다. 할아버지는 그런 할머니를 향해 나이 들수록 자연의 이치에 따라야 하는 것 아니냐며 애타는 마음을 표시한다. 멀리 단풍 구경을 가기로 한 날, 할머니는 여전한 망설임으로 약속 장소에 나오지 못하고, 할아버지는 기다리다 지쳐 코를 골며 벤치에서 잠이 든다. 뒤늦게 달려온 할머니는 둘이 늘 앉던 벤치로 할아버지를 찾아오고, 두 사람은 결국 서로를 보듬어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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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복지관의 한 교실에서 어르신들과 독립영화 한 편을 봤다. 제목은 <단풍잎>(감독 오점균, 1999년, 16㎜). 25분의 짧은 상영이 끝나고 소감을 나누는 시간, 제일 먼저 멋쟁이 여자 어르신이 말씀을 하신다.

“한 마디로 재미있었어요. 할머니의 손녀가 할머니의 연애를 싫어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여행가방 속에 든 할머니 팬티에 '자랑스런 할머니'라고 썼더라고요. 저만하면 노인들 마음을 잘 그린 것 같아요.”

손녀가 할머니 팬티에 '자랑스런 할머니'라고 쓴 장면을 떠올리며 왁자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점잖은 남자 어르신께서 손을 드신다.

“30년이나 혼자 살았는데 이제 와서 뭘…. 예쁜 손녀 자라는 거나 보면서 정조를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순간 교실 안에 어색한 침묵이 감돈다.

활발하고 자유로운 토론을 거쳐, 노년의 삶을 어떻게 하면 좀더 풍요롭게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이야기를 모아나가야 하는 내 머릿속이 바삐 돌아간다.

'아, 이제 여자 어르신들이 발언을 안 하시겠구나. 영화를 옹호하는 이야기를 하면 마치 정조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으로 보일 테니까 입을 다무시겠지. 이제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다시 풀어나간담?'

이때 구원병이 나타났으니, 납작한 모자를 쓴 풍채 좋은 남자 어르신이었다.

“세상은 이미 많이 바뀌었는데, 예전에 우리가 배워온 것만 고집하면 안 되지요. 팔십까지 사는 세상인데, 노인도 좋아하는 사람 만나 사랑을 나누면서 살면 좀 좋은가요?”

몇 분이 하하 웃으며 박수로 동의를 하시는데, 다시 또 남자 어르신 한 분이 강하게 이의를 제기하신다.

“독신들에게나 해당될 영화를, 부부가 같이 사는 사람도 섞여 있는 이런 자리에서 보면 어떻게 합니까?”

이 정도의 질문에는 어르신들 사이에서 저절로 답이 나올 것 같아 잠시 기다린다. 예측이 틀리지 않아 이번에는 낭랑한 여자 어르신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극장이 독신자용 따로 부부용 따로 있나요? 이렇게 같이 보면서 부부는 독신 친구들 사정 헤아려보고, 독신은 독신대로 자기 감정 돌아보고 그러면 되지요.”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어르신들과 갸우뚱하는 어르신들이 그래도 눈을 맞추며 웃으시는 걸 보니, 오늘 수업은 무난하게 진행된 편이다. 마땅치 않은 마음에 수업 끝나고 서로 쳐다보지 않으려고 하시는 경우도 있으니까 말이다.

이제 내가 앞에 나서서 정리해야 할 시간. 세상일이 다 그런 것처럼 영화 한 편에 대해서도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나와 다른 눈으로 본 것을 틀렸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럴 수도 있겠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노년의 모습을 완벽하게 담아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노년이 나오는 영화를 같이 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것만 해도 참 좋은 일 아니겠는가, 정리를 하고는 앞으로 영화에 좀더 관심을 갖고 틈틈이 보실 것을 권해드렸다. 사람 사는 모습의 다양함을 익히고 배우는 데는 역시 나이도, 도구도 따로 없는 것. 영화를 통해 어르신들은 새로운 경험을 하셨고 그것을 도와드리며 나 역시 좋은 경험을 한 하루였다.

유경

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cafe.daum.net/geront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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